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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ke Kim May 02. 2016

BASKERVILLE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난 서체 바스커빌

우리는 종종 인류의 역사에서 누구보다 재능이 넘쳐 뛰어난 업적을 남긴 위대한 왕들을 만나곤 한다. 대표적인 예로 한국의 세종대왕을 들 수 있다. 세종대왕은 어려서부터 굉장한 책벌레였으며 왕이 된 후에는 음악, 언어학, 문자학, 역사학, 과학, 무기학, 정치학, 철학, 천문학, 경제학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관심과 열정을 보였다. 또한 합리적이며 논리적인 정치로 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화려하고 탄탄하게 만들었다. 세종대왕의 그중 가장 돋보이는 업적은 ‘한글창제'다. 전 세계 어디에도 없었던 독자적인 문자 체계와 미학적 아름다움은 오랜 시간이 흐른 현재에도 한글의 위치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주었다. 그런 위대한 왕이 각 나라에도 많이 있지만 프랑스에 가장 눈에 띄는 왕이 있었다. 가방의 브랜드로 더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루이 까또즈’ 즉, ‘루이 14세’가 바로 그 비범한 왕 중 하나다.


'세종대왕'과 '루이 14세'에게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프랑스 귀족들의 반란이었던 ‘프롱드의 난(La Fronde)’을 피해 지방을 전전하며 비참한 생활을 하던 루이 14세는 1661년 정권을 잡으면서 본격적으로 진정한 왕이란 무엇인지 보여주기 시작했다. 후에 루이 14세는 ‘태양왕’이라 불렸는 데 중앙집권적이었던 프랑스에서도 가장 강대한 권력과 유명세를 가졌던 왕이었고, 베르사유 궁전을 건설하고 프랑스의 미식문화와 사치스러운 문화를 만들어낸 장본인이기도 하다. 누구보다 에티켓을 강조하였으며 적극적인 예술인 지원을 통해 프랑스의 파리를 음악, 미술, 건축, 문학 등 예술분야에 있어 화려하며 다양한 문화로 꽃 피웠던 왕이기도 하다.


프롱드의 난(La Fronde)은 프랑스의 부르봉 왕권에 대한 귀족세력의 최후의 반항에 의해 일어났던 내란이다. 프랑스에 있어서 귀족세력의 왕권에 대한 최후반란이다. 절대왕정 확립의 길을 터놓은 것으로서 큰 의의를 갖는다.
프랑스 귀족들의 반란이었던 ‘프랑드의 난(La Fronde)’
루이 14세의 어린시절을 담은 초상화. 자신을 쥬피터(제우스)에 비유했으며 세상의 중심이 되고자 했다.


이러한 업적은 루이 14세 본인 스스로가 프랑스의 핵심으로서 정치와 사생활을 통틀어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가야 직성이 풀렸기에 가능했다. 실제로 루이 14세는 좁게는 궁정, 넓게는 나라 전체가 하나의 무대이며 자기 자신이 주인공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권력자가 예술을 향유함에 있어서 루이 14세가 다른 왕들과 가장 남달랐던 점은 그 스스로가 예술의 주체, 즉 아티스트였다는 데에 있다.


루이 14세는 근사한 극장을 지어주고, 예술가들을 데려와 함께 VIP석에서 공연을 관람하고 공연이 끝나면 박수로 답례하는 정도로는 결코 만족하지 못했다. 배우에게 향하는 박수조차 질투하여 급기야 자신이 직접 무대에 오를 정도로 독특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루이 14세의 그러한 자기중심적 사고는 결국 왕권을 강화시켰고 문화의 중심을 왕실에 두며 권력을 강화하는 계기로 이어지게 된다.


그러한 루이 14세의 자기중심적 사고를 통해 이뤄낸 업적 중 가장 빛나는 업적이 바로 ‘왕의 로만(King’s Roman)’ 서체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왕실에서 타이포그래피의 기초를 만들었다는 것도 특이한 일이지만 왕이 타이포그래피에 관심을 갖고 직접 진두지휘하여 서체까지 만든 경우는 전 세계 어디를 보더라도 그리 많지 않았다.


왕의 로만(King’s Roman) 서체 모듈
영문 'M'의 모듈. 수학적인 비례를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17세기 루이 14세는 프랑스 왕립 인쇄소를 독점적으로 사용해 새로운 서체(왕을 위한 서체)를 제작할 것을 직접 명령했고, 이에 따른 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이 시대는 새롭게 과학의 시대가 열리는 초창기여서 위원회의 구성인원들은 이전 세대 활자와 글자꼴에 대해 많은 양의 정보를 수집하고 연구했다. 글꼴을 만들 때 아름다움에만 치중하여 예술적인 측면만 고려하던 시대에 ‘왕의 로만’은 ‘과학 아카데미’에서 과학자와 수학자, 엔지니어로 구성된 팀이 활자를 제도하고 제작하는 과정을 겪었다.


그 결과, 위원회는 작은 정사각형 2,304개로 이루어진 그리드를 사용해 각 활자의 비례를 결정하게 되었다. 그래서 만들어진 글꼴의 형태는 손끝의 기술이 아닌 수학적으로 제도하여 정밀하고 통일성있는 서체였다. 유럽의 출판문화가 정점에 이르는 시기에 왕의 로만은 엄청난 파급력을 가지며 많은 디자이너에게 영향을 주게 된다.


바스커빌 레귤러, 이탤릭, 볼드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서체 중 오늘 이야기할 바스커빌(baskerville)은 바로 그 ‘왕의 로만’ 서체에 기반하여 만들어진 가장 대표적인 서체 중 하나다. 이전에 설명하였던 디돈 스타일(Didone) 역시 왕의 로만에 기반하여 만들어졌던 것이며, 한참 뒤에 만들어진 푸트라 역시 왕의 로만에서 확립되었던 수학적 법칙을 알파벳의 모양에 적용한 서체이다. ( *디돈 스타일 참고. '보도니' https://brunch.co.kr/@nitro2red/56 )


John Baskerville : 1706~1775


왕의 로만 서체가 발표되고 60년이 흐른 뒤인 1754년에 발표된 바스커빌 서체는 영국의 버밍엄에서 옻칠 공예를 하던 존 바스커빌(John Baskerville : 1706~1775)에 의해 만들어졌다. 옻칠공예가였던 존 바스커빌은 인쇄소를 설립하고 기존보다 더 나은 인쇄물을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 혁신적인 실험과 연구를 하면서 왕의 로만에 기반한 진보된 활자형태에 매료되었었다. 존 바스커빌의 이러한 창조적 에너지는 서체 디자인뿐만 아니라 질 좋은 종이와 잉크의 개발, 인쇄기술 등을 모두 한 차원 올려놓는 결과를 내놓았지만 그가 심혈을 기울여 오랜 연구 끝에 탄생한 바스커빌 서체는 만들어진 당시에는 크게 사랑받지 못했다.


17세기 유럽의 대세 폰트였던 캐슬론(Caslon)


이유인즉, 17세기 유럽은 네덜란드 올드 스타일에 기반한 캐슬론(Caslon)이라는 서체가 가장 사랑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캐슬론은 다소 장식적이었지만 뛰어난 가독성으로 인해 영국의 인쇄소에서 많이 사용되었다. 반면 당시 혁신적인 스타일이었던 바스커빌은 날카롭게 다듬어진 세리프와 수학적인 법칙으로 만들어진 획의 굵기 차이로 인해 인쇄되어졌을 때 글자가 더욱 또렸히 보이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미 캐슬론에 익숙해진 대중에게는 오랜 시간 외면받게 되었다. ‘프로젝트 런웨이’라는 TV 프로그램을 보면 “진보한 디자인은 박수를 받지만 진부한 디자인은 외면당합니다”라는 말이 나오는데 당시의 시대가 가진 보수성은 진보된 디자인 이었던 바스커빌을 외면받게 만들었던 것이다. 아쉽게도 진부한 디자인은 사랑받았지만 너무 진보한 디자인은 사랑받지 못하는 시대였던 것이다.

캐슬론과 바스커빌의 특징 비교


바스커빌이 만들어졌던 17세기에는 인쇄소에서 출판을 통해 대중에게 서체 디자인을 알리던 시기였기 때문에 출판에 적합한 가독성 높은 서체와 대중들에게 익숙한 올드 스타일의 서체가 사랑받았던 것이다. 왕의 로만과 바스커빌 같이 진보되고 혁신적인 스타일은 이후 디돈 스타일(Didone)이 대중적으로 큰 사랑을 받는 데 많은 영향을 끼쳤지만 당시에는 굉장히 낯이 익지않아 생소한 것이었다. 하지만 19세기를 지나 현재로 넘어오면서 바스커빌의 개별 글자들이 가진의 풍부하고 우아한 형태적 아름다움, 적당한 굵기와 높이의 대문자, 세련된 소문자들의 조합은 시대를 뛰어넘어 뒤늦게 사랑받게 된 이유가 되었다.


바스커빌의 아름다움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문자 'Q'와 소문자 'g'


루이 14세를 의미하는 '루이까또즈'. 바스커빌의 'Q'를 모티브로 삼아 디자인 되었다. -레터타입의 'Q는 굉장히 이질감이 느껴지고 이상해 보임. 산세리프와 세리프의 잘못된 조합


바스커빌의 수학적 완벽성과 알파벳이 가진 아름다움은 대문자 중 ‘Q’를보면 알 수 있다. 바스커빌 서체 중 ‘Q’는 아름답게 대비되는 획의 굵기를 보여주는 ‘O’의 형태와 여우의 꼬리처럼 우아하고 날렵하게 뻩은 ‘~’ 받침(Swash)이 어우러진 완벽한 형태의 글자다. 가장 돋보이는 ‘Q’와 더불어 미려하며 우아하게 만들어진 소문자‘g’의 형태도 굉장히 완성도 높은 알파벳 형태이다. 이렇게 각각의 대문자와 소문자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단어들의 아름다움은 고급스러운 인쇄물에 적용되며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바스커빌의 제작자였던 존 바스커빌은 어쩌면 뛰어난 안목과 끊임없는 기술혁신을 통해 자신이 살던 시대가 아닌 미래를 내다보는 선지자였는지도 모른다.


디지털 폰트를 말하며 빼놓을 수 없는 '에미그레 매거진(Emigre Magazine)'
미국에서 발간되고 있는'에미그레(Emigre)' 매거진은 기존의 쇼 케이스(Show Case)와 같은 상업 잡지와 그 유형이 전혀 다른 그래픽 디자인 전문지이다. 발행인 '루디 반더란스(Rudy VanderLans)'가 80년대 초 이 잡지를 발간했던 주요 동기는 시각디자인 문화의 영역에 있어 보편적인 개념에 의한 '전형(典型, paradigm)'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가설과, 이에 동조하는 새로운 젊은 세대의 디자이너들의 다양하고 자유로운 사고와 실험적 표현방법을 검증받게 하기 위한 매체가 필요하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모더니즘 그래픽 디자인 방법으로 통칭되었던 스위스 국제 타이포그래피 양식의 표현에 있어 감성적, 개성적 표현의 한계성에 대해 의문을 가졌던 '반더란스'는 컴퓨터를 활용한 디지털 폰트 개발의 선두주자인 그의 아내 '주자나 리코(ZuzanaLicko)'와 함께 '에미그레(Emigre)' 매거진 발간한다. 에미그레는 전통적 방식에서 벗어나 잡지의 특별기획기사와 관련 내용을 시각적인 그래픽으로 연관시킨 편집 디자인으로 매호마다 디자인계에 논란을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주목을 받고 있다.


바스커빌은 과거에서 시간을 뛰어넘어 1923년 모노타입사(Monotype)에서 연구하고 재탄생하게 되면서 비로소 그 독자적인 아름다움과 역사적 중요성을 인정받게 된다. 1982년 미국의 ITC사에서 획의 굵기와 디테일을 다듬어 뉴 바스커빌(New Baskerville)을 발표하면서 더욱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바스커빌이 디지털 폰트로 다듬어지면서 미국의 디지털 폰트 전문 회사인 에미그레(Emigre)는 독특한 스토리를 가진 폰트를 발표하게 된다. 서체 디자이너인 주자나 리코(Zuzana Licko)의 연구를 통해 바스커빌의 특징적인 모양과 비례를 유지하면서 굵기의 차이를 줄이고 본문용 서체로써 가독성을 높여 서체를 하나 탄생시킨다. 이 서체는 ‘Mrs. Eaves’라고 이름이 붙여지는데 젊어서 독신으로 살았던 존 바스커빌의 집에서 가정부를 하다가 결국 그와 결혼하게 된 사라 이브스(Mrs. Sarah Eaves)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문제적 폰트 '미시즈 이브스(Mrs. Eaves)'


존 바스커빌과 사라 이브스의 결혼은 쉽지 않았다. 이브스는 5명의 자녀를 둔 유부녀였고 그녀에겐 리처드라는 남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존 바스커빌과 가정부인 이브스의 사랑은 그들에겐 로맨스였겠지만 주위 시선엔 잘못된 불륜관계였다. 결국 이들은 둘만의 사랑을 키워가다 이브스의 남편인 리처드가 사망한 바로 그해에 결혼해서 주변사람들에게 오랫동안 구설수에 올랐다. 이들의 사랑은 당시에 굉장히 파격적이었던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주자나 리코에 의해 다시 현대적으로 다듬어졌던 Mrs. Eaves는 완성도에 있어서 돋보이는 서체였지만 폰트역사에 존재하는 위대한 선배인 존 바스커빌에 대한 사생활 폭로와 조크에 가까운 서체 작명센스가 더 돋보였다. 물론 Mrs. Eaves는 단순한 해프닝이 아닌 엄청난 성공으로 이어졌다. 1996년 발표된 이후 현재까지 디자이너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고 미국의 유명한 월간지인 ‘Wallpaper’에서 전용서체로 사용되며 전 세계 독자들에게 바스커빌이 가진 역사적 의미와 아름다움을 다시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캐슬론, 바스커빌, 미시즈 이브스의 'Q'


문화 인류학자인 ‘재러드 다이아몬드(Jared Mason Diamond)’는 인류발전과 역사에 영향을 끼친 것을 ‘총, 균, 쇠’라는 단어로 압축하여 설명하였듯이 ‘문자’ 역시 문화와 인류를 설명함에 있어 중요한 단어이다. 시대별로 사랑받았던 서체들의 역사를 보면 문화를 폭넓게 이해하는데 더욱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고대문화의 조각을 발견하여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상과 역사를 알 수 있듯이 서체에도 다양하게 살아 숨 쉬는 역사가 깃들어 있다. 시대를 앞서도 너무 앞선 서체를 통해 우리는 과거의 역사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볼 수 있다. 바스커빌은 17세기 태양왕이라 불렸던 루이 14세의 흥미로운 이야기와 옻칠공예가에서 서체 디자이너로 변신한 존 바스커빌의 불타 오르는 사랑이야기와 타이포그래피의 역사에 있어 독창적이며 진보적인 아름다움이 모두 담겨있는 재미있는 서체이다.





위 내용은 '아레나 옴므' 매거진에 2015년 1월 연재된 '글자를 위한 글'입니다.


글 : 오영식(토탈임팩트), 김광혁(VMK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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