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질과 성장, 나다운 삶
안녕하세요!
디자이너이자 문화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는
애프터 컬처 대표 김광혁입니다.
혹시 글 쓰는 디자이너 들어보셨어요?
제가 그런 디자이너인데요.
처음엔 맞춤법도 틀렸는데 지금은 연재도 간간이 합니다.
전공자도 아니고 기자나 소설가 같은 업이 아닌데 말이죠.
저는 따봉 많이 받는 법? 이런 걸 알려드리는 글을 써요.
어떻게 많이 받냐고요.
그건 덕질을 많이 하고 고양이와 친해지면 됩니다.
(농담입니다)
저는 읽기 쉬운 글을 씁니다.
글을 쓰면 저는 제 지인들에게 물어봐요.
"제 글 괜찮은가요? 읽을만한가요?"
그러면 돌아오는 답은
"투박하지만 매력 있어요. 긴 글인데 끝까지 잘 읽혀요."
라고 말하십니다.
핵심은 이 것 같아요.
쉽게 읽히고, 또 어떤 글을 읽어도 제가 쓴 건 줄 알겠다고요.
SNS 시대, 누구나 좋은 글을 쓸 수 있고 굶어 죽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 비결은 바로 나의 목소리를 담는 겁니다.
저는 조그만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다가
어쩌다 보니 빚이 3억 넘게 생겼습니다.
제가 욕심내면 안 되는 것에 욕심을 냈거든요.
사기를 당해서 쫄딱 망했어요.
빚이란 게 눈덩이 같아서 급하면 급전을 찾고 빚을 빚내서 갚는 멍청한 짓을 하거든요.
제가 그랬습니다.
그게 반복되니까 신용불량자가 되고 손바닥 만했던 눈덩이가 어느새 괴물같이 커져있더라고요.
절망적이었어요. 매일 빚 독촉을 받고 빚쟁이들이 사무실에 와서 대기하고 있었어요.
하루 종일 돈 달라는 전화가 빚 발 쳤고요.
어느 날 핸드폰 비용을 내지 못해서 전화가 끊겼을 때 행복했어요.
더 이상 독촉을 받지 않아도 되니까요.
매일 죽고 싶었어요.
자살시도를 2번이나 했습니다.
서울역에서 노숙도 했어요.
주변 사람들이 다시는 제가 디자인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어요.
죄를 적게 지은 사람들이 가는 지옥이 있다고 합니다.
거기에서 그 사람들은 하루 종일 돌탑을 쌓는다고 해요.
손이 부르트게 탑을 높이 쌓고 한숨 돌리면
야차들이 와서 그 돌탑을 부수고 다시 쌓으라고 한답니다.
그리고 그걸 매일 반복합니다.
저는 디자이너니까 이렇게 쌓겠죠.
제 삶이 그랬어요.
낮에는 디자인하고 밤에는 대리운전 뛰고
주말에는 좌판에서 물건 팔고...
죽어라 일하느라 거의 시체처럼 목표 없이 일하는데 아무리 일해도, 벌어도 메워지지 않았어요.
돌탑 쌓듯 일하고 돈 들어오면 빚 독촉이 오고 빚 갚으면 또 빚이 남아있고
어느 순간 야차처럼 차압과 내용증명이 매일 날아왔어요.
그러는 동안 몸이 많이 망가졌어요.
잠 안 자고 일만 하고 잠깐 눈 붙이고 일어나면 지옥이고.
매일매일이 스트레스의 연속이었으니까요.
어느 날 자고 일어났는데 눈이 안 떠졌어요. 몸은 천근만근이었고...
아 이렇게 죽는구나 싶었죠.
가까스로 병원에 갔는데 의사 선생님이 그러더군요.
"당신 그러다 진짜 죽어요!!"
살은 50킬로 정도까지 빠졌고 안 아픈 곳이 없었어요.
병원에 6개월, 최소 3개월 정도 입원하라고 했는데 돈이 없었습니다.
빚 독촉도 받는 상황이라 맘 편하게 병원에 누워있을 수 없었어요.
그래서 통원치료를 받기로 하고 집에서 어쨌든 일을 하면서 치료를 했어요.
매일 어질어질했어요.
밖에 나가서 미팅 한번 하고 들어오면 이틀 정도 누워있었어요.
그러는 동안 매일 빚 독촉 전화는 오고... 정말. 희망이 없었어요.
다시 매일 죽고 싶다는 생각만 했어요.
결국 돈을 빌렸던 분들과 결재를 해줘야 하는 곳들을 찾아가서 무릎 꿇고 양해 구했어요.
아프다고 했어요. 제발 살려달라고 했어요.
다행히 이해해주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오히려 도와주시는 분들도 계셨고요.
그리고는 6개월 정도 쉬었어요. 누워만 있었어요.
처음 누워있을 때 비참하더라고요.
디자인을 하려고 거의 10년을 넘게 노력했는데 못하니까요.
디자인도 건강하지 않으면 하지 못하거든요.
디자인.
참 멋진 일처럼 보이지만 사실 노동직입니다.
창조하고 직업이지만 결과물을 만들려면 매일 밤을 새워야 하니까요.
노동의 강도에 따라 퀄리티가 달라집니다.
그렇다 보니 그때 누워있을 때.
"아... 이제 디자인은 진짜 못하나 보다."
끝인가 보다 했어요.
그때 시작한 게 미뤄놨던 덕질과 글쓰기였어요.
어차피 이러다 죽을 거면 죽기 전에 보고 싶은 것 보자.
미뤄놨던 영화를 보고 소설을 읽고 만화를 보고 좋았던 것 또 보고
평소 즐겨하던 디자인 관련 자료 찾는 아카이빙 쌓는 덕질을 했어요.
그러다 몸이 좀 괜찮은 날이면 디자인해서 빚 갚고 또 누워있고...
야차가 돌담을 무너뜨리는 건 끝나지 않았습니다.
나랏빚과 대출은 계속 갚아야 했으니까요.
그렇게 지리멸렬하게 살아가고 있는데 유일한 낙이 SNS와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이었어요.
뭔가 숨통이 트인다고 할까?
글을 쓰면서 오랜만에 살아있는 것 같았어요.
오프라인의 나는 망한 디자이너인데 온라인에선 멋진 사람이었거든요.
제가 아는 지식을 공유하고 사람들에게 제가 읽었던 책이나 봤던 영화들을 소개했어요.
쉬면서 열심히 영화를 보고 리뷰를 찾아보고 전공서적들을 다시 보게 됐는데
다들 너무 어렵게 글을 쓰는 거예요.
정말 한 줄 읽다가 사전 찾아보고 인터넷 검색해야 했어요.
아니 이걸 일반인이 어떻게 알아?
아니 전공자인 나도 어려운데 학생이나 일반인들이 이걸 읽으라는 거야?
안 읽혔어요.
아~! 나라도 쉽게 써야겠다 했어요.
그래서 나만 알기 아까운 디자인 정보들을 열심히 글로 공유했습니다.
최근 해외 디자인 트렌드도 소개하고 전 세계에서 디자이너들이 작업한 포스터를 모으고 공유했어요.
어려운 말 안 쓰고 최대한 읽기 편하게요.
영화 리뷰도 최대한 쉽게 썼어요.
평론에 휘둘리지 않고 이건 이래서 좋다. 저건 저래서 좋다.
이건 이렇게 취향 저격이어서 좋다.
어떤 건 이런 콘텐츠와 같이 보면 좋다 하면서 콘텐츠 해설을 시작했어요.
이상하게 글 쓸 때면 안 아팠어요. 신이 났어요.
몇 달 동안 열심히 글을 쓴 후 알게 됐어요.
내가 아팠던 건 몸의 병이 아니라 마음의 병이었구나.
몸은 서서히 나아졌습니다.
그러다가 영화를 보고 썼던 글 하나가
엄청난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
"귀신도 곡할 영화 곡성"
거의 매일 5만, 10 만씩 읽히고 공유됐어요.
https://brunch.co.kr/@nitro2red/67
영화 곡성을 보고 영화평론가의 글을 읽었는데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평소 제가 덕질하던 다양한 서브컬처와
종교와 미신에 관련된 신화 영화에 숨은 메타포들을 디자이너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글을 올렸는데 그게 정말 엄청난 반응이었어요.
막 영화 관계자한테도 전화 오고 감독님들한테 메시지 오고...
정말 뭐지? 뭐지? 했어요.
그래서 다시 제 글을 읽어보니
맙소사. 어느새 글이 예전보다 좋아졌더라고요.
처음 글을 쓸 때는 엉망진창이었거든요.
그런데 저도 모르게 그런 것들이 고쳐져 있더라고요.
말 그대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죠.
조금 용기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SNS에도 쉬지 않고 정말 가열하게 글을 썼어요.
다들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그때쯤 글 쓰는 재미가 생겼어요.
고통에서 벗어나면서 조금 자신 있어졌어요.
제 성격이 감추는걸 잘 못해요.
좋은 거 좋다. 싫은 것 싫다.
그런데 제가 상처 받아보니 남들 상처 주는 것 싫더라고요.
그래서 읽으면 조금이라도 도움되고 힘이 되는 글을 썼어요.
사회적 부조리도 싫었어요.
그래서 남들 잘 안 쓰는 약자를 위한 글을 많이 썼습니다.
내부고발이나 폭로성 글이 있어서 주변에선 말렸죠.
"야! 너 디자이너잖아. 일 안 할 거야? 앞으로 어떡하려고 그래?"
그런데 디자이너니까 해야 했어요.
세상을 바꾸겠다고 디자인을 시작했는데
제 디자인은 봄날에 새싹 하나 틔울 수 없었어요.
그럼 누군가 상처 받는 거라도 막고 싶었어요.
그러다가 처음으로 원고 청탁이 들어왔습니다.
아레나 옴므라는 잡지였는데 폰트를 소개하는 글을 써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나온 책들을 보니 온갖 폰트의 외형만 소개하는 글이었어요.
의문이 생겼죠. 폰트를 만드는 것이 사람이면 그 사람이 뭘 했는지 궁금했어요.
그리고 뭘 먹고 뭘 입고 그 시대 어떤 문화를 겪으면
그런 폰트가 나오는지 조사했어요.
여러분이 자주 쓰는 폰트,
디자이너들이 사랑하는 폰트들에 관련된 글을 썼어요.
결국 폰트를 소개하는 글을 빙자한 폰트 디자이너들의 연대기였죠.
글을 쓰려고 조사하다 보니 정말 재밌는 것이...
고통이 없고 좌절이 없었던 디자이너가 없었다는 거예요.
그리고 다들 무언가에 열렬히 빠져있는 덕후였어요.
푸투라를 만든 파울 레너는 역사 덕후이자.
오래된 중세시대 글자 덕후였습니다.
푸투라의 뜻은 미래인데 가장 오래된 글자들에서 미래를 발견한 거죠.
지금 보시는 다양한 브랜드들이 푸트라로 만들어졌습니다.
바스커빌은 옻칠 공예가였습니다.
있는 돈을 다 쏟아부어 활자 공방을 만들었지만
당시 유행했던 서체보다 너무 선구적이어서 사랑받지 못했어요.
평생 외롭고 가난했어요.
혈통을 중시하던 시기 가정부였던 사람과 결혼을 하면서 사회적으로 지탄까지 받았습니다.
그의 삶은 고통과 좌절의 연속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300년이 지난 다음에야 사랑받았어요.
'Mrs Eaves'라는 폰트는 바스커빌이 사회적인 지탄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사랑한 그의 가정부였던 사람의 이름이었습니다.
시간을 초월해서 그의 인생과 사랑이 폰트로 꽃을 피우게 된 것이겠지요.
그 외 다양한 폰트를 만든 디자이너들도
외부에서 결과만 보면 참 멋지고 세상을 바꾼 위인들인데
그들의 삶을 보니 저와 다를 바가 없었어요.
아니 저보다 더 안 좋은 상황에서 역사에 남는 업적을 남겼더라고요.
그렇다면 그들은 무엇에 집중했는가? 를 다시 돌이켜보니까.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데 평생을 바쳤어요.
좋은 폰트엔 결국 디자이너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더라고요.
아.... 이거다 싶었죠.
멋진 삶, 좋은 삶, 드라마틱한 삶이 없으면
내공이 겹겹이 쌓인 좋은 작품도 나오지 않습니다.
이 디자인을 봐주시겠어요? 어떠세요? 밋밋하죠.
그런데 이 작품은 저에게 엄청난 영감을 줬어요.
그리고 힘들 때마다 다시 보게 됐어요.
얀 치홀트는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비대칭 타이포그래피의 원형을 만든 사람입니다.
얀 치홀트가 등장하기 이전엔 대부분의 책들이 중축 정열로 되어있었어요.
그런데 얀 치홀트는 폰트의 무게감 시각적인 재미, 구성의 중요함, 정보의 전달성을 고려해
비대칭 타이포그래피 배치를 추구했어요.
여러분이 좋아하시는 펭귄북스의 초기 레이아웃을 얀 치홀트가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말년이 되어서 다시 중축 타이포그래피로 돌아왔어요.
비대칭도 좋지만 결국 중심을 잡는 안정적인 디자인이 옳다고 느끼신 거죠.
제 삶도 그랬어요.
자기 자신의 중심을 잡아야 했어요.
그제야 저는 저 자신을 알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것, 제가 싫어하는 것, 때론 비겁한 것, 속물 같은 근성 등등...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제 이야길 시작하니까 글의 퀄리티가 올라갔어요.
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저를 알기 시작하니까 디자인도 좋아졌어요.
결국 좋은 삶을 살아야 그게 작품에 녹아 좋은 디자인과 글을 만들어지더라고요.
디자인과 글은 닮은 점이 많아요.
디자인은 무언가 더하는 것이 아니라 빼는 것이어요.
마지막에 더 이상 뺄 것이 없을 때까지 빼야 해요.
그게 앙상하고 볼품없을까요?
아니요. 결국 가장 강력한 본질만 남아요.
사람과 같죠. 직급, 경력, 학력, 외모 떼고 다 때고 나면 그 사람의 본질만 남아요.
그럼 그 안에서 우리는 본질적인 가치를 찾을 수 있게 되죠.
글쓰기도 마찬가지였어요.
온갖 황홀한 미사여구 빼고 어렵게 포장된 전문용어 빼고
본질을 숨기는 겉치레를 빼고 빼고 줄이다 보면 가장 강력한 단어만 남게 돼요.
그럼 그때서야 사람들이 공감하고 동의하며 감동을 받더라고요.
결국 나와 닮은 디자인, 나와 닮은 글이 사랑받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글을 쓰면서 성격이 바뀌었어요.
조금 다혈질이었는데 글을 쓰다 보니 저의 성급함이 결코 좋은 게 아니더라고요.
조금 더 말을 아끼게 되었고 조금 더 주변에 도움이 되는 걸 쓰려고 노력했어요.
그냥 쓰기 시작했던 글이 어느 순간 사회에 영향을 끼치는 걸 발견했고
제가 잘못 전달한 글이 일반화되어 맞는 정보로 읽히기 시작했어요.
어느 순간 책임감이 생기더라고요.
어떤 글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글로 쓰면 대부분 평생 남습니다.
그러니까 신중해져야 했어요.
저는 펜, 즉 글이 그 어떤 것 강하다고 믿습니다.
앉은뱅이, 비렁뱅이였던 저를 다시 사회에 복귀시켰고
며칠밤을 고민하며 쓴 글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바른 정보를 주고
생각을 바꾸는데 도움을 드리고 있습니다.
모든 동물이 모두 자기의 목소리로 말을 하지만
오직 인간만이 글을 쓰고 공감하며 후대에 전달합니다.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이 글쓰기여요.
그러니 무엇보다 책임지는 글쓰기가 되어야 합니다.
남을 욕하거나 저주하거나 시비 걸어 싸우는 것보다
더 도움이 되는 글쓰기를 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어요.
말과 글에는 자기 자신이 담겨있어요.
아무리 짧은 글이어도 말이죠.
결국 저는 글을 쓰다 보니 저 자신을 발견하고
천생 디자이너구나를 다시 느끼게 되었습니다.
글쓰기가 디자인을 하는데
나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데
엄청나게 도움이 됨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간혹 SNS에만 글을 쓰거나 정규 교육을 안 받고
글을 쓰는 분들이 기죽는 경우가 있어요.
저도 그랬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럴 필요 있나 싶어요.
지금은 신문이나 책 같은 오래된 미디어보다
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같은
SNS에서 주목을 받는 것이 더 필요해졌습니다.
책이나 신문 잘 안 읽잖아요.
아마 앞으로는 저처럼 그리고 여러분처럼
미디어의 한계를 극복하고 자유롭게 넘나드는 분들이
독자들로부터 더 사랑을 받는 글을 쓰시게 될 겁니다.
굳이 길고 복잡할 필요 없어요.
잘 쓸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돼요.
우리는 충분히 위력적인 글을 쓸 수 있고 쓰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SNS에 쓰신 단 한 줄의 글이
세상을 바꾸고 있습니다.
글쓰기는 위대합니다.
사실 여러분이 쓰는 모든 글들이 위대해요.
그 글들이 저를 구원한 것처럼 여러분의 삶도 구원할 겁니다.
조금 더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지고
조금 더 책임지는 글을 쓴다면 말이죠.
지금까지
#글 쓰는 #디자이너, #문화해설가, #애프터컬처
김광혁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nitro2red 에서 다양한 글을 쓰고 있으며
최근 영화 및 OTT 콘텐츠 리뷰는 플랫폼인 왓칭 http://bitly.kr/ITeSRsRBn 에서 활동해 왔습니다.
유튜브 '꼬꼬독' 채널을 통해 다양한 콘텐츠를 소개하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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