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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미 Oct 04. 2015

제목 없음 2.

두 번째. 엄마가 여자가 되었다.

 


엄마께서는 소리를 지르시지 못하셨다.


소리 지르실 힘도 남아있지 않으셨던 걸까?

우리 엄마는 갑자기 편찮으셨다.

덕분에 학교와 일, 집에서 꽤나 멀었던 병원을 오가며 나는  정신없이 한 학기를 마칠 수 있었다.

힘들다고 불평할 시간도 없었다.

누군가를 붙들고 한탄하는 시간조차  허용되지 않을 만큼, 긴박했고 바빴으며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싫었다.


덜컥 겁이 났다.


엄마의 부재는 단 한 번도 와 닿게 상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일까?

아니, 그건 아닐 것이다.

엄마의 자리가 내게 크게 존재한 만큼 나는 항상 엄마의 부재를 염두에 두고, 그때도 내가 잘 해낼 수 있을지를 가늠해보곤 했다.

그러나 막상 그런 것들이, 으레 짐작만 해오던 끔찍한 일들이 들이닥치자 나는 덜컥 겁이 났다.


묘한 연을 이어가는, 친한 K오빠의 질문 공세에 나는 버럭. 화를 냈다.


“어디 병원인데?”


딱히, 문제 될 것 없는 질문이었으나 대답하는 순간.

뭔가 엄마가 중환자실에 계시다는 사실이 나를 무너트릴 것만 같아 나는 질문 따위 하지 말라며 화를 내었다.


병원에서도, 퇴원 후에도 엄마는 예전처럼 소리 지르시지 못하셨다.

마음이 짠했다.

불 같은 성격이셨던, 엄마가.

나의 엄마가.

우리의 엄마가.

힘든 한 달을 보내고 나서 이렇게 야위고, 어눌해졌다니.


엄마가 병원에 계신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나를 가슴 아프게 한 요소들은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렇지만  그중에서도 나를 가장 가슴 아프게 했던 것은, 엄마의 어눌함이었다.

여장부다운 엄마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작고 가냘프고 여윈 여자 하나가 있을 뿐 이었다.


더욱 서글픈 사실은 이제야 엄마는 여자였다.


 상황이 이 지경이 되고서야 엄마는 여자로서 존재할 수 있었다.

 무능력한 사색가가 그렇지 뭐. 하고 씁쓸히 웃어 넘겼다


나는 늘 소중한 사람을 잃는, 혹은 잃어가는 상황에 있어 항상 무능력하다.

무엇 하나 내 곁에서 제대로 지켜낼 힘이 없는 무능력자인 것이다.

견딜 수 없이 싫었다.

무능력한 나를 쥐어뜯고 가슴을 치고  답답해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 자살을 꿈꿔왔다.

좀 더 정확히 짚어보자면, 자살을  생각했다기보다 문득 문득 잊고 있던 것을 기억해낸 듯

자살이 나를 찾아왔다.

“아 맞아, 나는 지금쯤 죽었어야 했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는 늘 죽음을 가까이 염두에 두고 살아왔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이런 천성을 가지고 있는지는 나 조차 모른다.


나는 늘 시간을 서둘렀다.

급한 성격으로 시간을 서둘러, 급하게 생을 마감하는 것이 운명일까? 하는.

이런 무미건조한 생각이 들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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