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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룡 Sep 23. 2022

대리로 남은 선배를 동정했습니다.

직급은 계급이 아닌 역할입니다.

팀장님 이제 끝난 거 아니야?

임원이 된 후배에게 고개 숙이며 축하 인사를 하는 우리 팀장님.

우리 회사는 연말과 이듬해 초, 이렇게 1년에 두 번 승진 발표가 있다.

연말에는 임원인사가 나고, 2~3달 후에 직원들의 승진 발표가 난다.

그날은 축하와 위로가 오가느라 평소보다는 어수선한 분위기가 사무실에 가득하다.


승승장구하는 젊은 팀장의 임원 발탁.

만년 부장 꼬리표를 영원히 떼지 못하게 된 날.

남들보다 빠르게 특진을 한 1년 차 대리.

동기들의 승진을 바라봐야 하는 만년 대리.


당사자의 생각과는 별개로 주변 동료들은 사내 게시판에 공고된 발령지를 통해 그들을 '성공'과 '실패'로 나누곤 한다.


승진은 성공일까?


우리는 목적하는 바를 이루는 것을 성공이라고 부른다. 다시 말해, 승진이 성공 그 자체가 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목적이 '승진'이어야 한다.


승진은 회사에서 인정받았음을 의미한다. 직급이 오를수록 몸값이 올라가는 것은 덤이다. 회사원으로써 누릴 수 있는 부와 명예가 따라오는 것임에는 분명하다.

'높은 위치까지 오른 직장인'이 커리어의 주된 목적이라면 '승진' 그 자체로 성공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린 모두 같은 꿈을 꾸지 않아요


우리 회사의 경우 과장급 승진 대상자를 선별하기 위해 시험을 치른다. 독서실에 등록해서 몇 달을 공부할 정도로 난이도가 꽤 있는 편이다. 총 3번의 시험 기회가 있다. 주어진 기회를 모두 놓치면 대상자에 이름도 못 올려보고 소위 '만년 대리'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직원이 시험에 응시할까?

아니다. 주변에 몇몇 선후배들은 승진시험 자체를

응시하지 않는다. 승진 자체를 스스로 거부한 것이다.

나는 그런 선택을 내린 동료들을 보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차피 승진해서 쭉쭉 올라가야 돈도 많이 벌고, 회사 다니는 의미가 있는 거 아닌가?"


"애초에 안될 것 같으니까 먼저 포기해버린 꼴이라니, 에효..."


그렇다. 그런 선배는 한심해 보였고, 후배들은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어느 날, 한심해 보였던 선배가 회사 내 벤처창업 공모전에서 우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회사의 지원을 받은 그 선배는 이제 대표가 되어 사업체를 이끌고 있다.

그리고 답답하게만 생각했던 후배가 더 좋은 대우를 받고 이직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 후배는 채권관리 업무를 보던 친구였다. 그 친구의 마지막 출근날 함께 커피 한잔할 일이 있었다.


말룡 : "승진시험 응시 안 하더니, 이직 준비하느라 그랬나 보네? 축하해!"


후배 : "우리 회사는 채권관리 업무가 비중이 있지 않아요. 여기서 관리자가 되면 더 나아가기 힘들 거 같았어요. 지금은 승진보다는 실무 경험을 더 키워야 할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승진이 아닌 자신만의 중요한 목적을 갖고 있었다.

"아, 다 같은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니구나."

내가 지닌 목적을 타인에게 심어 그들의 삶을 멋대로 평가한 자신이 부끄러웠다.


섣부른 동정은 금물


꿈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월급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 자신만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이들에게 승진은 에너지 낭비일 뿐이다.

그리고 승진을 통해 관리자의 역할을 하는 것이 본인의 커리어에 적합하지 않다는 선택 또한 전략적인 접근이 될 수 있다.

내심 함부로 평가하고 동정심마저 가졌던 자신을 반성해 본다.




몇몇 동료들을 보며, 승진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이전에 나는 직급을 계급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승진이 최고라고 말이다.


어쩌다 들어온 회사였다. 합격 소식을 전해온 몇 안 되는 회사 중 적당한 곳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별다른 꿈도 없었고, 한 달 한 달 월급만 받으면서 시간을 보내는 데에 급급했다.

그러다 대리로 승진했다. 첫 승진의 설렘과 뿌듯한 감정은 아직도 가슴 깊이 남아있다.

그때 처음 직장생활에 목표가 생겼다. 임원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되면 내 삶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때부터 여러 분야에 실무경험을 두루 갖추고자 했고, 사내에서 여러 분야의 커리어를 쌓아가고자 했다.

그렇게 과장으로 승진을 했고, 대리로 남은 선배와 동기들을 보며 속으로 우월감을 느꼈던 것 같기도 하다. 정말 부끄럽고 바보 같은 감정이다.


직급은 깡패인가?


직급은 깡패가 아니다. 또한 위아래로 나뉘는 계급도 아니다. 회사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그렇기에 승진은 내가 누군가 위에 올라선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실무 위주에서 중간 관리자로서의 역할을 맡았음을 의미한다.

임원이 꿈인 나에게는 관리자로서의 역량이 꼭 필요하다. 난 앞으로도 승진을 목표로 달려 나갈 것이다.

그리고 각자의 꿈을 갖고 회사생활에 성실히 임하는 동료들도 열렬히 응원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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