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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룡 Sep 16. 2022

이래서 회식이 싫은 겁니다.

회식은 업무의 연장일까?


그렇다. 회식은 업무의 연장, 아니 그 자체다.

회사생활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 이유로 회식이 진행된다. 승진 발표가 있는 날이나, 중요한 업무가 잘 마무리되는 날을 축하하고 기념하기 위해 다 같이 모여 술잔을 기울인다.

갑작스러운 번개 회식도 다반사다.

오후 5시쯤 팀장님이 간절한 표정으로 직원들에게 다가온다.


"혹시, 오늘 시간 되니? 상무님이 한잔 하자는데.."


보통 이런 상황은 상무님이 갑자기  생각이 나거나, 자신의 약속이  났거나   하나이다.


2년간 잠잠했던 회식문화가 최근 들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회사 근처 식당에는 회사 사람들의 예약으로 꽉 차있다.

나는 이 상황이 그리 반갑지만은 않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끼리 술 한잔 하면서 진솔하게 얘기하고 으쌰 으쌰 하자는데 왜 그래?"


글쎄, 모르겠다. 지난 10년간 수많은 회식에 참석했지만, 진솔한 이야기와 으쌰 으쌰 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난 회식에 대해 신입사원 때부터 업무 그 자체로 느꼈다.


회식 준비


부문단위로 진행되는 회식은 꽤 많은 사람들이 참석한다. 부문 내에 보통 3~4개 팀이 소속되어 있고, 인원은 2~30명 정도이다. 막내들은 메뉴와 식당을 정해야 하는데 이때부터가 업무의 시작이다.

선배들로부터 불만을 사지 않으려면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요건이 있다.


1) 담당 임원이 선호하는 메뉴

2) 2~30명이 독립적으로 있을 수 있는 공간

3) 직원들도 크게 불만이 없어야 하는 메뉴

4) 2차, 3차까지 고려한 위치


나 같은 경우는 위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후보군을 3개 정도로 추려서 투표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몇몇 사람은 정해진 장소에 불만을 갖고, 왜 여기를 했냐며 투덜 대곤 했다.

(그저 웃지요...)


장소 세팅


막내들은 회식장소로 선배들보다 30분 정도 일찍 출발한다. 먼저 도착한 막내들은 각자의 임무를 수행한다. 상무님 차량 주차자리를 선점해야 하고, 테이블 당 몇 명씩 앉을지 파악해서 메뉴 주문을 어떻게 할지 결정한다. 신선도 유지를 위해 술은 도착 5분 전쯤 세팅해 놓는다.


자, 좀 먹어 볼까?


차례차례 도착하는 선배들에게 자리를 안내하고 나면 이제 회식이 시작된다. 자 이제 편안하게 식사를 하면 될까? 전혀 그렇지 않다.

고깃집이라도 가는 날이면 고기가 끊이질 않게 신경 써야 한다. 테이블 곳곳에서는 선배들이 술이 떨어졌다며 식당 직원이 아닌 막내를 찾는다. 중간중간 분위기 환기를 위한 건배사는 덤이다.

신입은 패기 있고, 창의적이고, 트렌디한 건배사를 해야 한다.

자리가 무르익고, 선배들이 취해갈 때쯤 이제 밥 좀 먹으려 할 때, 조용히 대리님이 부른다.


"말룡아, 나가서 근처에 맥주 한잔할 장소 좀 알아봐라. 자리 잡으면 전화해~^^"


가끔 숟가락으로 이마를 한 대 때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집에들 가야죠?


2차, 3차로 갈수록 중간중간 사람들이 빠져나간다. 하지만 막내는 갈 수 없다. 눈치도 보이거니와 선배들은 당연히 막내가 끝까지 챙겨줄 거라는 기대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정을 넘길 무렵 회식이 종료되고 마지막 남은 한 사람까지 택시 태워 집에 보내면 회식 업무는 끝이 난다.


많은 회사들이 점식 시간을 활용한 회식 또는 영화 관람 권장 등 회식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좋은 현상이다.

함께 즐기면서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도 풀고, 사무실에서 하기 어려운 솔직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

하지만 단순히 술자리를 안 하고 영화를 본다고 해서 회식 문화가 나아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율성과 형평성이 결여되면 결국 누군가는 준비하고 챙겨야 하는 일이 된다.

강제성을 없애고, 회식 준비도 조를 짜든 해서 나눠서 해보는 건 어떨까?


선배님, 후배들은 숟가락도 알아서 못 놓고 물 잔에 물도 못 따라서 멀뚱멀뚱 있는 당신을 리스펙 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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