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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룡 Oct 07. 2022

퇴근 후 20년 전 시트콤을 보는 이유

뭐... 볼만한 거 없을까


퇴근 후 뭘 해도 즐겁지가 않은 시기가 있었다.

집에서 조차 회사 업무 걱정에 제대로 쉬질 못했고, 갑자기 기분이 급격하게 다운되기도 했다.

그럴 때면 소파에 누워 의미 없이 아무 유튜브 영상이나 돌려보기를 반복했다. 머릿속은 출근 걱정으로 가득한 채 눈의 피로만 쌓여가고 있었다.

잡념 없이 즐길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부담 없이 집에서 할 수 있는 걸 찾으려 했다.

습관적으로 유튜브를 열였다.

5분 남짓 한 수 십 개의 인기 영상들이 추천 영상에 자리해 있었지만 어째서인지 손이 가지 않았다.

문득 중학생 시절 숙제를 마치고 꼬박꼬박 챙겨봤던 시트콤이 떠올랐다. 기억 속 아주 깊은 곳에 어렴풋이 자리하고 있었음에도 제목이 단번에 떠올랐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또박또박 검색창에 제목을 입력했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거의 모든 시트콤 에피소드가 콘텐츠로 올라와 있었다.

그날부터 반가움과 설렘을 안고 퇴근 후 한 두 편씩 챙겨보기 시작했다.

어떤 에피소드는 5-6번씩 반복해서 챙겨 보기도 했다. 불과 몇 달 만에 293부작 시트콤을 정주행 했다.

2년이 지난 지금도 혼자 식사를 할 때나 잡생각을 떨쳐내고 싶을 때 종종 찾아보곤 한다.

요즘은 수많은 양질의 콘텐츠가 흘러넘치고, OTT 서비스를 통해 다양한 볼거리를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럼에도 왜 나는 20년이나 지난 시트콤을 찾아보고 즐거워하는 걸까.



14살의 나는 중2병에 걸리지 않았다.(부모님 피셜)

학교를 마치면 집에 곧장 들어와서 부모님과 시간 보내기를 좋아했던 것 같다.

저녁 식사를 하고 숙제를 마치고 나면 보통 저녁 9시가 되었다.

그 시간이면 약속이나 한 듯이 함께 모여 앉아, TV 시청을 했다. 채널 결정권은 나에게 있었고, 난 항상 시트콤을 틀었다.


'뉴스를 봐야지 저런 게 뭐가 재밌냐며 뒤돌아 몰래 웃던 아버지'


'누구보다 리액션이 좋아 크게 손뼉 치고 웃으며 봤던 어머니'


별거 아닌 일상이 성인이 되면서부터 이따금씩 아련해질 때가 있는데, 그 시간이 그렇게 느껴졌다.


유튜브로 어린 시절 즐겼던 시트콤을 보면서, 당시 시간들이 또렷하네 기억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단순한 즐거움을 넘어서 그리운 시절의 추억을 소환하고 있었다.




부서 이동 후 심한 성장통을 겪은 시기가 있었다.

유난히 힘든 날이면 술로 마음을 달랬다.

어떤 날은 술방, 먹방을 찾아보며 헛헛한 마음을 채우곤 했다.

여행 영상을 찾아보며,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오늘 그만둔다고 할까..."


도망칠 곳을 찾지 못해 회사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그 시기에 위로받고, 회사 걱정을 잠시나마 떨칠 수 있게 해 준 게 옛 시트콤이었다.

현실도피를 직접 할 순 없었지만, 시트콤을 보는 동안에는 어린 시절의 행복했던 시간으로 다녀온 것만 같았다.




사회생활이 버티기 힘들 때 자신을 위로해 줄 무언가가 꼭 필요하다.

그건 운동일 수 있고, 독서가 될 수도 있으며, 나처럼 과거 행복했던 시간을 추억하는 무언가가 될 수도 있다. 또한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과 캠핑을 떠날 수도 있고, 친구들과 게임을 즐길 수도 있다.

어떤 형태로든 괜찮다.

일상에서 겪는 괴로움을 덜어 주고 슬픔을 달랠 수 있는 자기만의 시간을 꼭 챙기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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