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4시의 산책

불편한 사람들

by 석하


불편한 사람들 - 1


"설문 조사 중인 학생인데, 저희도 주부인데,

학생이거든요. 과제라서 그러는데 영상 설문 하나만 해주고 가시겠어요?"


"무슨 설문인데요?"


"영상 설문이요."


대여섯 되는 무리에서 다른 여자와 바통을 터치하고는 잇몸이 검은 여자는 돌아섰다.

얼굴이 하얗고 예쁜 다른 여자가 휴대폰 영상을 켜서 눈 앞에 들이밀었다.


"이거 보시면서 나오는 질문에 터치하시면 돼요."


"무슨 설문이에요?"


"저희가 주부 학생인데요, "


"아니, 제 말은 이게 뭐에 관련된 설문이냐고요."


"아, 성경 관련한 건데, 저희가 교회 성경학교 학생이에요. 그래서."


"아, 근데 저는 이거 별로 안 하고 싶어요."


"네, 그럼 다음에 하세요."


불편한 말,

난 그들처럼 주부가 아니었다. 교회도 다니지 않는다. 그래서 성경에는 관심이 없다.


무례한 접근,

난 그냥 햇빛이 강해 가로수가 두꺼운 그늘을 지우고 있는 인도로 걷고 있었다. 어린이집 통학 버스에서 내리는 두세 살 짜리 아이들을 보고 귀여워 미소를 띤 얼굴을 했을 뿐이다.

그게, 누군가에게는 함부로 다가가 여유로움을 깨부숴도 되는 사람, 아무 설명도 없이 자신의 과제에 이용해도 될 것 같은 사람으로 비쳤나 보다.



불편한 사람들 - 2

"그래도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우리도 뒤에 가서 서야지. 먼저 앞에 가서 서 있으면 안 돼. 여기가 줄인 가보네."


"뒤에 계신 손님! 이리로 오세요. 여기서 계산해 드릴게요."


"어, 저기 계산한다. 저리로 가자."




무례한 행동,

줄은 하나였다. 내 앞에서 정신을 놓고 더디게 말귀를 알아듣는 아저씨 한 분, 진열상품을 눈으로 훑으며 느긋하게 순서를 기다리는 내가 그 모자 앞에 서 있었다. 분명 나와 그 아저씨가 사리분별이 불가능한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라 믿는다. 그저, 느긋한 시간을 급하지 않게 기다릴 뿐이었는데,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일말의 양해도 없이 건너뛰어도 될만한 병신으로 취급될 수 있는 것이었나 보다.


같잖은 말들,

도덕을 배운 엄마인 양 아들에게 줄 서라는 말이나 말지. 결국 새치기를 할 거면서.

어이가 없었다. 날 쳐다보는 모자와 눈을 맞추고 환하게 웃었다.



불편한 사람들 - 3

"주절, 주절, 주절, 주절."


"뭐라, 뭐라, 뭐라, 뭐라."


끌고 나온 애완견은 아파트 입구에 겨우 난 초록 풀 위에 오줌을 갈겼다.

이상한 바지를 입은 여자, 형광색 점퍼를 걸친 여자. 제 나이보다 더 나이 들어 보이는 여자, 그리고 바퀴를 단 신발을 신은 초등학생 남자아이.

겨우 네 명.


좁지도 넓지도 않은 보통 인도 폭인데,


앞에서 마주 오는 사람도, 뒤에서 따라가는 사람도 뚫고 지나갈 수 없게

꼭 넷이서 겹치지 않는 대형의 인간장벽을 만들어 천천히 움직였다.


불편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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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한 점 없이 깨끗한 하늘과 회색 대신 흰색이 섞인 하늘빛에 초록 이파리들이 어울린 세상, 눈이 즐거운 이 오후를 왜 자기들만 즐기려 하는 건지.......


나를 모른다 해서 그들의 즐거운 오후 산책에 비해 나의 산책을 초라하게 여기면 안 되는 일이다.


결국, 나는 도로로 내려서 걸었다. 느긋했던 발걸음도 굳이 바쁘게 놀리고 말았다.

그들을 앞지르는 노력을 하고 싶어 졌다.


혼자 걸었던,

오후의 산책은 불편한 사람들 덕에 운동으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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