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에 꼬리를 문 폭력

<<채식주의자>>의 자발적 감상문

by 석하

시점이 다른 세 편의 단편작들이 묶인 한 권의 도서, 한강의 <<채식주의자>>.


세 개의 시점을 탄생시킨 주요 인물인 영혜, 그녀의 병세가 진행되는 시간에 따른 남편, 형부, 언니의

시점이 각각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으로 적혀있는 연작소설이다.


역시나 근대 국문학에서 완전히 탈피하지 못한 문학성이라 '재미있다'는 느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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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러한 문학성이라 눈과 머리보다는 마음에서 읽어지는 미학이란 것이 분명히 존재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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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의 글은 세 가지의 폭력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채식주의자>는

평범함을 무너뜨리는 이상행동, 영혜가 남편의 삶에 가하는 폭력을,


<몽고반점>은

가족공동체를 파괴하는 개인의 욕망, 형부가 가족의 결속력에 가하는 폭력을,


<나무 불꽃> 은

침묵하고 순응한 폭력, 저항하지 않는 것 또한 폭력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채식주의자>는 영혜의 발병과 내재된 불안, 울분에 찬 고통을 그려내느라 세 편 중 가장 속도감과 현장감을 느낄 수 있는 글이다.

반면 답답해 지루할 정도로 '집요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던 <몽고반점>은 이탈리아 영화감독 베르나드로 베르톨루치의 에로티즘 이상의 난해한 예술인의 집착이 드러나 있다.

이 책을 읽고 어쩌면 작가가 유일하게 독자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되짚어 본 부분이 <나무 불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이 감상문을 쓰고 싶게 만든 글도 <나무 불꽃>이다.


세 편 중 유일하게 직선이 아닌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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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는 남편의 인내심이 무너지는 한계까지 곧바로 달려가고 있고, <몽고반점>은 형부의 예술적 욕망을 실현하기까지의 과정을 주도면밀하게 진행시키면서, <나무 불꽃>만 고무공처럼 던지면 튕겨져서 되돌아 오는 식이다.

쓸모를 다하고 무성한 잡초에 둘러 싸인 철조 가건물들을 보고 '나는 살아 본 적이 없다'고 느끼는 영혜의 언니 인혜가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다.

쓸모를 다 할 때까지 성실하기만 해서,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누군가의 목적을 위해 최선을 다해 보조를 맞추면서 쇠락해지는 사람, 보통사람이다.

그렇기에 인혜가 바라보는 세상, 죽어가는 동생에 대한 복잡한 마음, 현재를 있게 한 생각나는 모든 과거에 대한 후회가 공감되다 못해 인혜의 엄마도 못 한 심정적 헤아림을 가능하도록 만든다.


여성이 사회생활을 할 수 있게 해주는 필수 아이템인 브래지어를 벗어 버린 영혜는 점차 사람의 생명보존에 필수인 고기를 끊고, 음식을 끊는다. 자신이 태어난 세상을 끊어 버리기 위한 과정을 거친다. 하지만 평범한 것을 절대선으로 추구하는 남편은 끝까지 그녀를 외면하려 애썼고, 예술가의 감성으로 그녀를 이해하는가 싶었던 형부도 결국은 스스로의 욕망에 잠식당해 그녀의 본질과는 멀어진다.


하지만 인혜만은 영혜 마음의 근원을 읽어내는 데 성공한다.


'.... 바보같이.
기껏 해칠 수 있는 건 네 몸이지. 네 뜻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게 그거지.
그런데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지.'

- 한강 <<채식주의자>> 중 <나무 불꽃> 발췌.


심지어 남편이 앉아 있던 좁은 욕조 안에 앉아 봄으로써 자신의 이기심으로 가정을 무지막지하게 파괴한 남편의 마음까지 헤아려내는 인물이다.

하지만 정작 스스로의 마음은 말줄임표로밖에 나타낼 줄 모르는 한 없이 무딘 사람이다.

가히 성인의 경지라고 할 수 있는 이해심과 인내를 발휘하는 캐릭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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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책에서 눈을 떼고 나를 보고 세상을 돌아보면 모두가 그녀만큼 하고 살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우리 모두는 헤아리고, 또 헤아려야만 한 평생을 지낼 수 있는 세상에 묶여 필수 불가결하게 끈질긴 인내와 이해를 생득적으로 탑재하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책은 <채식주의자>가 파격적으로 던져 놓은 포환을 잡기 위해 <몽고반점>이 기술을 시전 했다 실패했으나 마라톤 같은 <나무 불꽃이> 포환이 날아간 방향, 이유, 포환이 그려 놓은 하늘의 포물선을 찬찬히 관찰 탐구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누군가의 폭력이 낳은 다양한 형태의 폭력의 도미노가 발생하는 이야기를 담은 책인 듯 싶다.


그래서,

아름답지은 않으나, 슬프거나 비극적인 것도 없어서

딱, 어떤 이의 담담한 수기를 읽은 것 같은 느낌으로 책을 덮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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