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와 서울을 KTX로 오가는 일년 여의 장거리 연애 끝에 남편과 결혼하고 나는 혼란스러웠다. 주말에만 만나기엔 여친이 너무나 그리워 짬이 나는 주중이면 꼭두새벽에 열차를 타고 와 알차게 24시간 데이트를 한 후 다음날 새벽 기차로 내려가 일을 시작하던 잠없는 그 부지런한 남자는 어디로 간 것일까.
아침에 눈을 뜨면 커텐을 활짝 열어 젖히고 이부자리를 탁탁 털어 정리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나는, 암막커튼을 그대로 쳐놓고 흐트러진 이불- 그날 밤이 되어 다시 들어갈 때까지 손대지 않음-을 뒤로 한 채 샤워하러 들어가는 그가 너무 얄미웠다. 주말에도 아침 식사가 고파 일찍 일어나는 나에겐, 자는 것도 일어난 것도 아닌 채로 비몽사몽, 결국 하루 종일을 침대에서 보내며 흡족해 하는 그가 그토록 게을러 보일 수 없었다.
그와의 결혼 첫 해 여름 방학은 박사 논문 준비로 마음만 바쁘지 일이나 공부는 하나도 안 하는 그의 주말을 혀를 차며 지켜보는 일로 채워졌는데, 결혼 전 매년 여름방학을 작은 해외 도시 한달 살이로 알차게 채웠던 나는 지나가는 계절, 우리의 젊음이 아까워 죽을 지경었다.
제주에서 다시 만난 고등학교 때 친구가 평대리 바닷가 돌집에 ‘달책빵’이라는 까페 겸 책방을 차렸을 때 그녀와 꿈에 대해 이야기 나누며 ‘시간부자가 되는 것이 꿈’이라 하였으니. ‘딸책냥’에 앞서 먼저 꾸었던 꿈 ‘시간부자’가 무색하게도 이 남자는 주어진 시간을 마구 탕진해버리고 내 시간까지 쓰게 하는 ‘시간 가난뱅이’었던 것이다. 내 시간으로 그의 시간을 메우는 억울한 기분을 자주 맞닥뜨리며 어느덧 결혼 10년차에 접어든 나는 다시 놀란다. 게으른 내 남편이 제법 충실한 연구 자료, 논문을 써내고 유익하고 재치있는 강연으로 꽤 인기가 있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그는 다룰 줄 아는 악기도 많고 고전도 다양하게 읽었으며, 동료들 사이에 일과 사람관계 양면에 신의가 두텁다.
부지런하게 몸을 놀리며 살아온 나와 달리 그는 성실히 마음을 놀리며 살아왔다. 사전에서 ‘부지런하다‘와 ’성실하다‘를 찾아보니 종종 함께 쓰이는 이 단어들이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부지런하다- 어떤 일을 꾸물거리거나 미루지 않고 열심히 하는 태도가 있다.’, ‘성실하다- 정성스럽고 참되다.’
‘부지런함’이 몸과 생활습관의 영역이라면 ‘성실함’은 삶의 철학과 마음가짐의 영역이다. 나는 일처리에서 완성도보다 처리 여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니, 나에게 게으르다고 놀림 받아온 그의 입장에서는 내가 오히려 ‘마음이 게으른 사람’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쓰고 책을 내는 일을 평생의 꿈으로 삼고 액자에 박제해 바라만 볼 때 그는 나를 놀리지 않고 응원해 주며 말했다. 마음을 가볍게 가져보라고. 글쓰기에 게을러 보였던 내 맘이 누구보다 성실했음을, 다만 부지런한 발자욱이 필요한 것임을 먼저 겪은 그는 알아보았다.
사람과 소통하고 위로하며 가르치는 소명을 맞아 그는 누구보다 성실했고 그 정성과 참됨이 부담이 되어 자주 주저앉고 싶었으리라. 그럴 때 필요한 ‘부지런함’-일단 행동할 시간과 용기는 사랑하는 사람의 격려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꾸물거리거나 미루지 않고 열심히 해내는’ 내가 ‘정성스럽고 참된‘ 그의 맘을 얕잡아 대하지 않기를. 나 또한 내 안의 ’정성과 참됨‘을 모아 나에게 소중한 것들을 지켜가기를. 그리하여 서로의 성실함과 부지런함을 알아보고 격려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라며 오늘도 편하지만은 않았을 잠든 그의 어깨를 안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