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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차 Feb 26. 2023

모녀작가

 엄마가 쓴 글을 책으로 만들 거라는 얘기를 듣고 그녀는 흥분하며 모두 몇 페이지인지, 언제 완성되는지, 얼마에 팔 건지를 물어왔다. 엄마의 오랜 꿈을 이루기로 했다는 선언의 순간, 동기나 책의 내용 보다도 물리적 존재로써의 책에 관심을 갖는 나의 큰 딸, 인이라면 그럴 줄 알았다.

 인이가 우리에게 찾아온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엄마처럼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었다. 때마침 ’책 잘 읽는 아이는 자기 주도적으로 (공부를 비롯해) 무엇이든 잘한다‘는 믿음으로 자녀의 독서에 온 정성을 기울이는 ‘책 육아‘가 유행하고 있었다. 촉감책, 영아책부터 시작하여 매력적인 그림책을 인터넷 서점, 중고 서점에서 마구 사들이고, 좋은 책을 검색할 에너지가 바닥났을 때에는 단행본에 비해 아이의 기호가 낮다 들어서 피하려 했던 전집도 울며 겨자 먹기로 집에 들였다.

 크고 작은 책꽂이와 선반이 아이 책으로 점령당하던 어느 날 알게 되었다. 우리 아이는 책 읽기를 즐기지 않았다. 여느 아이들처럼 아빠가 읽어주는 잠자리 독서 시간에 이야기를 듣고  ‘자기 전에 한 권만 더’를 외치긴 했지만 놀이시간에 스스로 가져와 읽어 달라거나, 도서관에서 조금만 더 있다 가자고 아쉬워하는 일은 없었다. 대신 아이는 책을 바닥에 놓고 징검다리 놀이를 하였으며 새 책이 오면 얼굴을 묻고 냄새를 맡았다. 내가 책 읽는 시간에 아이는 곁에서 그림을 그렸다. 가끔 엄마에게 와 어떤 책을 보는지, 이 책은 왜 그림이 거의 없고 글자는 또 이렇게 많은 지를 묻던 그녀는 어느 날 책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물어왔다. 그림책의 등과 표지, 내지를 살펴본 후, 웹 검색으로 무선철 제본과 실 제본 등 간단한 제작 방법을 함께 찾아보았지만 여섯 살 그녀에겐 엄두가 나지 않아 일단 A4 용지 한 장을 접어 미니북을 함께 만들었다. 인이는 신나 하며 짧은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린 후, 말풍선과 설명을 덧붙였다. 이후 스테이플러와 간단한 실 제본 등으로 책 만들기에 재미가 들린 인이는 이전보다 지면이 크고 두꺼운 책을 만들었다. 때론 만들기만 하고 내용을 채우는 것은 잊은 채 꽂아두어 나에게 종이를 낭비한다는 잔소리도 들었다.

 말로 하는 의사소통이 서툴렀던 어린 그녀. 나는 매일 함부로 만들어지는 인이의 책에서 그녀의 생각과성장을 읽었다. 물리적 형태의 책을 사랑하다 나보다 먼저 작가가 된 그녀. 쓰고 그리는 즐거움을 아는 선배 작가 인이의 낡은 책들을 다시 꺼내어 열어보다 책 속의 글에 눈길이 머문다.

’네 잎 클로버의 소원이 일우어젔어요‘

 종이를 일으켜 책으로 만들고, 몸을 일으켜 그림을 그리며, 마음을 일으켜 글을 적는 그녀. 그렇게 소원을 일우는-일구어 가는 그녀. 함께 삶을 일구는 순간들이 모여, 나를 닮은 그녀를 또 내가 이렇게 닮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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