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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차 Mar 02. 2023

모녀지간

엄마가 아빠와 함께 목포로 몇 년 살러 간 그날 이후였다.

 퇴근 후 쉬고 있는 내 눈이 무질서를 포착했다. 그릇 건조대에 정리되지 않은 채 놓인 밀폐용기와 텔레비전 위 뽀얀 먼지, 욕조 구석의 붉은 물 때.

엄마가 있을 때라고 그것들이 단 한번 없던 일은 아닐터인데 그동안 엄마가 있음으로 나는 그것을 눈에 담지 않았으리라. 엄마가 없는 집에서 나는 엄마의 눈으로 집 안을 살피고 가꾸는 안주인이 되어 있었다.


 제 밥벌이를 시작했지만 아직 쫓아내기엔 걱정스러운 딸에게 본 집을 내어준 엄마는 주말마다 와서 청소를 하고 냉장고에 반찬을 채웠다. 서울에서 목포까지 왕복 여덟 시간이 부담스러울 무렵 엄마는 일인용 밥솥을 사 와 사용법을 알려 주었고, 우리는 서서히 전화로 안부를 나누며 서로의 안심을 확인하는 걸로 충분해졌다. 그렇게 엄마가 곁에 없는 나의 마음 속엔 엄마가 함께 살게 되었다.


  아무리 피곤해도 자기 전엔 꼭 쌀을 씻어 놓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밥통의 취사버튼을 누른 후 하루를 시작했다. 어쩌다 늦잠을 자버려 아침 식사를 포기하는 날엔 뒤통수를 향해 “아침 먹고 가야 든든하지!”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퇴근 후 지쳐서 배달음식을 시켜 먹는 날에도 포장재나 일회용품은 모두 정리해 두고 예쁜 그릇에 옮겨 담아 맛있게 먹었다. 대충 먹는 딸을 보면 엄마가 속상해할 테고 그런 엄마 맘을 생각하니 내가 되려 속이 상했다. 나는 나를 잘 챙기고 잘 먹였다.


 지저분한 얼룩을 그냥 두고 보다 바지런한 엄마가 혀를 끌끌 차는 것 같았던 어느 주말, 고무장갑을 끼고 락스칠을 해 싱크대와 욕실을 박박 닦아 냈다. 소매와 바짓자락을 걷어 올리고 피로감과 성취감을 함께 느끼는 내 모습이 꼭 엄마 같아 나는 피식 웃었다.

 ’엄마는 너무 고지식하고 편협해!‘ 엄마가 나를 돌보며 불안을 흘릴 때마다 갑갑해하며 엄마로부터 독립할 그날을 꿈꾸던 나. 막상 어른이 되어서는 엄마가 없는 엄마의 집에서 엄마를 꼭 닮은 모습이 되었다. 그토록 지겹고 낯설고 불편했던 엄마의 엄격함이 언젠가부터 나를 성장하게 하는 혜택이 되었고 이제는 내 몸의 일부가 되었다.


 어릴 때 엄마 몰래 학원 남선생님과 만나다 들켜서 호되게 야단을 맞고 엄마를 배신과 근심의 구렁텅이에 빠뜨렸던 적이 있다. 나의 거짓말이 발단이 된 사건이었기에 그 후 엄마와 나의 상처가 치유되고 내가 다시 엄마의 신의를 얻기까지 힘든 시기를 보내야만 했다. 두려움과 외로움, 불안을 동시에 느끼던 그 시절, 좋아했던 선생님에게 부치지 못한 마지막 편지를 가방에 넣고 다녔는데 어느 날 엄마가 우연히 그 편지 봉투를 보게 되었다. 믿음을 또다시 무너뜨렸다는 수치심을 느끼며 엄마의 애정을 잃을까 공포에 사로잡힌 내 눈을 바라보던 엄마의 당황스러운 표정. 그녀는 곧 마음을 다진 단단한 말투로 얘기했다. 보내지 않으리라 믿고 다시 가방에 넣어 두겠다고. 그리고 그 편지에 대해 다시 묻지 않았다.


 아빠가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살고 싶게 하였다면, 엄마는 나를 더 반듯하고 우아한 사람이 되고 싶게 하였고 다정한 아버지를 닮고 싶었던 나는 자주 작은 ‘엄마’로 성장한 나를 마주 한다.


 덜컥 겁이 난다. 내가 엄마를 닮은 것처럼 나의 두 딸도 나를 닮을 텐데. 딸이 잘 자랐으면 하는 맘으로 나를 돌보고 살필 부담에 어깨가 무겁다가 한편으로는 ‘스스로를 잘 키우는 것’이 또한 엄마의 역할도 된다니 일석이조, 쓰임이 많아 좋다.


 나와 내 가족의 눈과 마음에 들어올 것들을 소중히 여기고 아름답게 가꾸기 위해 약간의 불안과 엄격함을 활용하기. 그러다 나 또한 마음이 어려운 너희 성장의 순간에, 그 옛날 내 편지를 내 가방 속에 넣어둔 엄마의 믿음과 현명함 또한 내 안에서 깨어 나오길.


 나를 키우면서 함께 자라 이제는 당신 인생의 열매를 실컷 맛보는 엄마의 모습을 믿는 구석 삼아, 나 또한 당당히 늙어갈 수 있을 것 같다. 그 모습 또한 귀한 두  딸들이 닮을 것이기에.


 나는 오늘도 정성스레 내 집과 내 몸과 내 마음을 살피고 쓰다듬고 바지런히 가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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