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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차 Mar 04. 2023

감사하는 마음

1학년 담임의 첫 주 일기

 어제 입학식을 마친 우리반 병아리들. 엄마 없이 학교 생활을 하는 첫날이다.

 가방에 넣고 온 준비물은 어디에 두는 지(빨리 꺼내어 정리하고 싶다!), 점심은 언제 먹는지(빨리 밥 먹고 싶다!), 집에는 언제 가는지(빨리 엄마 보고싶다!) 하루종일 질문이 이어지는 동안, 아이들의 귀여운 머릿 속이 떠올라 발가락이 간질간질해 졌다.

 사물함 정리법을 알려주는데 맨 앞에 앉은 귀염둥이가 묻는다.

“선생님, 왜 자꾸 웃어요?”

“너희가 너어어무 이뻐서 그래.”


 교문에서부터 혼자 온 친구에게 손을 들어 자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이름도 마구마구 불러주며, 다음 등교일에는 우리반 친구들 모두 스스로 등교하자고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그러나 정작 학교 안에서는 복잡하고 새로운 장소에서 아이들이 행여 길을 잃게 될까 화장실도 모두 함께, 급식도 모두가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함께 돌아오는 식이다. 늘상 아이들을 줄 세워 꼬리처럼 달고 다니는데도 조마조마한 1학년 담임의 마음.

 실종이나 사고 없이 무사히 급식을 마치고 화장실 갈 틈도 없이 교실에 돌아왔다. 알림장을 열어 안내장을 붙이고 확인하는 데만 20분, 가방과 서랍과 사물함에 넣을 것들을 알려주고 살피는 데 또다시 20분이 걸려, 하교 지도가 10분 가까이 늦어졌다.

 추운데 기다리실 학부모님께 죄송한 맘으로 종종 거리며 대기 장소에 도착했는데 한 분이 아이가 안 보인다며 찾는다.

 교실에서 내려오며 길을 잃었나, 혹시 신발장에서 줄 설 때 먼저 내려가버렸나, 스물 여섯 명을 확인하고 내려왔는데도 갑자기 자신이 없어지면서 교문 밖으로 혼자 나가버렸으면 어쩌나 가슴이 내려앉는다.

 “학부모님, 함께 찾아봐요!”

부리나케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고맙게도 아이가 문 앞에 서 있다.

 ”이것 때문에 쉬야하기가 불편했어!!“ 몸통에 맨 실내화 주머니를 탁탁 치며 눈이 빨개졌다. 속상하고 창피한 표정. 줄을 섰다가 화장실에 가고 싶어서 다녀왔는데 아무도 없으니 당황했을 것이다. 그저 반가워, 꼭 안아 주었다. 다음엔 화장실 갈 때 꼭 이야기하고 가야한다 신신당부를 한 후 아이를 보내고 학년 협의실에 가서 숨을 돌렸다.

 ”저 오늘 하루종일 조마조마, 하교는 10분 늦고 부모님께 인계하는 중에 아이 잃어버릴 뻔했어요. 제가 뭘 잘 못했을까요?“ 처음 1학년을 맡아 울상인 나에게 1학년 3년차 선생님이 여유롭게 웃으시며 ‘원래 그런 거’라고 한다. 다음주가 되면 나아질 거라고.

 방과 후 해야 할 일로 하루 일과를 계산했는데 갑자기 잡힌 회의시간에 있는 줄 몰랐던 일들이 밀어 닥쳤다. 폭풍 업무를 감당 못해 결국 싸들고 퇴근을 하며, 엄마를 기다렸을 2학년 인이를 꼭 안아주었다. 아이의 몸이 말랑하고 따뜻해 기운이 난다. 유치원에 다니는 둘째, 온이를 데리러 가며

”이제 엄마 숙제 하나 남았다!”하니

“엄마 숙제 뭔데요? 내가 도와줄게요.”하는 고마운  인이.

“동생을 데리러 가는 일인데 인이 함께 가줄래?”하니 선뜻 그러마 한다.

2학년으로서의 첫 주를 보내며 긴장했을 아이와 선생님과 친구들에 대한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나누며 유치원에 도착했다.

 유치원 간식 시간에 스파게티를 두 그릇이나 먹었다고 자랑하는 온이를 데리고 드디어 집에 가는 길. 아픈데나 다친 곳 없이 재회한 꼬맹이들을 그저 포옥 안고 싶다. 피곤하다 투정부릴 틈도 없이 꼬옥 안아 충전하고 싶다.

“엄마 얼른 잠옷 입고 너네랑 꼭 안을래. 오늘은 아무것도 안하고 누워 있을래.”

했더니,

’손 씻고 옷 정리랑 가방정리하고 쉬어야 한다‘며 성화다.

 “오늘은 너희끼리 해봐!“ 했더니 호기롭게 당연히 할 수 있단다.

 집에 도착하니 모든 것이 감사하다. 무사히 부모를 만난 우리반 학생들도, 안전하게 집에 와 스스로 정리하는 우리 딸들도.

  남편은 모처럼 제주에 놀러 온 친구와 저녁 식사 약속이 있어 나와 아이들, 셋이 텔레비전을 보며 저녁 식사를 하기로 한다. 바르지 않은 식습관에 대해서도 걱정이나 죄책감이 없는 너그러운 오늘. 아이들을 재우다 나도 일찍 잠이 들고 문득 깨어나 안방 문을 열어보니 남편도 무사히 귀가해 침대에 있다.

“여보, 고마워. 나 없이도 집에 잘 와줘서.”

남편은 뜻밖의 감사 인사에 허허 웃으며 오늘 하루 무슨 일이 있었는 지 묻고 나는 무용담을 늘어 놓는다.

”소중한 것들이 더욱 소중해진 오늘이네.“

만족이 쉬워 행복한 나는 오늘 한 계단 더 내려왔다. 1학년 담임하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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