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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차 Mar 07. 2023

냉동실 재료로 글쓰기

책을 만들며

 두리 씨는 잠을 푹 자고 새벽에 눈을 뜨면 냉장고 속 식재료가 떠오른다고 하였다. 오늘은 이것들로 그것을 요리해야지, 하나씩 떠올리면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그 말을 들은 나는 그것이 엄마의 영감이라고, 엄마는 요리예술가의 반열에 올랐다고, 그리고 그것을 매일 맛보는 아빠는 행운아라며 까불고 우리는 함께 웃었다.


언젠가부터 나 또한 새벽에 눈을 뜨는 게 반가워졌다.


 지난밤 엄마, 아내, 교사의 역할을 마친 나를 자리에 눕히고 품을 파고드는 아이 둘에게 팔베개를 내준 후 자장가를 부르면 나 또한 함께 빠져들었던 단잠. 모자라지 않게 잘 자고 어스름하게 일어나면 비로소 쓰는 시간이 왔다.


내 마음을 꺼내어 바라보고, 닦고, 다시 품는 시간은 새벽이었다.


식구들이 깨지 않게 조용히 휴대폰에, 태블릿 PC에, 노트북 컴퓨터에 글을 쓴다. 엄마의 난 곳이 허전해 잠결에 찾는 아이들의 소리가 들리거나 아침의 분주한 시간이 다가와 버려 멈추기도 한다. 그 멈춤을 두려워하지 않고, 다만 그 멈춤이 글을 쓰는 마음을 포기하게 할까 두려워하며 묵묵히 쓴다. 완성하지 못하여도 괜찮다. 내가 쓴 그만큼으로 충분히 나의 시간이 차, 찰랑거린다.    


딱 맞는 풍토에서 키워진 제철 재료를 수확하여 바로 요리한 최상의 맛. 예전에는 그런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부담이 길을 막아 쓰지 못한 해가 길어질 때 찾아온 생각, 꿈꿔온 중 ‘사랑’을 이룬 내 현실의 글쓰기는 냉동실 속 재료를 찾아 만드는 요리였다. 엄마에게 받았는데 처치 곤란이거나, 무턱대고 너무 많은 양을 샀거나, 조금 쓰고 나머지를 어떻게 쓸지 몰라 일단 넣어 둔 철 지난 재료들이 가득한 그곳. 나만의 시간에 용기를 내 마음 속 냉동실을 열어 들여다 보면 그곳에 내 부모의 넉넉함과, 미숙하더라도 해내보려는 용기와, 미룰지언정 포기하지 않았던 마음들이 잊힌 채 담겨 있었다.    


딸 들이 부르거나 새 아침이 찾아와 멈추어진 어떤 글은 다음 새벽 나를 부른다. 내 안에 아직 하지 못한 이야기가 남았다고. 하나씩 다듬어 넣고 완성해 보자고. 냉동실 속 멸치와 다시마, 새우젓과 말리고 얼려져 잊힌 엄마표 시래기. 오래전 다져 사각형으로 냉동된 마늘을 찾아 넣고 오랫동안 푹 끓이다가 간을 보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오늘 새벽에도 조심조심 일어나 손에 잡히는 남편의 태블릿 피씨로 글을 쓰다가 딸이 쓴 글의 흔적을 발견했다.


우리 가족 소개

나는 인이입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가족은 엄마입니다.

우리 엄


마음이 찡하게 환해지다가, 쓰는 그녀를 멈추게 했을 여러 이유가 눈앞에 그려져 웃음이 나왔다. 엄마가 밥 먹으라고 불러서, 동생이 보고 있는 텔레비전 소리가 매력적이라서, 재미있는 만들기가 생각나서.

 

그리고 언젠가 자신이 적다 놓아둔 흔적을 발견하고 이어갈 글쓰기가 궁금해진다. ’우리 엄마는- 쓰는 사람입니다.‘ 라고 기록되고픈 욕심.


바쁜 학기 초, 학교와 가정에서 길이나 마음을 잃는 아이 없이 무사히 귀가하는 일에 노심초사하고, 부족한 시간 속에 동동거리면서도 무리하며 쓰고픈 집요한 애정이 이 책을 완성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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