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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차 Feb 19. 2023

꿈꾸던 현실

나의 꿈은 기혼모였다. 결혼을 한 후, 아이의 엄마가 되는 것. ‘현모양처 말하는 거 아냐?’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현명한 엄마와 좋은 아내-까지는 될 수도, 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고 욕심이 있다면 다만 아이들이 보기에 사랑이 넘치는 부부가 되고 싶었다.

 나의 부모는 사랑새 한 쌍이었다. 감정이 가득 담긴 큰 눈을 빛내며 기념일마다 아내에게 로맨틱한 편지를 쓰고 읽어주던 아빠,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을 가득 준비하고 우리 앞에선 늘 짝꿍과 한 편이었던 귀여운 엄마. 부부모임에 다녀온 다음 날이면 아빠는 직장 동료 몇이 ‘너희 부부 때문에 아내랑 다투었다’며 투덜댔다는 소식을 엄마에게 전하며 함께 웃었다.

 엄마에 대한 사랑만큼 딸에게도 극진한 아빠를 보며 이모들은 혀를 끌끌 찼다. 그렇게 눈을 높여 놔서야 쟤가 시집을 갈 수 있겠느냐고. 그 우려는 들어 맞았다. 나는 (외모나 재력 그런거 말고) 상대가 나에게 주는 애정의 밀도에 대해 만족이 어려웠고 나름 노력하는 지질한 사랑들에게 “난 그 정도 사랑 갖곤 어림 없다’며 섣불리 이별을 고했다.

 나의 부모처럼 사랑할, 바로 그 사람을 찾는 일은 언제가 끝일지 알 수 없어 지난하면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고단한 과업이었다. 엄마는 스물 일곱에 결혼 했는데! 흔히 말하는 결혼 적령기를 지나던 나는 급한 맘에 (잘 생기지도 않았는데) 어쩐지 끌리는 길 가는 사람에게 즉석 만남을 제의하기도 하고, 나에게 호감을 보이는 사람을 한꺼번에 여러명 만나기도 하였다. 겪어보니 알 수 있었다. 이런 방법으로는 밀도 높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기가 불가하다는 것을.

실패가 두려워 사랑에 빠지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가던 어느 날, 소개팅 자리에 한 시간이나 늦게 나온 (알고보니 예의 없는 사람은 아니고 모자란) 사람이 정직하고 세심하며 너그러울 뿐 아니라 ‘이 시대를 시인의 마음으로 살아가고’자 노트북 안쪽에 문구를 붙여 놓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느 설렘이 가득한 날 ‘나는 너를 만나 이렇게 성장하고 행복했으니 어떠한 이유로 너와 헤어지게 되더라도 난 한 톨의 후회 없이 우리의 사랑이 고마울거야.‘ 따위의 생각으로 말랑해진 나를 보며 임자를 만났다는 걸 알았다. 너와 함께 한 모든 날이 다 좋았고 첫눈처럼 너에게 가겠다는, 수천년을 신으로 살다가 마침내 첫사랑을 만난 공유처럼 뜨거웠던 나의 드라마는 그와의 결혼으로 현실이 된다. 그 후 원했던 시기에 찾아와 준 두 딸,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었던 제주로의 이주, 어린 시절의 큰 소망이었으나 잊고 있었던 고양이 집사로서의 생활까지. 나는 주도면밀하게 혹은 우연히 꿈을 이루었다.

 꿈꾸던 현재는 어떻냐면, 또다른 현실이다. 두 아이 육아 독립군으로 늘 시간에 쫓기며 너그러운 직장동료 사이에서도 눈치가 보이는 우리 부부. 열정으로 주목 받고 실력으로 인정받던 젊은 시절은 옛날이 되었다. 결혼기념일에도 오붓하게 데이트 할 짬은 없고 후딱 차린 저녁 식사 앞에서는 바른 자세로 앉아라, 꼭꼭 씹어 먹어라 잔소리(많이 참은 거다)를 하느라 부부 간의 대화는 산만하고 실속 없다. 그래도 아이들을 일찍 재우고 우리는 아직 잠들지 않은, 만남에 성공한 밤이면 어둠에 서로의 주름이 보이지 않으리라 믿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인이가 오늘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물으며, 아빠보다 자기가 더 좋은 게 맞냐고 여러번 확인했어.” 따위의, 우리의 사랑이 더이상 우리만의 사랑이 아니게 된 그 지난하고도 고단하며 뜨거운 이야기를.

 각자의 일과가 순탄히 돌아가는 것만도 빠듯하고 아슬아슬한 맞벌이 부부의 삶에서 낭만과 다정함이 아쉬운 어느날 남편 옆에 누워 고양이 치즈의 배를 주무르며 말한다. 나는 더이상 당신에게 잘 보이고 싶어 말이나 행동을 다듬지 않아. 그런데도 나를 사랑한다면 무척 감사한 일이지. 내 모습 그대로 나를 잘 보아 주어 고마워. 나를 사랑해 주어 고마워.

그리고 또다른 현실로 다가올 내일의 무사함을 위해

여섯 식구는 함께, 서둘러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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