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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차 Jul 10. 2023

치즈를 위하여


얼마전 부터 우리집 고양이 치즈의 걸음걸이가 불편해 보였다. 오른쪽 뒷다리를 내려 놓을 때 조심하는 듯 보여 자세히 살펴보니 발바닥 끝을 위로 들어 올리며 살살 걸음을 디디는 것이었다.

발가락 젤리에 티눈이 생긴 적이 있어 이번에도 같은 문제인가 며칠간 살펴보았는데 뾰족한 이유를 알기 어려웠다.

고양이를 진료하는 집근처 병원에 문의해 검진 날짜를 잡았지만 맘 놓고 기다리기엔 초조했다. 아쉬운대로 고양이 온라인 까페 정보를 찾아보니 심장관련 질환 때문에 뒷다리를 절게 되는 경우가 꽤 있다 한다. 심각한 병은 아닌 지 걱정하며 밤을 보내고 다음날 병원으로 향했다.

검사 결과는 대퇴골두부 골절.

치즈의 허벅지 뼈와 엉덩이가 만나는 관절 부분이 조각난 것이다. 수의사에게 어쩌다 다친 것일지 물으니 혈류 문제 혹은 유전으로 발생된다고 추정할 뿐 단정짓기 어렵다 하며 그동안 치즈가 만성 통증으로 고생했을 거라 했다. 기질 탓이라고만 생각했던 얕은 잠, 식욕부진, 으슥한 곳을 찾아 들어가던 수줍음. 고통의 징후였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렸다. 더 일찍 데려오지 못해 미안했다.

치료법은 단순하고도 놀라웠다. 골절된 관절 부분을 잘라내면 나머지 세발에 의지해 걸으며 다친 발의 근육도 조금씩 발달시켜 결국은 네발이 모두 멀쩡한 고양이처럼 걷게 된다는 것이다.

다만, 불편하더라도 지속적으로 걸어 근육을 키울 수 있도록 재활 훈련이 필요하며, 고양이 성격 상 낯선 병원에서는 훈련이 어려워 가정에서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

일박이일의 수술과 입원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치즈는 다리 털이 밀려 절뚝거리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첫날은 수술의 충격 혹은 약기운 때문인지 내내 먹지도 놀지도 않고 잠만 잤다. 먹이는 것보다 휴식이 우선일 듯 하여 누나인 앙꼬와도 분리 하여 충분히 쉬게 하였다.

다음 날, 토요일.

힌주간 열심히 출근한 내 몸엔 피로가 가득 쌓였지만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우리집 자매들이 수시로 엄마를 찾아 묻고 부탁하고 안기고 뽀뽀하는 와중에 틈틈히 치즈를 먹고 마시게 하고 또한 몸을 움직이는 방법을 찾았다. 장난감으로, 간식으로.

개의 삶에서 주인-산책-집이 중요하다면 고양이의 그것은 집-놀이-집사의 순서라 한다. 사료 몇 알을 먹고 물을 겨우 홀짝인 치즈의 놀이 본능은 대단했다.

야윈 몸을 절뚝이면서도 새로 산 낚시대 끝의 털뭉치를 향해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그!

스스로 움직여주어 고맙고 이쁘고 대견하다.

아이들과 목욕을 한 후, 드디어 남편이 아이들을 방에 데려가 책을 읽어주면 시작되는 나만의 귀한 시간.

당분간 그 시간의 나는 책을 읽거나 일기를 쓰지 않기로 한다. 낚시대를 들고 치즈를 낚는 나. 고양이 강태공이 된 나는 더없이 진지하다. 치즈가 앞뒤로 길게 움직이며 튼튼한 대퇴부 근육을 만드는 동안 함께 하겠다.

나의 시간을 조금 내어주고 너의 곁을 더욱 든든하게 지키는 집사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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