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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차 Nov 16. 2023

그루밍아트

맘을 씻기다.

 거실 창을 통해 상쾌하게 들어오던 아침 바람이 매서워졌다.  


 일명 ‘냥플릭스’라 불리는 창밖 풍경을 즐기던 앙꼬와 치즈도 이제 포근한 곳을 찾아 침대 발치에 자리를 잡는다. 따수운 이불 위에 곧바로 배를 누이고 노곤함을 즐길만도 하지만 그 전에 꼭 정해진 의식을 거치는 부지런쟁이들이다.

 먼저, 이불을 덮은 집사의 허리께에 다가와 털썩 기대어 눕기. 그런 다음 뺨, 목덜미나 배를 쓰다듬으라고 눈을 마주치며 신호를 보낸다. 폭신한 털을 가진 짐승의 온기로 차가운 손을 데우려는 사심과 ‘내 냥맘 내가 알아주는’ 애정을 담아 손을 내밀면 오늘은 여기! 급한 곳을 먼저 갖다대는 녀석들을 맘껏 주무른다. 처음엔 살그머니, 나중엔 박박 치대듯 완급을 조절 하면서.

 그렇게 한참 온기를 나누다 슬슬 지겨운 듯 뒷다리를 세워 몸을 일으키는 녀석들. 행여나 방해 받을까, 침대 모서리 쪽으로 자리 옮긴 후, 앞 발을 핥아 정성껏 적시고 얼굴부터 정수리, 귓 속까지 야무지게 몸청소를 한다. 이렇게 그루밍을 할때면 그르릉 그르릉 만족하는 소리를 내고, 그 부지런한 몸짓, 하루에도 몇 번이나 되풀이하는 몸단장이 그들에게 귀찮은 일만은 아닌 것 같아 나는 놀란다. 실제로 고양이들은 그루밍을 하며 몸을 깨끗이 할 뿐 아니라, 맘을 이완하며 안정을 취한다고 한다. 긴장이 많은 환경에 사는 고양이들에게 오버 그루밍-지나친 그루밍으로 탈모나 피부병등의 부작용을 가져옴-의 문제가 생길 정도로, 고양이들은 불완전한 현실 속에서 행복을 찾아 할짝할짝 몸을 쓰다듬는 것이다. 그루밍을 마친 그들은 정결해진 몸과 편안해진 맘을 눕히고 마침내 잠에 빠져든다.


 나 또한 공부를 하느라, 주어진 일을 해내느라 몸도 마음도 지쳐 집에 돌아올 때가 있다. 고단한 몸을 욕조에 담궈 땀과 먼지를 말끔히 씻어내고, 푹신한 침대에 몸을 누일 때에도 해결되지 않는 맘의 찜찜함. 해답이 아닌 걸 알면서도 괜스레 휴대폰을 열어 온라인 공간을 방황하거나, 적당한 영화를 찾아 리모컨을 누르곤 했다.

  이제는 안다, 그럴 때는 읽거나 써야 한다는 걸. 그날 그날 다르게 손에 잡히는 책에 눈길을 두면 마구 헤집어진 맘 속의 불순물들이 가라앉아 맑아진 맘으로 나의 하루와, 그 속의 사람들, 순간의 내 생각과 감정들을 비춰볼 수 있었다. 활자를 두드릴 마음의 힘이 생기는 날엔 서툴고 시시콜콜한 기록을 남겼다. 그 사소한 흔적들은 다음날의 나를 일으키고, 어제와 비슷한 일이 있을 때 더 준비된 선택을 하게 하거나, 잘못된 선택인 것을 조금 더 빨리 알아채 바로 잡을 수 있게 해주었다.

 나만의 방법으로 매일 내 맘을 쓰다듬어 건강하고 정결하게 해주는 사소한 예술. 나에겐 그것이 글쓰기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림, 춤, 사진, 음악일 수도 있다. 타인에게 보여 감흥을 주고, 알려지고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만 나의 이완과 휴식과 행복을 위한 작은 창작의 시간.

 퇴근을 하고 저녁을 지어 먹은 후 목욕을 마친 나는 작은 예술을 한다.

 그리하여 내 맘이 솔직하고 건강하도록 아끼며 돌본다. 이제 몸도 맘도 모두 잠 속에 놓여 푹 쉴 수 있다.

 

 따수운 이불 위에 둥글게 몸을 만 깨끗한 고양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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