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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차 Dec 23. 2023

선물

첫사랑

 식힐 줄 몰라 뜨겁게 서툴렀던, 십 대의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치열한 애정과 간절한 휴식과 절실했던 성장, 부모가 가르쳐 주지 못한 것을 배우느라 어른들의 눈을 피해 후미진 곳에서 하루를 보내고 돌아와서는 상황을 모면하느라 예민하고 무례해지고 말았던 그 시절이.


 제주도립미술관에서 해외 작가의 작품을 초대한 전시가 열렸다. 이번 전시에는 앙리 마티스가 투병하던 시절, 침대에서 가위, 풀, 그리고 핀을 이용해 완성한 컷 아웃 판화와 그의 단상을 엮은 아티스트 북, ‘재즈’가 주요 작품으로 소개되었다. 작품 제목에 맞춰 미술관에서 연말 재즈 공연을 기획하였고 예약에 성공한 주말, 오랜만의 공연에 따뜻하게 데워진 맘으로 운전대를 잡았다.


 미술관에 도착해 작은 공연장 뒤편으로 입장을 하니, 푸른 조명과 콘솔하우스의 모습이 보였다. 한 때 너무나 익숙해 귀함을 몰랐었던 무언가를 한참 잊고 있다 갑자기 맞닥뜨렸을 때, 오랫동안 기다려 온 물 한 방울을 만나 먹처럼 번지는 나의 향수. 그럴 리가 없는 걸 알면서도 콘솔 뒤에 선 기술자들을 기웃거리고 그의 나이 든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남에게 비칠 겉모습과 스스로에게 비친 속마음이 모두 보잘것없었던 시절. 부끄러움으로 오므라든 손끝을 맞잡고 서로의 눈을 가려주었던, 상대의 가장 못 난 시기를 그렇게 견뎌 낸 나와 그 사람. 그저 함께 있고 싶어 추위도, 더위도, 모기 물림도, 질 낮은 식사도, 비밀도, 거짓말도, 질투도, 후회도, 미련도 상관없었던, 밀도 있던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뜨겁게 서로를 키웠다.


 그가 가르쳐 준 것들.

이태원 재즈바에서 음악에 맞춰 발끝을 움직이는 법을 배웠고 소공동 마티스 전시회에서는 그가 찍어준 사진 속 내가 어른이 되었음을 알았다. 믹싱룸에서 우스운 동작들을 하며 영상에 소리를 넣던 그. 마감에 쫓겨 종종거리던 인생 선배의 모습에서 꿈은 완성형이 없음을, 창작의 과정은 보잘것없고 지난함을 배웠다. 익숙한 일상에 감사하고 그것을 수호해 내는 하루가 행복임을 안 후에 그를 만났더라면 우리의 배움과 가르침은 달랐을까.


 어느덧 콘솔 뒤 기술자나 무대 위 연주자들보다 나이가 들어버린 나는 화려한 조명과 능숙한 연주 뒤로 연습의 고단함, 연주 전의 긴장감과 밤의 불면까지 함께 듣는다. 그들이 그것마저 즐기게 되었기를 바라며, 그 또한 비슷한 하루 속에서 행복을 찾는 법을 알게 되었기를 바라며.


 또한 십 대가 될 딸들을 생각한다.

 나에게서 떨어져 나온 조각들과 세상에게 얻은 색깔들로 매일 새로운 퍼즐을 만들고 있는 딸들. 미숙한 열정으로 가득 찰 너희의 청춘. 그 순간들을 너는, 아니 나는 상처 내지 않고, 상처받지 않고 견뎌낼 수 있을까.


 서툰 내가 부끄럽고 통제되지 않는 뜨거움이 당황스러워 눈을 감아버리고 싶은 순간.

딸의 눈을 뜨게 해 줄 부모가 될 자신은 없으니, 그저 딸의 눈을 가려줄 그녀의 친구나 연인을 미워하지 않기로, 그러기 위해 기억하기로 다짐한다.

치열함, 간절함, 절실함, 그 뜨거움 속에 주고받은 사랑의 상처들로 나 또한 무럭무럭 자라났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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