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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싸 Jun 18. 2021

동물의 세계 (2) - 경이와 침입

'모리스디페렌테'(다른 삶)12

모리스 디페렌테 Moris Diferente. 동티모르의 2개 공용어 중 하나인 테툰어로 '다른 삶'이란 뜻이다. 동티모르는 인도네시아 발리섬 아래쪽, 호주의 위쪽에 위치한 작은 섬나라다. 근 5백 년에 가까운 식민지에서 21세기 초 독립한 나라로, 한국에는 상록수 부대 파견지로 많이 알려져 있다. 이곳은 내가 2013년부터 일하고 생활한 곳이자, 가족을 꾸린 곳이기도 하고, 서로 다른 삶들에 대해 무척 많이 생각하게 되는 곳이다. 낯선 땅, 다른 삶, 이상이 현실에 부딪치는 순간순간의 일들을 여기 기록한다. 


자연이 그대로 살아있는 곳에 산다는 것은, 경이로울 때도, 무서울 때도, 불편할 때도 많다는 것.

 

야생을 느끼기 위해 멀리 갈 필요도 없다.

건기의 덥디 더운 오후, 사무실에 앉아 있다 잠을 쫓을 겸 잠깐 문 밖으로 걸어 나오면...

도서관 앞쪽에서 숫염소 둘이 뿔을 맞대고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게 보인다. 얼핏 보면 덩치 차이가 꽤 나 보이는데, 작은놈이 절대 안 물러난다. 큰 놈이 먼저 몸을 들어 뿔로 내려치면 작은놈이 그걸 받아치면서 팽팽히 맞서고 있는데, 교미를 위한 힘싸움인가 보다.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 화면에나 나오는 장면을 사무실 앞에서 보니깐 새삼 신기하다. 로스팔로스에 온 지 1년 남짓, 한국에 휴가를 갔을 때 길이 왠지 허전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 똥 싸면서 왔다 갔다 하는 말들, 힘겨루기 하는 염소들, 쏜살같이 달려가는 돼지들, 아무 데나 항상 돌아다니는 닭들이 없이 사람만 다니는 길을 왔다 갔다 하니 말이다.  


싸움하는 염소도 있고, 아기 염소와 함께 풀 뜯으러 오는 엄마 염소도 자주 보인다. 봉구는 아기 염소들을 보면 흥분해서 까불다가, 엄마 염소가 뿔을 세우면 바로 후퇴. 
소들도 자주 보인다. (여기 사무실 앞입니다...) 염소들한테 까불다가, 나한테 혼난 봉구는 소들에게로 가서 짖어 보지만, 덩치에서 상대가 되질 않는다...


제일 흔한 게 닭. 엄마 닭과 수탉, 병아리들이 어디에나 돌아다닌다. 거창하게 “생물학적 다양성”까지는 아닐지 모르겠지만, 여기 닭들은 정말 생김새나 색깔이 다양하다. 흰색, 희고 깜장 얼룩이, 갈색 얼룩이, 갈색에 화려한 색깔의 털을 가진 애 등등 닭들의 생김새나 색깔이 정말 다양하다. 화면에서 본 '닭공장'에서 기르는 닭들은 그냥 빨리 크고 빨리 살찌는 닭들이라 그런가, 하여간 정말 그냥 '인간의 먹잇감'이기 때문에 당연히 '외모'는 중요하지 않겠지. 여기는 닭들이 하나하나 너무 다르니, 하나하나가 다 나름의 특성이 있는 '개체'로 보인다. 병아리들도 털 색깔이 모두 꽤 다르다. 

여기서 돌아다니는 닭들은 항상 돌아다니며 운동을 많이 해서 그런가, 그렇게 많이 야들야들하지 않다. 무엇보다, 맛을 떠나서 먹으려면 일단 오래 기다려야 하고, 쉽게 잡을 수도 없다. 하지만 그건 사람의 입장일 뿐. 닭 입장에선, 보통의 공장 닭보단 이곳의 삶이 훨씬 더 좋을 것 같다.  


내가 사는 집은 어떻고?! 

테끼, 토께, 온갖 날벌레, 반딧불이는 그냥 같이 들락날락하면서 공간을 항상 함께하는 존재들이다. 물론 닭들도 항상 왔다 갔다 한다. (앞집 주인 할아버지네 닭)

침입자도 있다!

짧게 한 두 달 정도 호주-뉴질랜드 커플과 함께 산 적이 있을 때였다. 호주인 J (지인의 표현에 따르면 '왠지 춥게 생겨 보이는' 키 185 정도에 마른 체형, 금발에 파란 눈에 히피스러운 턱수염과 그에 어울리는 히피스러운 챙모자를 멋들어지게 챙겨서 쓰고 다니는 조경 디자이너다. 3개월 예정으로 로스팔로스에서 Many Hands와 함께 운동장 조성 관련 조사와 밑 작업을 했었다)와, 뉴질랜드인 K (춥게 생긴 J와는 다소 대조적인 느낌의 밝고 터프하고 시원시원한 느낌의 여자분. 예술을 전공하고 '예술/미술 치료'를 업으로 하고 있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로, 다른 듯하면서도 히피스러운 느낌은 J와 잘 맞는다. 본인이 만든 가면, 액세서리, 그림 등을 팔면서 세계 여러 곳을 여행했고, 여기서는 역시 단기로 Many Hands와 함께 유청소년 미술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같이 산 지 3일 정도 되었을까, 다들 11시 즈음 자러 들어갔는데 10분 즈음 흘렀나, 밖에서 엄청나게 큰 고양이 싸움 소리가 난다. 후다닥 거실 문을 열었다. 현관 앞 내실 공간에 까망이가 눈을 번쩍번쩍 빛내며 빤히 쳐다보는데 완전 놀라서 몸이 굳어졌다. 까망이는 이 근방을 본거지로 삼고 있는 동네 수컷 고양이다. 길고양이 특유의 강인해 보이는 커다랗고 단단한 몸을 가진 좀 무서워 보이는 고양이다. (그리고 이웃집의 예쁜 암고양이 순심이의 두 번째 출산의 원인제공에 대한 강력한 용의자, 아니 용의묘이다.) 몇 달 전인가 네다섯 번이나 겁도 없이 우리 집 베란다로 들어와 야옹이와 서로 대치하길래, 내가 소리 지르면서 쫓아낸 적이 있었다. 한동안 뜸하기도 했거니와, 베란다로 통하는 문을 아주 조금만 열어 놓았는데, 대담하게 그 틈을 통해 집안 안쪽까지 들어왔다는 게 놀랍고 기가 막혀 순간 얼음이 되었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그새 J 역시 고양이 싸움 소리에 놀랐는지, 팬티 바람으로 뛰쳐나왔다. 뒤에서 J가 헉하고 놀라는 소리가 들렸다. 


까망이에 비하면 근육따위 일도 없는 우리 야옹이...

 

까망이를 이렇게 가까이서 본 건 처음인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크고 훨씬 몸이 두툼하다. 갑작스럽게 사람이 둘이나 튀어나와서 그런지, 깜깜한 데에 순간적으로 손전등 빛이 확 하고 닿아서 그런지 까망이는 도망가지도 않고 굳어만 있다. J와 나는, 같이 쉬익하는 위협하는 소리를 내면서, 어떻게든 베란다 문쪽으로 몰려고 했다. 그 순간, 정말 순식간에 까망이가 우리 둘이 서 있는 거실 문쪽으로 화악 하고 뛰어들었다. 아마 갑작스러운 손전등 불빛에 시야가 가려져 당황한 차에 한 행동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정면돌파를 예상하지 못한 J와 나는 완전 혼비백산해 후다닥 몸을 피했다. 이후 몇 초 간, 거실 안에서 까망이도 후다닥 뛰어다니고, 나와 J도 뛰어다니는 정신없는 상황이 연출되다가, 까망이가 안 쓰는 게스트룸으로 뛰어 들어가 버렸다. 일단 정신없이 그 방 문을 닫으려고 했더니, 고정장치가 고장이 나버렸네! (안 쓰는 방이어서, 맨날 고쳐야지 하고 내버려 두었더니 하필!) 열쇠 없인 문을 닫을 수가 없다. 둘이서 문고리를 잡고 어떻게 하면 좋지 하고 있는데,  둘 다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담요를 들고 있다가 나오는 고양이를 확 덮쳐서 담요째 잡을까?”

“J, 우리가 그만큼 빠를 수 있을까? 별로 실현 가능하지 않은 거 같아”

“(방 안에서 K가 소리침) 물을 뿌려 버려!”

“흠… 물 좋지… 그런데 물 닿으면 쟤가 완전 혼비백산해서 날뛸 텐데, 그러다 할퀴면 어떡해?”

“….”

“너 한국에서 광견병 접종 맞고 왔니?”

“… 아니… 너는? 호주에서 맞고 왔니?”

“나도 안 맞았어.”

“….”

“어떡하지? 어떡하지?”


둘이서 답 없이 이러고 있다가, 결국 거실의 소파를 바리케이드식으로 놓아 까망이의 탈출로를 베란다 문으로 유도하기로 했다. 즉슨 모든 다른 문은 닫은 채, 까망이가 들어가 버린 게스트룸의 문을 열어 놓는다. 그리고 그 문에서 베란다 문으로 이르는 방향을 한 면만 열어놓고, 모두 소파로 막는다. 물론 소파는 고양이가 후딱 뛰어넘기 쉬운 높이지만, 일단 시각적으로 주욱 트여 있는 길이 바로 문과 연결되니깐 밖으로 나갈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라는 것이 J의 논리이고, 딱히 더 좋은 생각이 나지 않는 나는 그냥 동의! 

일단 객관적으로 무척 열세인 우리 야옹이를 (스트리트파이터인 깜장이와 비교해 보니 완전 애기다! 근육질 까망이가 앞 발 한쪽으로 후려치면, 우리 야옹이는 그냥 뻗겠다...) 부엌에 (변기 대야와 함께) 가두어 놓았다. 부엌으로 통하는 문은 하나밖에 없으니, 그 문을 닫으면 까망이가 부엌에 침입할 수 없다. 

그 후 다른 방문들을 닫고, 불을 끄고 까망이가 들어간 게스트룸 문을 살며시 열었다. 예상대로 사람 기척이 나고 두런두런 하니, 어디 구석인가에 숨어서 나오질 않는다. 그 틈에 J와 둘이서 낑낑대며 소파를 한쪽으로 몰아 바리케이드를 만들었다. 

거 참, 같이 산 지 일주일도 되지 않는 하우스메이트와 오밤중에 속옷과 잠옷 차림으로 소파를 옮기고 있으니…

하여간 둘이 합심해 소파를 옮기고 잠깐 지켜보기로 했다. 까망이 역시 움직일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각자 방에 들어가 잠을 청하기로 했다. 사람들이 들어가면 그때서야 나와 지 갈길 가겠지 하며… 예상치 못했던 고양이 침입에 놀란 대다가, 낑낑대며 소파 옮기느라 잠이 완전 깬 상태인 데다가, 저 놈의 까망이 새끼가 알아서 제대로 나갈까 신경이 쓰이는 지라 제대로 잠이 올까나 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잠이 잘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J가 먼저 일어나 게스트룸을 살피고 있다. 잠이 덜 깬 상태로, 눈을 비비며 “J, 까망이 갔니?”하고 물어보니 확실히 갔단다. 하지만 이래저래 까망이 털이 여기저기에 있다. 어제 들어온 현관 내실 쪽에는 보란 듯이 똥도 싸 놓았다! K는 야옹이를 스파르타 훈련시키고, 먹이를 많이 주어서 강한 고양이로 키워야 한단다... 아흑… 우리 야옹이...

어제 오후에 잠깐 밖으로 나간 야옹이가 집 주위 사방에 스프레이를 하면서 영역 표시를 했는데, 거기에 도전을 받은 걸까? 까망이가 대담하게 집까지 들어와 싸움을 걸다니! 

집구석에서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는 로스팔로스 동물세계 본능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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