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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싸 Jun 08. 2021

동물의 세계 (1) - 쥐, 벌레,테끼와 토께

'모리스디페렌테'(다른삶) 11

모리스 디페렌테 Moris Diferente. 동티모르의 2개 공용어 중 하나인 테툰어로 '다른 삶'이란 뜻이다. 동티모르는 인도네시아 발리섬 아래쪽, 호주의 위쪽에 위치한 작은 섬나라다. 근 5백 년에 가까운 식민지에서 21세기 초 독립한 나라로, 한국에는 상록수 부대 파견지로 많이 알려져 있다. 이곳은 내가 2013년부터 일하고 생활한 곳이자, 가족을 꾸린 곳이기도 하고, 서로 다른 삶들에 대해 무척 많이 생각하게 되는 곳이다. 낯선 땅, 다른 삶, 이상이 현실에 부딪치는 순간순간의 일들을 여기 기록한다. 

내가 로스팔로스에 살던 (2013~2017년) 때, 옆 집엔 호주와 포르투갈인 이웃이 살았다. 여러 생활의 이슈들을 공유하는 좋은 이웃이었는데, 우리의 가장 큰 화젯거리 중 하나는 '쥐잡이'!

로스팔로스 오기 전, 각자 살던 곳에서는 쥐를 볼 일이 거의 없었던 관계로 낯선 것도 낯선 것이지만... 실제로 꽤 피해를 주다 보니 다들 쥐에 대해 예민해 있었다. (쌀, 밀가루, 면, 과자, 감자 등 일용할 양식을 갉아먹는다! 먹고는 그 주위에 똥도 싸 놓는다! 캔이 아닌 플라스틱이나 종이류 포장은 우습게 갉아서 안의 내용물을 먹고, 흩트려 놓는다! 아침에 일어나 그 잔해를 보고 다들 '무섭+빡침+소름' 콤보한 게 몇 번인지 모른다...) 


출퇴근 때 길에서 서로 만나면, 전날 부엌에 나타난 쥐를 보고 혼비백산했다는 이야기를 흥분하며 했다. 같이 저녁을 먹고 한 잔 하며, 개발협력과 빈곤에 대한 심각한 이야기들을 하다가도 왠지 모르게 끄트머리엔 꼭 “쥐잡이” 이야기로 흘러갈 정도로 쥐에 대한 이야기는 항상 무궁무진했다. (기승전결 "쥐"!) 

쥐끈끈이를 놓았는데 아직 못 잡았다부터 시작해서, 우리 집은 엄청 빠르게 내려오는 쥐덫을 새로 놓았는데도, 쥐가 먹이만 빼먹고 잡히지 않았다, 영리한 쥐들 같으니라는 이야기로 가다가, 쥐와 바퀴벌레 중에서 더 참을 수 없는 것은 무엇인지 등등... 쥐 얘기로 3시간은 수다를 떨 수 있었다.  


쥐 이야기는 쥐를 부르는 걸까? 

어느 날 저녁, 이웃 3집이 같이 식사를 한 날이었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 조제의 IT 오타쿠 농담, 호주 영화배우, 3국의 음식, 여행 이야기, 인생의 의미 등등 별별 이야기들을 시끌벅적하게 하다가 역시 마무리는 쥐로 흘렀다. 지난주부터 우리 집에 나오기 시작했다는 생쥐 이야기를 한참 하고 있었는데, 세상에나! 

바로 그 쥐가 겁도 없이 부엌 바로 앞 책장 밑으로 쪼르륵 들어가는 것을 본 거다. 책장을 바로 마주 보고 있던 나와 K는 캬악 거리고, 이네카 아줌마는 의자 위로 피신하고, 조제는 뭔가 권위 있는 목소리로 "일단 문을 모두 닫으세요!"라고 지시했다. 얼떨떨하게 문을 닫고, 조제에게 빗자루를 쥐어줬다. 조제가 제법 결연한 자세로 빗자루를 꽉 쥐고 쥐가 숨어 들어간 책장을 흔들흔들한다. 나는 얼떨결에 손에 잡히는 대로 바퀴용 스프레이를 잡고 주제 뒤에서 대기! 

갑자기 책장 밑에서 생쥐가 쪼르륵 기어 나오긴 했는데, 조제가 미처 후려치기도 전에 부엌으로 통하는 문 틈새로 쏘옥 빠져나가버렸다. 이래서야 원... 이젠 쥐가 어디 있는지 모르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아마 부엌 찬장 아래 어딘가에서 숨어있다가 사람들이 자면 활개를 치며 돌아다니겠지. 

쥐는 보이지 않아도 무섭고, 보여도 무섭다.


다시 쥐 끈끈이를 설치했다. 

포장지 그림에 따르면 능히 코끼리도 붙을 위력의 끈끈이! 두툼한 종이 위에 끈끈이를 둘러 바른 후, 중간에 미끼를 (소시지나 고기 등) 놓고, 쥐가 돌아다닐 법한 곳에 놓아둔다. 그리고 쥐가 안 잡혔으면 하는 마음 반 ("실제로 잡히면 어떻게 치우지?"라는 걱정 때문에...), 잡혔으면 하는 마음 반으로 잠이 든다. 다음날 확인하면 쥐 대신 애꿎은 도마뱀이 붙어있는 경우도 있고, 실제로 쥐가 붙어있는 경우도 있다. 물론 생포다. 숨이 붙어있는 상태! 쥐는 잡았지만, 왠지 기쁘지 않고 마음이 더 무겁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다음날 퇴근길에 보니 한 마리가 잡혀있다. 아직 살아있어 좀 꿈틀거린다. 그날이 쥐들한텐 무슨 날이었는지, 쥐 끈끈이 말고도, 창고 안 플라스틱 박스 안에서도 쥐가 또 한 마리 발견되었다. 아직 살아 있는 채로...

아무래도 쥐가 여기서 새끼를 깐 게 아닐까 라며 우리 집 여자 셋이 울상이 되었다. 계속 같이 이야기를 하다 보니, 느낌이 현실이 되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쥐의 가족이 더 있는 것만 같은 확신이 들었다. 몰랐으면 좋았을 걸, 이야기하지 않았으면 마음이 더 평화로워 졌을 걸... 뒤늦게 후회해봤자 이미 소용없는 일. 


쥐약은, 먹고 죽은 쥐를 찾기 어렵다는 것이 함정, 그래서 선택한 쥐 끈끈이.


어떻게 하다가 박스 안으로 들어가 나오지 못하게 된 쥐는 차마 아무도 어떻게 처리하지 못하고, 쥐끈끈이에 잡힌 쥐의 사체는 지난번에 이어 K가 “태워야 합니다”라고 강력하게 주장, 다 같이 집 앞 모래밭에서 화형식을 거행했다. 이후 한동안 다른 곳에선 쥐를 보지 못했으나, K의 방에서만 생쥐를 몇 번 목격했더랬다. (그것이 정말 쥐였을까, 아니면 쥐의 원령이었을까? 보고 있나, K?)



쥐만큼은 아니지만, 바퀴벌레 역시 괴롭긴 하다. 

로스팔로스에서 3개월 만에 옆 옆 집으로 이사를 했다. 이사 간 첫날밤, 싱크대 근처에서 꼬물꼬물 하는 바퀴를 한 마리 발견하고 화들짝 놀라서 바퀴 스프레이를 그 주위에 뿌렸다. 세상에나! 

그 냄새를 피해서인지, 바퀴벌레 일가족이 싱크대 뒤에서 기어 나오는데 식겁했다. 완전 대왕 바퀴 두 마리, 중간 크기 바퀴 세네 마리, 작은 크기 바퀴 대여섯 마리가 나오는데... 무슨 벌레 공포영화인 줄 알았다. 이전에 사시던 빅터 아저씨께서 바퀴 스프레이를 한 번도 안 쓰셨는지, 여기가 원체 벌레에 유리한 환경인지. 


많이 보면서 익숙해지는 게 무섭다고, 벌레 하나에 일희일비하지 않게 된다. 원래 벌레에는 그다지 호들갑을 많이 떨지는 않았지만, 더 훈련되는 느낌이다. 물론 바퀴는 보는 즉시 잡는다. 하지만 다른 벌레, 나방이나 날벌레 같은 것들은 워낙 자주 보이니깐, 그런가 보다 하게 된다. 게다가 낮이 되면 다 안 보인다. 아마 밤에 주로 활동을 하는 것이니 그럴 테지. 하여간 피차 서로서로의 활동시간을 존중하면서, 매번 아등바등 잡으려고 할 필요가 없다고 제법 마음이 편안하게 되었다. 


테끼와 토께는 편안한 것을 넘어, 이젠 제법 친숙하기까지 하다.

처음에 동티모르에 오면 놀라게 되는 여러 가지 중 하나가 테끼teki와 토께toke! 둘 다 도마뱀이다. (gecko)

나중에 보니, 발리에서도 흔히 보이고, 다른 더운 지역에도 흔히 있다고. 

몸길이 3~10cm 정도의 조그마한 도마뱀은 테끼.

그보다 커서 한 20~30cm의 도마뱀은 토께라고 한다.


테끼가 우는소리는 들어본 적 없는데, 토께는 약간 딸꾹질 같은 느낌으로 “톡~께”라는 소리를 크게 내며 운다. 아무래도 크기가 있어서 그런가, 토께를 처음 봤을 때는 좀 위압적이긴 했는데, 뭐 익숙해지니 그런가 보다 하게 된다. 밤에 자려고 누워있는데, “톡~께”하는 소리가 들리면 제법 정취마저 다. 소리 종류는 다르지만 귀뚜라미나 개구리 소리 들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든달까.

하지만 처음에 봤을 때는 무척 놀랐고, 익숙해지는 데 몇 달 걸렸다. 테끼나 토께 모두 벽이나 천장에 몸을 착 붙이고, 가만히 있다가 모기나 파리 같은 곤충을 잡아먹는데, 움직일 때는 무척 빨라서 깜짝깜짝 놀라게 된다. 처음에는 워낙 낯설고, 빠른 움직임에 놀라고, 반사적으로 "으악! 징그러워!" 했는데, 익숙해지면 테끼는 제법 귀여운 구석이 있다. (야옹이가 제일 좋아하는 사냥감이어서 잡았을 때 한 번 유심히 들여다본 적이 있는데, 테끼 얼굴은 정말 순둥순둥 하게 생겼다) 게다가 가만히 있으면서 모기나 파리를 잡아주니 이로운 동물인 셈!


로스팔로스 우리 집 테라스. 노을 질 때 풍경이 좋다. 어딘지 딸꾹질 느낌의 톡~~께~ 소리가 들리면 더 좋다. 그러다 가끔 전선 위를 왔다갔다 하는 쥐를 보면 정신이 번쩍 든다!



조그맣고 투명한 테끼와 달리, 토께는 크기도 크고, 색깔도 거무칙칙, 얼룩덜룩한 것이 쉽게 마음이 가지 않은 것이 사실. 로스팔로스 집에 처음 이사 오고 나서, 작은방 벽에 붙어 있는 토께를 처음 봤을 땐 너무 놀라서 악! 소리를 지르고 밖으로 뛰쳐나왔더랬다. 우리 집 뒷마당에서 일하고 계시던, 주인 할아버지네 일꾼 아저씨들에게 울상을 하며 빌었다.

"저희 집에 토께가 있어요. 좀 잡아 주세요!" 

"아하하하하, 잡아서 뭐 하게요?"

"(아니, 그거야 당연한걸!) 잡아서 밖으로 버리게요."

"아니 왜요?"

"(잠시 말문이 막힘) 음... 무서워서요"

"와하하하하하하 (정말 크게 웃으심). 마나, 괜찮아요. 토께는 무섭지 않아요. 헤치지 않아요"

"아니, 그거야 그렇겠지만... 그래도... (징그러워요, 왠지 찝찝한 느낌적인 느낌이 들어요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언어가 딸림)"

"그리고 토께는 그 집에 계속 살고 있는 토께인데요. 없애면 안 돼요."

"(속으로는, 전 그런 거 상관없다고요 ㅠ.ㅠ라고 생각하지만, 아저씨들이 진지하시니 차마 말은 못 하고... 게다가 나 혼자선 감히 잡을 수 없으니...) 알았어요..."

하고 돌아섰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이후엔 그냥 이사 나올 때까지 그 토께 (혹은 그 토께의 자손들)와 계속 같이 살았다. 다행히 서로 마주친 적은 별로 없다.


지금도 토께는 비호감이다 - 너무 크고, 좀 무서운 색깔이다 (독버섯 색깔).

그렇지만 냉정히 따지자면, 테끼나 토께가 나에게 피해를 끼친 적은 단 일도 없다. 원래 하던 대로, 가만히 벽이나 천장에 붙어서 곤충을 잡아먹다가, 사람 기척에 놀라서 후다닥 도망가는 것이 전부일뿐. 물론 가끔 예기치 않게 후다닥 움직이다가 마주치기라도 하면, 서로 깜짝 놀라긴 한다. 

사방이 뚫리고 열린 동티모르 시골의 열대 가옥에서, 테끼나 토께는 어딜 가나 있고, 조용히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 있으면서 살아갈 뿐. "왠지 징그러워"라는 막연한 내 개인적 감정만으로, 그 조용한 동물들을 죽이거나, 쫓아낼 수는 없으리라.


그러니 처음 동티모르에 오시는 분들~ 후다닥 도망가는 테끼에 너무 놀라거나 겁먹지 마시라. 가만히 모기나 파리를 잡아먹는 조용하고 겁 많은 테끼가 대부분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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