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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싸 Apr 08. 2021

타인의 믿음 - 악어

'모리스 디페렌테' (다른삶) 05

모리스 디페렌테 Moris Diferente. 동티모르의 2개 공용어 중 하나인 테툰어로 '다른 삶'이란 뜻이다. 동티모르는 인도네시아 발리섬 아래쪽, 호주의 위쪽에 위치한 작은 섬나라다. 근 5백 년에 가까운 식민지에서 21세기 초 독립한 나라로, 한국에는 상록수 부대 파견지로 많이 알려져 있다. 이곳은 내가 2013년부터 일하고 생활한 곳이자, 가족을 꾸린 곳이기도 하고, 서로 다른 삶들에 대해 무척 많이 생각하게 되는 곳이다. 낯선 땅, 다른 삶, 이상이 현실에 부딪치는 순간순간의 일들을 여기 기록한다. 


 

동티모르에서 악어는 나라 탄생 신화의 주인공이자, 신성시되는 토템이기도 하다. 동시에 "실제적인 위협"이기도 한데, 악어가 사람을 공격하는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자코나 바우카우, 꼼 같은 아름다운 해변에서도 항상 악어 사고가 있기 때문에, 편히 들어갈 수 없다. 악어 사고는 점점 더 증가하는 추세라는 것이 지역 주민들과, 여론의 공통적인 의견!

동티모르에서 악어 사고의 위협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해변/물가는 잘 없다. 특히 해변은 요주의 지역! 물이 맑고 좋다고 무조건 뛰어들어서는 안 된다.


- 동티모르 탄생 신화는, 버전마다 약간씩 다른데 (구전설화라서 그런 듯), 대충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 소년이 늪에서 죽음에 이른 악어를 발견한다. 소년은 매우 두려웠지만 악어를 바다로 데리고 가서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야기에 따라서는 악어가 소년을 먹어버리고 싶었지만, 그 유혹을 이겨내고 목숨을 살려준 보답으로 소년이 필요할 때 어디로든 데려다주겠다고 한다) 

둘은 친구가 되어 함께 먼바다로 나가 세상을 구경하는데, 악어가 지치고(/늙어) 더는 갈 수 없게 되자, 마침내 멈추어 소년과 그 소년의 아이들이 계속 살 수 있게 섬으로 변한다”

가 티모르 섬 탄생의 이야기다.

티모르 섬 모양 역시, 악어 모양을 닮았다고들 한다.

그래서인지 동티모르인들은 악어를 신성시하고, "아보 라파엑"이라고 악어를 칭한다. 아보는 할아버지, 라파엑은 악어라는 뜻이다. 즉슨 "할아버지 악어" (악어 조상님)인 셈. 

로스팔로스에 있을 땐, 단순히 '악어'(라파엑)라고만 말하는 것도 금기시되었다. 현지인들은 '악어' 앞에 꼭 "할아버지"를 붙이곤 했다. 이름을 불러서는 안 되는 신성하고 무서운 존재 (해리포터의 you know who급!)! 

처음에 이런 분위기를 잘 몰랐을 때, '악어'라고 하는 나에게 "그렇게 이름을 (대놓고) 불러선 안 된다"라고 점잖게, 하지만 정색하면서 말하던 지역 주민들의 말에 적잖이 놀랐던 기억이 난다. 


악어가 과장 조금 보태면, 득실득실한 Ira Lalaro 호수. 마웅 C! 들어가지 마시라고요! 라고 했지만...ㅠ.ㅠ


악어와 자연에 대한 경이감과는 별도로,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악어 사고에 대한 대응이나 대비책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아니, 도대체 악어가 나오는 것을 알면서 왜 물가에 가는 건가요?!"라고 물어보면, 안타깝게도 다 생업 혹은 아이들이 연관되어있다. 먹을 물고기를 잡으러, 물을 길으러, 빨래를 하러, 아이들 같은 경우는 물놀이하러 등등...

게다가 티모르 다른 지역은 모르겠지만, 로스팔로스 같은 경우만 해도, 악어의 신성성을 꽤 믿는 나머지, 사고당한 사람과 가족을 2번 죽이는?! 말들이 도는 경우가 꽤 있다. 로스팔로스에서 일할 때, 악어 이야기가 나오면 항상 따라 나오는 것이, “악어 사고의 필연성”에 대한 논의인데...

"악어 사고는 바른 이들에게는 일어나지 않는다, 악어한테 물려갈 때도 진심으로 내가 잘못한 일을 뉘우치면 악어가 다시 돌려보내준다, 큰 잘못을 한 이들만 악어가 벌을 주는 것이다" 

라는 현지 직원들의 정서 vs

"악어 사고는 전적으로 우연이다. 게다가 악어 사고가 일어나면 재빨리 수색대를 푼다던가, 늘어나는 식인 악어 사고에 대한 사살 조치 등이 필요하다"는 한국인 직원들의 논리가 항상 팽팽하게 맞서곤 했다. 물론 분위기가 험해질 정도로 상호 반감이나 충돌이 있다거나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분위기가 있다는 것! 항상 꽤 논리적인 마웅 J나 마웅 P는 물론, 젊은 세대로 비교적 신식 교육을 받은 청년들이 모두 진지하게 악어 신화를 믿는다는 것이 영 이해가 안 가는 것!

악어 사고 날 수도 있으니, 낚시하러 물가에 가지 마시라고 해도, 다들 “나는 큰 잘못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괜찮아”라고들 하니 완전 답답할 수밖에! 

"아니, 그럼 애들은 무슨 나쁜 짓을 했길래, 악어가 벌을 준다는 얘기예요?!"라고 물어보면, 그 부모가 잘못한 게 있기 때문이라나. 안 그래도 불운한 사고를 당한 사람들에 대해, “그럴만하니 그랬겠지”라는 생각을 갖는 것은 희생자 가슴에 못을 두 번 박는 일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위의 사진과 같은 날, 같은 장소. 악어 진짜 많다니깐요!


전통사회에서의 토템 및 이와 결부된 권선징악, 정의, 신성성은, 나름 사회의 도덕성에 기여하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연적인 사고, 특히 생계형 사고에 대해 구조적인 방제 노력을 고민하는 대신, (아마 무기력함에서 비롯된 좌절로 인해) 이를 개개인의 불행과 잘못으로 돌리려는 태도는 분명 안일하고 문제가 있다. 하물며 사고의 희생자가 여성, 아이, 노인이 대다수인 경우는 더 말해 무엇하랴!


늘어나는 악어 사고에 대해 최근에 읽은 기사는*, 호주 북부 (즉 동티모르의 남부)의 Northern Territory에서 악어가 동티모르로 유입,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이 해안이 600km 정도 되는데, NT의 악어 개체 수가 무척 많고, 북부 호주 - 동티모르 간 바다에서 악어가 목격된 경우도 있으며, 다수의 NT 악어가 강을 통해 퍼져나가 돌아오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경우 더 광범위한 이주를 했을 개연성이 있다는 것이 연구진의 설명. 물론 이 가설을 검증하려면, 악어 DNA 테스트를 해 봐야 한다고. 전문가에 의하면 악어가 이 여행 (600km에 이르는 바닷길 이동을 통해 NT에서 동티모르로 유입)을 하려면 대략 15일 정도가 걸린단다.

물론 이 가설에 대해 비판적인 학자도 있다 - 악어들이 이주를 하긴 하지만, 최대한 단거리일 것이라고. 또한 악어 사고 증가 추세가 사실이지만, 이게 실제로 사고가 증가하는 것일 수도 있고, 과거와 달리 사고에 대한 신고/보도가 늘어난 것일 수도 있다고. 그러나 이들 역시 NT로부터의 악어 유입 역시, 충분히 가능성 있는 가설이라고 본다.

* 2018년 11월 25일 ABC 호주 기사 참조

https://www.abc.net.au/news/2018-11-25/crocodile-attack-timor-leste-east-northern-territory-grahame/10519552


아무쪼록 악어도 사람도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악어 서식지에 대한 조사를 바탕으로 기본 관리 방침을 정하되, 인근 거주 지역 주민에 대한 교육도 필요하고 (악어는 나쁜 사람만 공격하는 게 아니고, 본능에 의해 누구나 공격할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교육!), 모니터링을 통해 필요하다면 개체 수 관리도 필요하다고 본다. 단 살육이나 무조건적인 사냥이 아닌, 친환경적인 악어 농장이라든가 무언가 현실적인 대안을 통해 주민과 악어가 같이 공존하는 방법을 찾든지 해야 하지 않을까...


에휴... 말이야 쉽지. 동티모르는 당장 눈앞에 닥친 먹고사는 문제가 어려운 나라인데, 언제쯤 이런 문제들에 대해 신경을 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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