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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싸 Mar 29. 2021

타인의 믿음 - 전통 혹은 미신?

'모리스 디페렌테' (다른삶) 04

모리스 디페렌테 Moris Diferente. 동티모르의 2개 공용어 중 하나인 테툰어로 '다른 삶'이란 뜻이다. 동티모르는 인도네시아 발리섬 아래쪽, 호주의 위쪽에 위치한 작은 섬나라다. 근 5백 년에 가까운 식민지에서 21세기 초 독립한 나라로, 한국에는 상록수 부대 파견지로 많이 알려져 있다. 이곳은 내가 2013년부터 일하고 생활한 곳이자, 가족을 꾸린 곳이기도 하고, 서로 다른 삶들에 대해 무척 많이 생각하게 되는 곳이다. 낯선 땅, 다른 삶, 이상이 현실에 부딪치는 순간순간의 일들을 여기 기록한다. 

로스팔로스에서의 첫 해, 어느 날. 

이웃인 루시아 아주머니 댁에서 함께 저녁을 먹게 되었다 - 호주인, 쿠바인, 가나인, 동티모르인, 한국인 총 8명 정도가 함께 모여서, 저녁도 먹고 이야기도 하고 춤도 추고 시간을 보내던 중, 어떻게 하다가 이야기의 화제가 "믿음과 전통”에 대한 것으로 향했다. 

특정 종교에 대한 것이라기 보단, 말 그대로 어떤 '실제적인 것에 대한 믿음' 같은 것이었는데, 동티모르인인 니코 청년 왈, 


"나의 오토바이는 낡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혹은 선조)의 영이 지켜주어서 2년 간 아무 사고도 없었다.  그리고 내가 예전에 다리를 다쳤을 때, (서구 의료기술의) 병원에서는 무릎 아래를 절단하라는 진단을 받았는데, 우리 아버지가 반대를 하고 ***하여, 뼈를 어떻게 어떻게 하여 무사히 고칠 수 있었다.

 (*** 이 부분을 잘 이해 못했는데, 일종의 전통 치료사인듯한 사람에게 갔다고 - 동티모르, 특히 시골 지역에는 마을의 무당? 전통 치료사? 같은 분들이 치료 행위 및 약을 파는 경우가 흔하다. 약은 주로 허브나 잎 등을 우린 차.

참조 https://bmccomplementmedtherapies.biomedcentral.com/articles/10.1186/s12906-020-02912-9), 이 또한 내가 우리 문화와 선조들을 믿었기 때문이다." 


눈치를 보아하니, 같이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호주인) 루시아 아주머니와, (한국인) E는 그다지 믿는 얼굴이 아니다. 나 역시 마찬가지. 하지만 너무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는 니코 청년에게, 대놓고 웃거나, 말도 안 된다고 하기에는 당연히 무례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그냥 그렇구나 하고 듣고 말았다. 

나중에 집에 와서, E와 이야기하면서 생각한 건데...

이곳 사람들이 일요일에 꼭 성당을 가고, 모든 행사를 기도로 시작하는 “실질적인 의미에서의” 가톨릭이면서 (*동티모르는 오랜 기간의 포르투갈 식민지 경험으로, 필리핀과 더불어 아시아의 대표적 가톨릭 국가. 성당에서 세례를 받고, 결혼을 하고, 장례미사를 한다. 연간 휴일도 가톨릭과 관련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동시에 어떤 전통적 문화의 관습이라든가 믿음도 강하게 지킨다는 사실이 좀 놀랍다. 외부인인 내가 보기에, 그 둘은 얼핏 상충되는 면이 있다 - 가톨릭이나 프로테스탄트는 유일신 종교가 아닌가? 하느님 외의 다른 존재에게 기도를 한다던가, 기원을 한다던가 하는 부분에 대해서 불편하게 여길 수 있지 않을까, 자기모순이라고 여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곳에선 가톨릭과 이런 "전통/믿음"이 아주 자연스럽게 공존한다. 

(하지만 또 모르지... 주일마다 성당에서 신부님이 잔소리하실 수도 있다, 그런 거 하지 말라며…)


좀 신기한 것은 사실이지만, 한편으론 그것이 아주 말이 안 되거나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닭이 병들지 않게 하기 위해 원숭이 두개골을 걸어둔다거나 (마을 나갔을 때 봤는데, 깜놀했음!), 병이 나면 전통 치료사에게 굿을 부탁한다거나, 주문이나 부적을 부탁한다거나 하는 것은, 무언가 좋지 않은 것을 피하고 좋은 것을 바라는 “인간적인 해결 노력”이고, 종교는 좀 더, 궁극적인 절대신과 통하려고 하는 것으로, 다소 다른 차원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둘을 동일 선상에 놓고 '이건 나쁘다! 하나만 맞는 것이다!'라는 것은, 비교 범주 자체가 좀 다르지 않나 하는 것이 내 개인적 생각.


어쨌거나 그런 고유한 가치나, 습관이나 문화, 미신은 외부인으로서 이해하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병원에 가기가 무서워 전통 주술사를 찾아간다 하는 것은, 서구식 합리주의-회의주의 기반의 교육과 대도시 생활에 익숙한 나에게는 약간 “뭥미?”이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그런 방식에는 동의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익숙하지 않다고 해서, 납득할 수 없다고 해서 무조건 '이상하네, 후지네'라고 생각하지는 않고, 앞으로도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나에게 익숙하지만, 그 익숙한 것이 전혀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도 많을 것이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  그렇기 때문에 그런 부분은 서로서로 “그런 면도 있는가 보네”라고 우선은 인정해주는 것이 공평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동안, 나의 생활과 사회를 당연하게 만들어 온 사고나 문물과 전혀 다른 낯선 것과 접하면, 당연히 이상하거나 이해가 안 간다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물론 그렇기 때문에 그냥 계속 똑같이 살고, 사고하는 것이 맞다는 것은 아니다. 싫든 좋든 오늘 같은 세계에서는 외부와의 소통이 지속적으로 더 빠르게 일어나고, 내가 원하지 않음에도 변화를 강요당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그럴 수도 없다. 

단, 그런 과정에서 소수의 외부자가 다수의 내부인들에게 쉽게 가질 수 있는 “여긴 왜 이래? 사람들이 참 뭘 모르나 봐”라는 식의 일반화 함정은 경계하고 싶다는 것이다. 


동티모르 전통 직물인 타이즈 Tais 로 된 옷을 입은 청소년들.



그렇다고는 해도... 주술사를 찾아가는 부분은 여전히 무척 낯설다.

게다가 주술사에게 부탁을 해서 원하는 바가 나오지 않는 다고 해도 “주술사를 찾는다”의 행위 자체는 그만두지 않는다. 다른 주술사를 찾아가 애꿎은 돈을 또 쓸 뿐... 

여기서나 한국에서나, 그러한 '믿음'에 대한 "지나침"은 경계하고 싶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마을 사람들, 특히 여자분들과 이야기하면 마음이 답답할 때가 많다. 


여기엔, 아닷 Adat이라는 일종의 전통행사(제례?)가 있는데, 이 아닷을 치르려면 돈이 꽤 많이 든다. 돼지도 잡고, 사람도 부르고 하는 등, 행사 부대비용이 만만치 않다. 돼지값만 해도, 마리당 300달러는 족히 지출한다고 봐야 한다. (너무 작은 돼지는 쓰질 않기 때문이다 / 2020년 12월 현재, 동티모르의 법정 월 최저 임금은 $115이다. 2012년인가에 마지막으로 개정되었는데, 그 이후로 아직 재개정되었다는 정보는 들은 바 없다. 법정 최저 월급 3배 가격의 '돼지 + 행사 부대비용'이라니! ) 

로스팔로스 시골 마을 여자분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이 아닷이 너무 senti todan (무겁게 느껴진다)라고들 한다. 돈도 들고, 여럿 대접할 요리도 해야 하고, 이런저런 준비도 해야 하니 당연하다.

"아이들 먹이고, 학교 보낼 돈도 빠듯한데, 아닷 할 돈이 있어요?" 라면,

"그래도 해야지."라는 대답이 대부분이다. 


우리 아들이 사고 나서 죽은 것도, 

우리 남편 몸이 자꾸 마르는 것도, 

우리 딸이 지금 아픈 것도, 

다 아닷을 제대로 혹은 오랫동안 안 해서라며.


"아니, 아닷 할 돈이면, 온 가족이 한두 달은 실하게 잘 먹을 수 있어요, 잘 먹기만 해도,  더 건강해질 텐데!"라는 말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다, 내 입장에선. 

(가끔은 그렇게 이야기도 하고, 가끔은 그냥 꾹 참기도 한다 ㅠ.ㅠ)


물론 사람들에 따라, 반 정도는 진지하게 믿고, 반 정도는 어쩔 수 없이 따라간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로스팔로스의 경우, 그리고 직접 경험은 없지만, 동티모르 다른 시골 지역의 경우도 사정은 비슷할 것이다 - 딜리가 아닌 시골인 이상, 이동 제한성과 관습은 비슷하리라. 한 마을에서 태어나, 자라고, 그 마을이나 옆 마을 사람과 결혼해,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타지에 나가거나, 지역 간 이동이 활발하거나 하지 않다. 특히 여자의 경우는 더 제한적이다. 그러다 보니, 한 마을, 한 지역이 자연스럽게 씨족 사회가 된다 - 평생 볼 사이, 밀접한 관계를 맺고 살 사이라는 의미다. 이런 사회에서는, 튀는 행동, 내지는 남들 하는 만큼, 나는 안 하거나 덜 하는 모습을 보이기가 어려우리라. 

실제로 아닷에 대한 고충을 토로하는 아주머니 혹은 아저씨들께선, 꼭 그런 이야기를 하신다 - "아닷 제대로 안 하면, 나중에 사람들이 뒤에서 뭐라고 한다"라고. 아닷을 제대로 안 해서 저 집 아들이 죽었네, 저 집 엄마가 아프네 등등의 이야기를 실제로 듣고, 또 본인들도 한다는 얘기다.

 

수도인 딜리는 좀 다르지만, (씨족마을이 아니고 본격적인 도시다!) 아닷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은 그리 많이 다르지 않은 듯하다. 

우리 아이들을 봐주는 베이비시터인 젊은 친구에게 물어보니 (20대 초반 대학생), 그녀의 가족은 연 2~3회 아닷을 한단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온 가족이 다 같이 고향인 수아이 Suai에 모인다고. 다른 친구들은 아닷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라고 물어보면, 다들 비슷하단다. 이 친구 역시 아닷을 믿는다고 - 아닷을 제대로 해야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가족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고. 

 

동티모르에 온 지 거의 7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오히려 더! 

생각만 하면, 고구마 가득 먹은 듯 답답해지는, 

아.닷!


 

*아닷은 인도네시아어로 신성한 법과 믿음이라는 뜻도 있다. 동티모르에서는 보통 이런 의미의 아닷과, 행사 rituals로서의 아닷이 같이 혼용된다. (참조. Customary Law and Domestic Violence in Timor-Leste, Approaches to Domestic Violence against Women in Timor-Leste: A Review and Critique by Justice System Programme, UNDP Timor-Leste January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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