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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싸 Oct 21. 2021

일의 보람과 현타 - 스러짐과 아득함을 느낄 때

'모리스 디페렌테' (다른 삶) 16

모리스 디페렌테 Moris Diferente. 동티모르의 2개 공용어 중 하나인 테툰어로 '다른 삶'이란 뜻이다. 동티모르는 인도네시아 발리섬 아래쪽, 호주의 위쪽에 위치한 작은 섬나라다. 근 5백 년에 가까운 식민지에서 21세기 초 독립한 나라로, 한국에는 상록수 부대 파견지로 많이 알려져 있다. 이곳은 내가 2013년부터 일하고 생활한 곳이자, 가족을 꾸린 곳이기도 하고, 서로 다른 삶들에 대해 무척 많이 생각하게 되는 곳이다. 낯선 땅, 다른 삶, 이상이 현실에 부딪치는 순간순간의 일들을 여기 기록한다. 

동티모르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KOICA가 지원한 해수 담수화 시설을 견학하러 간 적이 있다. 수도 딜리에서 차로 3~40분 거리에 있는 시설로, 말 그대로 해수를 처리하여 담수화 한 후, 물이 부족한 근처 마을 및 학교 등에 공급하는 사업이다. 여기는 산 지역은 산 지역대로, 해변가 지역은 해변가 지역대로 식수 접근성이 어려운 편인데 전자는 수원 부족, 후자는 해수가 많이 섞여 있는 상태이기 때문. 해수 담수화 기술을 가진 나라는 그다지 많지 않으며, 해당 사업에 대해 티모르 정부가 많이 관심을 보이고 추가적으로 확대해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 KOICA측의 설명이다.

태양광패널로 전기를 생산하고, 이를 동원으로 해수를 끌어와 몇 차례에 걸친 처리를 통해 담수화를 한 후 (거르는 작업 및 전해질 미네랄 등을 추가하는 작업 등) 이를 물탱크에 실어 최종수요처인 마을 및 학교 등에 공급한다. 설비 운영 및 모니터링, 물 저장 탱크 관리 등 단순 시설 설비 제공 외의 운영 및 관리 요소가 굉장히 많은데, 이 부분이 원활하지 않단다. 관리직원이 출근을 하지 않는다던가, 물탱크 청소를 하지 않는다던가 등등 기본적이면서 중요한 부분을 현지 정부가 많이 놓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이런 부분은 소위 어느 “개도국”을 가더라도 비슷한 이야기를 듣는 경우가 무척 많다 - 어느 정도까지가 이들의 문화이고 어느 정도부터가 보편적인 상식 수준에서 용납되기 힘든 것일까? 게으름 같은 게 아니고, 아직 이런 기술, 관리, 일 처리에 대한 경험이 없기 때문인 것일까?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열린 마음을 가지고 일을 하기 위해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실제로 일 할래면 완전 속 터지고, 사실 안타까운 마음이 더 많다. 아니, 대체 왜, 자기들이 마실 물인데, 저렇게 안이할 수 있을까!


코이카에서 지원한 결핵검사연구소 역시 마찬가지. 코이카에서 연구소를 건축하고 시설을 완비한 곳이다. 운영 단계부터는 당연히 이곳에서 책임지고 잘 운영을 해야한다. 천년만년 우리 나라 정부, 혹은 다른 나라 정부나 국제기구가 지원해 줄 수 없는 일. 그런데 예산 지원이 (더) 안되면 에어필터나 벨트 등 소모 기자재가 마모되어 운영을 멈추게 된다는 이야기를 한단다. 초반에 수요조사도 하고, 상대국과의 협의를 통해서 진행한 사업인데, 막상 운영하기 시작하면 꼭 이런 문제가 나온다. 여기서도 막상 지원해 준다고 할 때는 좋았는데, 경험이 없다보니 운영 예산이나 실질적 관리 문제에 부딪칠 수 있다. 그러다보니, 다시 지원을 요청한다. 그게 제일 쉬우니깐! 그리고 그렇게 하면, 한 두 군데는 돈이 더 나올 수도 있으니깐! 


이런 모습을 보고 들을때면 아득할 때가 많다. 국제사회 일원으로서, 개도국 지원에 기여해야 한다는 보편적인 국제정치 윤리적 당위성 외에도, 현실적 차원에서 빈곤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모두에게 이득이 된다는 것에 공감한다. 하지만 현지의 책임파트너 (주로 정부)가 경험 부족, 노력 부족, 혹은 딴 생각?! 등의 이유로, 여러 사람의 노력과 돈이 들어간 프로젝트를 말아 먹는 것을 보면 화가 나는 것을 떠나 답답하고 안타까울 때가 많다. 하물며 그 프로젝트가 잘 굴러가면, 제일 혜택을 보는 것은 현지의 취약한 주민들인데 그것이 되지 않고 있으니... 


2014년엔 한국 모 재단에서 펀딩을 받아, 초등학교를 한 군데 개보수 할 수 있게 되었다. 제안서 준비를 위해 라사 초중학교와 호메 초등학교를 다녀왔다. 라사는 매번 딜리 가는 길에 지나치는 곳이고, 이전에도 몇 번 가본 적이 있어서 익숙하지만 막상 “여기를 어떻게 고치지?”라는 생각으로 가보니 새삼스럽다. 2003년도에 AusAid의 지원으로 지어진 오래된 건물이다. 학생은 550명 선인데 교실은 6개, 지붕은 다 너덜너덜해졌고, 책걸상도 제대로 없어서 되는 대로 학생들이 앉아 있다. 워낙 한 반에 학생들이 많다 보니깐 분위기도 어수선하다. 전기는 교무실 밖에 들어오지 않는다. 비를 막기 위해 창문에 덧대놓은 나무 판자로 가려진 교실은 어둑하다. 

대충 둘러본 후에 심난한 마음으로 호메초등학교로 향했다. 여기는 라사보다 길이 더 안 좋다. 울퉁불퉁한 길을 따라 가 도착한 호메초교는 라사가 깔끔해 보일 정도로 안 좋다. 배수로나 건물 하단의 기단이 하나도 없어서, 우기에 비가 쏟아지면, 물이 좁은 복도까지 흥건히 고여 교실로 들어온다. 물과 함께 진흙이며 풀이 같이 들어와서 지저분하게 널려있다. 이 건물 역시, 2003년경 AusAid 지원으로 지어졌다고 하는데, 그 이후로 아무런 개보수가 없다고. 지붕은 양철판 하나인데, 겉에서 봐도 너덜너덜하고, 안에서 들여다보니 지붕양철판과 판자떼기가 다 너덜너덜하다 못해 잡아 뜯은 것 같다. 여기도 역시 전기는 교무실밖에 들어오질 않는다. 이 곳 역시 학생은 520명 남짓인데, 교실은 7개. 화장실은 5개가 있는데, 현재 1개 밖에 사용하질 못한다고. 


에효…한숨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게 근 25년 전 근처, 그 때 다니던 학교도 지금 호메보다 100배는 좋다. 깨끗하고, 전기 잘 들어오고, 햇빛 잘 들고, 냉난방 잘 되고, 컴퓨터며 TV가 다 있는 한국 학교를 생각하니 한숨이 더 나온다. 불평등이란 것은 너무 당연하게 보편적인 현상이지만, 막상 그 불평등함의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면 마음이 아리다. 게다가 그 차이가 이렇게나 크면 머리가 띵해진다, 어디서부터 이렇게 달라질 수 있었을까, 왜 이렇게까지 차이가 나는 걸까… 식민주의와 수탈 등등의 객관적, 역사적인 원인분석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막상 눈으로 보는 현실의 차이는 그런 답으로 매꾸기엔 공허할 정도로 크다. 

사무실로 돌아와, 같이 다녀왔던  현지 직원들과 논의를 해서 한 군데를 선택하는 회의를 하는데, 무척 어렵다. 선정 기준이 분명 있고, 객관적으로 점수를 매기면 될 일인데, 쉽지 않다. 예산은 정해져 있으니 한 군데밖에 선택할 수 없다.


동티모르는 분명 아주 가난한 나라지만, 돈이 없는 것은 아니다. 비록 수 년 내에 고갈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는 있지만, 아직까진 해저 석유 필드가 있고 여기서 나오는 수입을 펀드로 만들어 관리하고 있다. 풍족하지는 않지만, 교육이나 보건, 식수나 전기 등 주민 생활의 질과 직결된 곳에 쓰려면 쓸 돈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동티모르 정부가 이런 분야에 예산을 쓰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2013년, 로스팔로스에 처음 온 이래 8년 간,  여전히 로스팔로스의 물 새고 망가진 학교도 그대로, 엉망이 도로도 그대로, 그때 전기 안 들어오는 마을도 그대로다. 정부 예산 편성과 집행의 정당성이나 비효율성은, 비단 이 곳 정부뿐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고, 아주 느려서 그렇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믿고 싶다...) 

외부의 도움에 편안하게 기대는 것에 익숙해지지 않기를, 그리고 도움으로 시작한 것들이, 더 더 가꿔지고 많은 사람들에게 닿을 수 있기를 바래본다. 


그때 모 재단의 예산으로 개보수한 호메초교는 지금 어떻게 되고 있을까? 처음엔 호주, 그 다음엔 한국 돈으로 짓고, 개보수한 학교. 몇 년 새 다 부서지고, 너덜너덜 해져서, 비오면 아이들이 못 오고 그럴까? 아니면, 그 새, 이 나라 교육부에서 관리 예산을 잘 편성해 잘 관리되고 있을까?? 


로스팔로스 가는 길에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 반, 안 가보고 싶은 마음 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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