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벽난로 시작하기 좋은 때

포르투갈 시골 일기 06 - 가을

by 마싸

알비토Alvito는 포르투갈 남동부 알란테주 지역에 있는 인구 2천 명의 작은 마을이다. 이 지역은 인구밀도가 낮고 농축산업과 와인 생산이 활발한 곳이다. 차로 달리다 보면, 인가 대신 소와 양들, 올리브 나무, 코르크나무가 끝도 없이 보인다.

수도인 리스본에서 차로 1시간 30분 정도 떨어져 있는, 작고 평화로운 포르투갈 시골 마을인 알비토는 신랑인 알베르토의 고향이다. 동티모르, 한국, 포르투갈을 오고 가는 우리 가족의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자, 충만하고 천천한 삶이 흐르는 곳!



늦가을/초겨울부터는 본격적으로 벽난로를 쓰기 좋은 때다.

한겨울에도 10도 미만으로는 잘 내려가지 않는 포르투갈 남부이지만, 그래서 그런가 집에 기본 난방 시설이 잘 갖춰져 있지 않다. 해가 지고 나면 냉기가 싸악 도는데, 그럴 때 벽난로는 정말이지 고맙고도 정겨운 존재!

20161005_123954.jpg 알비토 집 거실. 왼쪽에 보이는 들어간 틈이 벽난로.


10월 중순서 11월 초순,

한낮에는 반팔이나 얇은 긴옷을 입어도 충분한데, 해가 지고 나니 금새 쌀쌀해지네 싶으면, 벽난로 시작해도 좋은 때!

미리 지붕 위 굴뚝도 점검하고 (나무덩쿨이 굴뚝을 덮을 때가 있으니 가지 쳐주기!),

1년 동안 쓰지 않았던 벽난로 주변의 먼지도 잘 털어주고, 청소도 해주고 (벌레 몇 마리가 오랜만의 청소에 놀라 기어 나오는데, 그렇게 징그럽거나 심한 정도는 아니다. 해롭지 않은 거미 몇 마리 정도~),

창고 옆 장작더미에서 집 안으로 장작도 미리 옮겨 놓으면 벽난로 준비 완료!


20171021_171730.jpg

장작 나른다고 문을 열어 놓았더니, 3번 고양이가 빼꼼히 집 안을 쳐다보면서 들어올 기회를 이제나 저제나 노리고 있다. 고양이 3마리가 잠자는 곳인 큰 창고는 아주 따뜻한 데다 폭신한 천과 털도 깔려있지만, 그래도 2번과 3번 고양이는 벽난로를 무척 좋아해서 틈만 나면 들어올려고 난리다. (1번 고양이는 창고파)

하지만 우리집은 개와 고양이는 집안 출입 금지! 집 안에 들어오면 일단 바로 주방으로 들어가, 밖에 내어 놓는 저장식품 (소시지와 치즈 등)을 호시탐탐 노리기에 집안 출입은 금지시킨다. 게다가 개와 고양이들 덩치가 너무 크다! 벽난로 앞 소파에 고양이 두 마리만 앉아 있어도 사람 앉을 자리가 모자란다.

고양이를 견제하면서 장작을 다 나르고 나면 문을 닫고 불을 피운다.


20171020_212851.jpg
20171020_213103.jpg

두껍고 커다란 장작을 제일 안쪽-가운데 아래에 놓고, 적당한 잔가지들을 돌아가면서 쌓는 게 알베르토식 불피우기. 그렇게 해야지 불이 잘 붙고 오래 간단다. 주위의 잔가지들이 먼저 타며 온도를 서서히 높여가면서, 안쪽의 두꺼운 장작을 서서히 타게 한다. (안쪽부터 서서히 숯처럼 변하면서 탐) 지름이 15cm는 족히 되어 보이는 두꺼운 장작은 저녁 7~8시 정도에 불 떼기 시작하면 새벽녘까지도 약하게 계속 남아있는다.


20171020_213049.jpg

벽난로를 본격적으로 써보기 전에는, 불 타는 것을 직접 앞에서 느낀다는 것이 이렇게 매력적인지 몰랐다.

매 순간 다른 색깔, 다른 세기로 솟아 오르는 불꽃을 보고,

타닥타닥 하는 소리를 듣고,

나무타는 냄새를 맡고,

몸과 얼굴에 와닿는 온기를 느끼고!

왜 영화나 드라마에 벽난로 장면이 나오면, 항상 그 앞에서 나른해하고 있는 사람이나 고양이, 개가 나오는지 이해하겠더라 - 살아있는 불길을 보면서 따뜻하게 온 몸이 말랑말랑한 채로 앉아있다 보면, 정말 기분좋게 나른하다. 보배를 재운 후 신랑과 둘이 앉아 같이 벽난로 보면서 띄엄띄엄 이야기를 하다보면 (물론 그 중간에 먹고 마시는 일도 다반사), 왠지 모르게 충족스러운 느낌이 든다. 대화가 이어져도 혹은 끊겨도,어떤 쪽이건 다 그대로 자연스럽게 좋다.


1508743994820.jpg

보배도 벽난로 앞에서 우유 먹고, 놀고, 불구경?! 하는 것을 좋아한다.

뜨거운 것을 직접 느끼니 함부로 가까이 가지는 않지만, 그래도 조심, 또 조심!

보배가 자고 나면, 그 다음부턴 벽난로는 우리 차지! - 먹고 마시고 이야기하고 책도 읽고 졸기도 하고...



20161013_202848.jpg
20171111_212954.jpg

벽난로 앞에서 먹고 마시는 것은 왠만하면 다 맛있는데, 제일 맛있는 것은 군밤!

마침 벽난로 개시할 때는 밤 제철이기도 하다.

밤 꼭대기에 칼집을 낸 후, 양손잡이가 달린 항아리에 밤을 넣고 굵은 소금도 조금 넣어준다.

그리고 잘 타고 있는 불 사이에 넣어주면 끝.

참, 중간중간 흔들거나 위치를 바꿔주면서 고루고루 익도록 해준다.

와인과 함께 먹는다.


20171026_205356.jpg
20171026_210206.jpg

밤만큼이나 맛있는 것은 버섯.

슈퍼마켓에서 쉽게 살 수 있는 포토벨로 버섯Portobello 을 사서 (커다란 양송이버섯인 셈인데, 성인여자 손바닥 크기만하고 향이 좋다) 머리 부분의 껍질을 살짝 벗긴다. 꼭 안 해도 되지만 이렇게 해야지 더 부드럽다는 것이 알베르토의 의견. 머리 부분이 아래로 가게 뒤집어 굵은 소금을 조금 뿌려, 그릴에 조심스럽게 올려놓은 후 구우면 끝. 금방 익는 편인데 버섯 안쪽으로 물이 차오르기 시작하면 다 익었다는 신호.

와인과 함께 먹는다.



20161013_204232.jpg

그릴에는 빵도 살짝 구워도 되고,


20171023_212837.jpg

꼭 벽난로에 뭘 구울 필요 없이, 난로 앞에서 각종 햄, 소시지, 치즈 모둠에 와인을 먹어도 좋고,


1508698054104.jpg

프레준투Presunto 햄과 김치에 와인을 먹어도 좋고,


20171024_215303.jpg

옆 동네 맛있는 빵집에서 사온 치킨파이에 와인을 먹어도 좋고,

(잘게 다진 닭고기살에 양념을 해서, 바삭한 파이지로 감싸 구운 건데, 뜨거울 때 차가울 때 다 맛있다. 마요네즈 뿌려서 먹으면 더 맛있다)


20171107_220907.jpg

바까야우샐러드, 빵, 두부김치에 와인을 먹어도 좋고,


20171031_211212.jpg

다 먹고 마신 후, 마지막으로 알베르토 수제 리큐르 한 모금으로 마무리!

알베르토가 몇 년 전 담근 리큐르 중 (오렌지, 체리 등등),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뽀에쥬Poejo (포어로 페니로얄이란다). 민트류의 톡 쏘는 청량한 향에, 달달한 맛에, 이어서 치고 올라오는 알콜느낌까지, 최고.


벽난로, 음식, 와인의 3박자가 무척 흡족한 늦가을의 알비토 저녁!

매거진의 이전글내어주는 열매, 돌봐야 거둘 수 있는 열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