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시골 일기 07 - 가을, 일상
알비토Alvito는 포르투갈 남동부 알란테주 지역에 있는 인구 2천 명의 작은 마을이다. 이 지역은 인구밀도가 낮고 농축산업과 와인 생산이 활발한 곳이다. 차로 달리다 보면, 인가 대신 소와 양들, 올리브 나무, 코르크나무가 끝도 없이 보인다.
수도인 리스본에서 차로 1시간 30분 정도 떨어져 있는, 작고 평화로운 포르투갈 시골 마을인 알비토는 신랑인 알베르토의 고향이다. 동티모르, 한국, 포르투갈을 오고 가는 우리 가족의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자, 충만하고 천천한 삶이 흐르는 곳!
산책은 알비토집에서의 중요한 일상.
알비토집은 목초지와, 올리브나무/오렌지 나무가 가득한 과수원과, 지금은 조금만 남아있는 포도원과, 텃밭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매일 오전 오후 1번씩은 이쪽저쪽으로 방향을 달리해 산책을 나간다. 같은 장소라도 매일매일 다르고, 오전과 오후도 또 조금씩 다르다 - 열매가 익어가고 색이 드는 것, 꽃이 피고 지는 것, 보이는 동물과 곤충들은 계절별로 매일 조금씩 다르고, 오전과 오후의 빛과 기온, 냄새, 전체적인 풍경의 톤이 또 조금씩 다르기에 산책은 절대 지루하지 않다. 또 키카만 따라오느냐, 고양이만 따라오느냐, 키카와 고양이들이 같이 따라오느냐, 고양이들 중 몇 번 고양이가 따라오느냐에 따라도 다르다. (키카와 고양이들이 2마리 이상 따라올 때는 하나도 정신이 없음!)
여름의 산책이 흐드러지게 피는 꽃들을 보기에 최고라면,
가을의 산책은 열매 보는 재미가 좀 더 있다.
호두나 아몬드는 익기 시작하면, 매일 아침 산책 때 상태를 확인하고 딸지 말지 결정! 나무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어서 어떤 나무는 이미 다 익은 열매들이 후드득 떨어져 있는데, 그 옆 나무는 아직이어서 하루 이틀 더 기다려야 하나 하며 살핀다.
초가을, 끝물인 수박을 가끔 발견할 때도 있다. (아니, 아직도 한 녀석이 남았네!)
텃밭도 살피고,
올리브 나무들도 살피고.
올리브는 개체수가 많아, 우리 가족이 다 딸 수가 없다. 전문 수확 그룹?을 고용해야 한다.
알베르토가 몇 년 전에 화단과 온실을 만들어 심은 에스트렐리시아 Estrelicia(극락조화)도 산책길에 조금 잘라 온다.
알비토 기후에 잘 맞는지, 따로 공들여 가꾸지도 않았는데 지금은 완전 무성하게 덤불을 이룰 지경으로 자랐다. 늦가을부터 다음 해 초여름까지도 계속 꽃을 피운다. 향기는 없지만 길게 잘라 거실과 침실에 꽂아 놓으면 화사하게 오래간다.
우리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열심히 뛰어오던 고양이들은 알아서 쉬다가, 토끼, 쥐, 새 등을 볼라치면 빛의 속도로 후다닥 쫓아간다. 키카와 고양이가 동시에 토끼를 목격하고 잽싸게 뛰기 시작, 본의 아닌 경주를 하는 것도 구경할 때도 있다. 아직 1년 미만 강아지인 키카보다는, 연식 높고 경험 많은 또, 더 날쌔기도 한 고양이들이 훨씬 빠르다. 하지만 토끼들은 그보다 훨씬 더 빠르기 때문에 절대 잡히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날쌔게 뛰어가는 고양이들을 쫓아가면 심심치 않게 이런 토끼굴도 꽤 많이 본다. 못 잡은 것이 그렇게 안타까운지, 고양이들은 굴 안쪽까지 코를 들이밀고 앞발로 파고 난리도 아닌데, 이미 토끼는 다른 연결된 굴로 도망간 지 오래!
처음에 토끼굴을 처음 보고 너무 신기해했더니, 그런 내가 알베르토는 신기한 가보다.
"토끼굴 처음 봐?"
"그럼!!! 난 토끼굴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토끼굴만 있는 건 줄 알았어! 아니, 그러니깐 내 말은... 음... 당연히 토끼가 토끼굴을 파기는 하겠지만, 왠지 그냥 책에만 있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내가 한국서 본 토끼는 다 애완용 토끼니깐 잘 상상이 안 가더라고."
라고 어버버 하게 말했더니, 알베르토가 막 웃는다.
알비토집 목초지에는 야생 토끼들이 꽤 있는데, 가을에는 맨눈으로도 토끼들이 후다닥 뛰는 것을 제법 볼 수 있다. 알비토에서 야생 토끼는 1년 중 가을에 한 달 정도, 허가된 장소, 허가된 일과 시간 내에서만 사냥을 할 수 있다. 조건도 꽤 까다롭고 엄격하게 지켜지는 편이다. (아마 번식력 강한 토끼의 개체수와 주위 생태계와의 균형을 생각해서 적절한 수준에서 조절하려는 방편이 아닌가 싶다) 늦가을 어느 날 아침에,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가서 신랑이 나가보니, 사냥꾼 아저씨께서 선물이라며 방금 잡은 토끼를 들고 오신 적도 있다!
"내 이 근처서 허가받고 사냥하는 사냥꾼이오만..."
"아, 안녕하세요, 000 씨. 안 그래도 사냥개 소리를 들었어요. 어쩐 일이신가요?"
"허가는 받았지만 아무래도 사냥개 소리도 나고 하니 시끄러울 것 같기도 하고, 또 여기 사시는 분이니 예의상... 이렇게 사냥감을 들고 왔다오!"
"아이고~ 안 그러셔도 되는데... 정말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라는 훈훈한 대화가 오고 갔지만,
어머나! 정말 너무 토끼쟎아!!!
신기함, 감사함과 두려움이 섞인 착잡한 내 표정을 보더니, 신랑은 또 웃네.
포르투갈에서는 토끼 고기를 꽤 먹는 편으로 슈퍼마켓 정육코너에 가도 토끼고기가 소, 돼지, 양들 옆에 얌전히 놓여있다. 물론 요리할 수 있게 다 다듬어진 상태로!
그다음 날, 시부모님께서 잘 다듬어 맛있는 스튜를 끓여주셨는데 담백하고 맛있게 감사하게 먹었다.
보배는 아빠 무등을 타거나, 유모차를 타고 편하게 나가다
걸음마할 무렵에는 열심히 걸음마 연습! 엄마 아빠도 허리가 부러져라 같이 연습!
열심히 연습하다가 걸음마가 힘에 부칠 즈음에는
그냥 흙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고양이들과 놀기.
작년 가을에만 해도 저렇게 걸음마 단계 더니, 올해는 키카와 너무 잘 뛰어다녀서 쫓아다니느라 바쁘다.
자연도 변하고, 아이는 더 빨리 변하네.
오후 해질 무렵 나가는 산책에선 냄새가 달리 난다 - 풀 냄새, 나무 냄새, 흙냄새가 아침과는 좀 다르다.
그리고 소리.
해 질 무렵, 목초지에서 양 떼 지나가는 소리가 항상 나는데, 양 떼 목에 걸린 방울이 내는 소리, 목동들이 양 떼에게 말하는 소리가, 해 넘어가는 풍경과 그렇게 평화롭게 어우러질 수가 없다. 서서히 멀어지는 양 떼를 보면서, 이제 집으로들 가나 보네, 오늘 하루도 감사히 이렇게 평화롭게 잘 가네, 이제 들어가서 벽난로 피워야지 따뜻하게!라는 생각을 하면서 집 쪽으로 오다 보면... 점점 더 가까워지는 집이 얼마나 포근하게 보이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