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시골 일기 16 - 일상
알비토Alvito는 포르투갈 남동부 알란테주 지역에 있는 인구 2천 명의 작은 마을이다. 이 지역은 인구밀도가 낮고 농축산업과 와인 생산이 활발한 곳이다. 차로 달리다 보면, 인가 대신 소와 양들, 올리브 나무, 코르크나무가 끝도 없이 보인다. 수도인 리스본에서 차로 1시간 30분 정도 떨어져 있는, 작고 평화로운 포르투갈 시골 마을인 알비토는 신랑인 알베르토의 고향이다. 동티모르, 한국, 포르투갈을 오고 가는 우리 가족의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자, 충만하고 천천한 삶이 흐르는 곳!
알비토는 오래된 마을이다. 로마제국의 이베리아 반도 점령 시절부터, 서고트 족, 무어인, 다시 포르투갈의 레콩키스타 (1234년)까지를 다 거쳐온 곳. 중세 시대에 이미 정기 장터를 열어 상업적으로 융성했었고, 마을 중앙에는 15세기 ~ 16세기의 성과 교회들이 남아 있다. 모두 낡았지만 그리고 아쉽게도 적절한 개보수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깔끔하게 관리하고 아직도 멀쩡히 쓰고 있다.
마을 구조는 알비토 인근 일대 알란테주 지역 시골 마을들과 비슷하다 - 마을 중앙에 광장과 우체국, 행정 사무소, 은행과 성당, 학교 등이 있고, 여기를 중심으로 골목과 집들이 이어진다. 마을 중앙에는 식당이나 가게, 카페가 있고, 토요 장터나 월간 장터도 여기서 열린다.
중심가에는 Pousada라는 고성 호텔도 있는데, 이 뿌사다는 포르투갈 각지에 있는 것으로, 옛날 성이나 수도원을 숙박 시설로 개조해서 운영하는 것. Pousada de Portugal이라는 공동 브랜드로 운영되고 있다. 알비토 뿌사다는 15세기의 성을 개조한 곳이다. 화려한 성이 아니고 투박하고 튼튼해 보이는 소박한 중세 느낌의 성이고, 뿌사다 호텔 역시 그 느낌을 아주 잘 살렸다.
마을이 워낙 조그맣고 시골이다 보니, 일상 역시 그야말로 자연의 흐름에 따라 해가 뜨면 시작된다. 알람을 맞춰 놓지 않아도, 해가 뜨면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창으로 들어오는 빛과 새소리, 문 밖에서 고양이와 개가 내는 소리에 기분 좋게 일어난다. 보통 신랑이 먼저 일어나서 아침을 차려 놓으면 다 같이 맛있게 아침을 먹고, 산책을 나간다. 양, 닭, 돼지들의 가축도 두루 둘러보고, 나무나 꽃, 열매들도 두루두루 확인하고!
이렇게 "아침식사-산책" 코스를 마치고 나면,
가지치기, 잡초뽑기, 죽은 이파리 걷어내기 등의 텃밭-정원일을 하거나,
빨래를 하거나,
청소를 하거나,
옆동네 마실을 가거나,
장을 보고, 요리를 하거나,
테라스 선베드에 누워 깜빡 졸거나,
친구와 가족들을 만나거나 하다 보면
하루가 순식간에 간다.
해가 질 무렵에는 오전과는 다른 쪽으로 산책을 나가, 매일 조금씩 다른 색깔과 질감에 감탄을 하다가 집으로 들어온다. 저녁 무렵에는 멀리서 간간히 들리는 차 소리, 새소리, 양 떼가 지나가는 소리 (양을 잃어버리지 않고, 천적에 대한 경고 등의 이유로 양 무리 중 몇 마리의 목에 종을 매다는데, 이 소리가 함께 울리면 정말이지 꽤나 아름답고, 목가적이다) 말고는 무척 고요하다.
저녁은 친구 혹은 가족들과 함께 할 때도 있고, 둘이 먹을 때도 있고.
밤이 되면 집 밖으로 나와 별을 본다. 은하수도 아름답고, 완전 깜깜하고 깊은 검푸른색 하늘을 뒤로하고 서있는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별들도 아름답다.
이러다 보면, 11시 즈음에는 저절로 잠이 쏟아지고... 매일 "오늘도 이렇게 참 잘 갔구나" 싶은 평온하고 나른하고 충만한 기분으로 잠자리에 든다.
하루하루가 이렇게 충만하고, 건강하고, 부족한 것 없이 흘러가건만, 당연히 모든 것이 좋을 수만은 없다. 포르투갈 시골 마을들이 흔히 그렇듯, 알비토 역시 인구 노령화, 인구 감소, 산업과 경제활동 침체 등으로 활기를 잃어가는 문제를 겪고 있다. 신랑 말에 의하면, 포르투갈 내륙과 시골 중심으로 소멸되는 마을들이 많다고! 문제는 다들 비슷하다 - 인구 감소, 노령화, 경제활동 축소나 부재가 주요 이유다.
알비토는, 아직까지는 아이들도 좀 있고, 학교도 잘 되어 있는 편이고, 커뮤니티 활동도 소소하지만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편이다. 또 40km 이내 가까운 거리에 비교적 대도시가 2개 있고, 수도인 리스본도 기차로 1시간 거리여서 위치도 좋다. 그러나 전망이 썩 밝다고만은 할 수 없다. 포르투갈 역시 출생률이 낮은 편이고, 인구는 노령화되고, 시골로의 외지 인구 유입 요인은 약하다. 해서 전체적으로 인구 감소를 피할 수 없고, 이는 마을 전체의 침체로 이어진다. 시골에서의 전반적인 '삶의 질'이 높다는 것은 다들 알지만, '당장 먹고사는 문제'가 걸려 다들 도시로 나가는 것은 여기도 비슷하다. 우리 가족 역시 같은 이유로, 알비토로의 완전 정착을 미루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어느 정도는 '선택과 타이밍의 문제'라는 생각도 든다. 알비토에 정착해서 사는 신랑의 가족들을 보면, 큰 벌이를 하거나 고임금을 받거나 하지는 못한다 - 그럴 만한 직장이나 산업이 없다. 멋진 차를 사거나, 해외여행을 가거나, 도시의 여가 생활이나 문화 자본을 누리거나, 멋진 레스토랑에서 외식을 하거나, 쇼핑을 즐겨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다들 자기 집이 있고 (그리고 꽤 넉넉하고 오래되고 멋지다! - 넓은 거실과 주방, 넉넉한 방들, 텃밭, 마당은 기본!), 텃밭과 마당에서 채소와 과일을 자연스럽게 길러먹고, 좋아하는 애완동물들을 편히 기르고,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소박하게 정겹게 교류하는 정서적 유대관계가 아주 자연스럽다. 돈 주고 살 수 없는 깨끗한 공기와 자연환경은 기본이다. 여름엔 '해외 뜨는 여행지'로는 못 가지만, 근처 가까운 바닷가 (아직도 깨끗한 청정 바닷가가 많다!)로 가족들끼리 놀러 가, 늘어지게 여유 있게 게으르게 휴가를 보내다 온다. 도시가 줄 수 있는 것, 도시에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은 없지만 또 다른 것들이 있다.
신랑과 이야기한 대로, 우리가 20대였더라면 당연히 도시를 선택했을 것이다. (그리고 둘 다 20대에, 서로 몰랐지만, 각자 있는 곳에서 당연하게 도시를 선택했다) 그리고 그런 경험이 있었기에, 알비토에서의 생활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우리가 무엇을 누리고 있는지를 더 잘 안다. 소비하고 즐길 것들이 많아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도시가 생각날 때도 많지만, 일견 심심해 보이는 시골에서 매일매일 달라지는 자연과 일상을 누리는 것이 지금의 우리에겐 더 맞고, 감사하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지금은 그 의미가 더하다. 나중에 어떤 선택을 할지는 아이의 몫이지만, 아이가 자랐을 때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와 경험의 폭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