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시골 일기 09 - 일상, 가족
알비토Alvito는 포르투갈 남동부 알란테주 지역에 있는 인구 2천 명의 작은 마을이다. 이 지역은 인구밀도가 낮고 농축산업과 와인 생산이 활발한 곳이다. 차로 달리다 보면, 인가 대신 소와 양들, 올리브 나무, 코르크나무가 끝도 없이 보인다. 수도인 리스본에서 차로 1시간 30분 정도 떨어져 있는, 작고 평화로운 포르투갈 시골 마을인 알비토는 신랑인 알베르토의 고향이다. 동티모르, 한국, 포르투갈을 오고 가는 우리 가족의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자, 충만하고 천천한 삶이 흐르는 곳!
신랑네 가족은 알비토에서 아주 오랫동안 터를 잡고 살았다. 내가 이야기를 들은 것은 고조할아버지 대 까지인데, 더 오래되었을 수도 있다. 증조할머니께선 벨기에 분이시지만, 나머지 조상님들께선 다 알비토 아니면 옆 마을에서 나고 자라고 여생을 보내셨다고.
알베르토는 5형제의 둘째인데, 이 5형제 역시 다 알비토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대학은 각자 리스본 아니면 코임브라로 갔다가, 다시 고향 쪽으로 돌아왔다. 형제 중 둘은 40km 떨어진 옆 동네에, 나머지 둘은 알비토에 산다. 같은 동네에 살기 때문에 오고 가는 것이 아주 자연스럽다. 우리 가족을 포함해, 점심때 시댁에 모여서 함께 점심 먹는 경우가 많다.
처음에는 시부모님께서 음식 준비하시는 데, 가만히 앉아서 먹는 게 상당히 어색했다. 해서 뭐라도 도와드리려고 안절부절, 일어나서 기웃기웃, 알베르토한테
"나는 뭐 하면 돼?" 이랬더니,
"왜? 뭘 해?"
"아니, 그러니깐... 어머님 아버님께서 식사 준비하시는데, 가만히 있는 것이 왠지 죄송해서."
"왜? 왜 죄송해?"
"음... 그러니깐 두 분이서 준비하시는데, 우리는 가만히 앉아 있잖아."
"그거야 여긴 두 분의 댁이고, 두 분이서 식사를 준비해서 대접하는 거니깐."
뭐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나에게 익숙한 한국식 예의 관념과 손윗사람-손아랫사람 관계에 따른 기대 역할로부터 자유롭기는 쉽지 않은 법. 그래서 식탁 차리는 것이라도 도우려고 일어날라치면, 일단 신랑이 가만있으라며 만류, 그릇이라도 옮길라치면 시아버지 시어머니께서 만류하시니... 지금은 그냥 편하게 감사하게 잘 먹는다. 지켜보면, 식탁 차리고 그릇 옮기고 식후의 디저트와 커피 준비하는 것은, 시아버지께서 거의 다 하신다. 커피 준비 정도만 손자 손녀들이 알아서 하는 편. 너무 편하게 얻어만 먹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만, 준비하는 시부모님도 앉아서 먹는 아들들과 며느리들, 손자 손녀들도 그냥 아주 자연스럽게 편안하게 잘 먹고, 또 거들 기회가 있으면 거드니, 그런가 보다 한다.
"설거지는 어떻게 해? 도와드려야 하지 않아?"라고 알베르토한테 물어보면,
"나중에 식기 세척기 넣고 한꺼번에 하면 돼."라며 별 걸 다 걱정한다는 투다.
하긴 신랑이 우리 부모님 댁에 온다고 해도, 우리 부모님께서 신랑에게 집안일을 시키지 않을뿐더러, 그럴 생각도 없으시다. 그리고 신랑 역시, 별로 그런 생각이 없다. 공손하지 않다거나 예의가 없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고, 편하게 해 주시는 음식 맛있게 감사하게 먹고, 자연스럽게 도울 일 있으면 돕는 것이지, "왠지 내가 뭘 도와드려야 하지 않나"하는 생각에 안절부절못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족들끼리 가까이 살고 자연스럽게 편하게 모이다 보니, 알비토에선 삼대가 모이는 풍경이 흔하다.
이번 여름 알비토에 있을 때는, 알렉산더의 첫째 딸인 로라의 생일 저녁을 다 같이 축하해 주었다.
로라는 알베르토의 6명 조카 중 셋째 조카로 17세 생일을 맞이했다.
로라의 할아버지, 할머니 (=우리 시부모님), 부모님 (=신랑 바로 아래 동생 부부), 로라의 큰아버지 (=알베르토)와 큰어머니 (=나! 로라는 그냥 내 이름을 부른다~ ^^), 로라의 외삼촌 (=막내 도련님 루이스), 로라의 이모와 이모부, 그리고 사촌들 (보배도 포함) 까지, 한 동네 사는 친척들이 다 모여서, 떠들썩하게 생일 축하 저녁 하고, 노래 부르고, 수다 떨고.
식사는 로라의 아빠가, 디저트는 로라의 엄마가 준비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와인과 선물을 가져가고.
10시 정도에 로라는 친구들끼리의 2차 파티를 하러 외출했지만, 그 전인 저녁 시간 내내 온 가족이 즐겁게 지냈다.
알베르토에게
"물론 집집마다 좀 다르겠지만... 내가 자란 서울과 대구에선, 17세 생일 때, 할아버지 할머니와 친척들이 죄다 모여서 같이 생일 축하하는 거 상상하기 힘들어. 근데 로라도 너무 행복해 보이고, 이런 가족끼리 모이는 게 너무 자연스럽게 보여서 좋다. 아버님도 어머님도 로라도 보배도, 모두 모두 같이 있는 게, 전혀 서로가 어색하지 않아 보여"라고 했더니,
자긴 젊었을 때만 해도, 이런 가족들 모임 지겨웠단다. 가족이 너무 많고 챙겨야 할 생일도 너무 많아서!
지금은 어때 이랬더니, 사촌 형, 누나들과 같이 노는 보배를 보더니, 씩 웃으면서, 지금은 좀 다르네 란다.
알비토는 '친척'보다는 '가족'이란 단어가 더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곳, 가족이 이렇게 모일 수도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드는 곳이다. 나중에는 이런 친밀감이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지만, 아직까진 별로 그럴 것 같지 않다. 왜냐하면 같이 모였을 때, 며느리라고 해서, 혹은 아들이라고 해서,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일을 몰아주거나 하지 않고, 일하는 사람 따로, 즐기는 사람 따로이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