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다리차와 손 없는 날

한국이 궁금해! 10

by 마싸

2016년 한국 여자와 결혼하기 전엔, 한국은 "Korean War, IT, K-pop" 정도만 알았던 포르투갈인 신랑이 한국에 와서 궁금해하는 별별 것들. 그리고 거기에 답하다 보면서 다시 생각하게 되는 한국 이야기.



우리 가족이 한국에 올 땐 대부분 친정집에 묵는다. 친정은 대도시의 흔한 아파트 단지로, 11층에 있는데, 신랑이 항상 넋을 잃고 쳐다보는 것이 있다 - 바로 이삿짐 사다리 차!

고층 아파트 층과 지상 이삿짐차 사이를 사다리로 연결해, 거기에 이삿짐을 싣고 오르락내리락하는 그 사다리차 말이다.


한국 가족들이야 또 이사냐며 시끄럽다고 투덜투덜 대지만, 신랑과 이제 2살 반이 된 아들은 둘이서

"와~ 와~~~~"

하면서, 오르락내리락하는 사다리차의 짐칸을 신이 나서 한참 쳐다보곤 한다.

(그러고 나서, 그걸로 레고나 블록놀이를 할 때도 있다)

그게 그렇게 신기하냐고 물었더니, 포르투갈에서는 본 일이 없단다.


하긴 생각해보니, 별로 필요가 없을 것 같기는 하다.

신랑의 고향마을은 다 1층 아니면 2층 집이니 사다리차가 굳이 없어도 될 것이고, 그렇게까지 짐을 옮길 일이 애초에 별로 없다. 이사를 하는 일이 거의 없다는 얘기다. 보통 평생 한 집에서 태어나 사는 경우가 많으니, 딱히 이사할 일이 없다고 봐도 된다.

신랑이 일하면서 살았던 리스본에는 아무래도 고층건물도 있고 아파트도 있긴 하나, 한국처럼 그렇게 자주 이사를 할 일은 없으니 본 적이 거의 없단다.


이삿짐센터가 포르투갈에도 있긴 있으나, 이런 사다리차는 본 일이 없단다. 그냥 박스 포장된 짐들을 옮기고, 가구들도 그냥 엘리베이터로 옮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사다리차 자체가 포르투갈에도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한국 같은 경우, 이사가 잦다. 이삿짐센터 입장에선 초기 구입비용이 든다고 해도, 충분히 '본전'을 뽑을 만큼 사다리차 이용 횟수가 나올 것이다. 게다가 고층 아파트가 많으니 충분히 유용하고 필요하다. 반면 포르투갈에서 대도시라고 꼽히는 리스본이나 포르투 같은 경우는, 신랑 말에 의하면, 신도심은 어떨지 몰라도, 구도심은 너무 좁아서 사다리차가 들어가지도 못할 거란다.


우리가 보통 친정에 2주~한 달 정도를 묵는데, 그 기간 동안에도 이사 오고 가는 풍경을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신랑은 아파트 가구수가 많으니, 그만큼 이사 오고 나가는 사람들이 많나 봐 라고 했는데, 사실 한국 기준에서는 우리 친정집 아파트 단지는 초초 소형 규모이다. 작은 단지임에도 불구하고, 이사를 목격하는 것은 꽤 흔한 일이다.

- 전세 가격에 따라 1~2년을 주기로 옮겨 가는 일도 많고, 소위 아이들 학군에 따라 살던 집을 팔고, 전세로 이사 가는 경우도 많다. 또 대도시 아파트는 사실상 "계속 살아야지" 하는 주거의 개념도 있지만, 투자 목적인 경우도 많으니, 가격에 따라, 이런저런 목적에 따라, 옮기는 일도 다반사다.

이사가 많다 보니, 이사 서비스도 잘 발달되어 있다고 얘기해 주었더니,

"과연~~" 하면서 사다리차 너무 편리하고 좋아 보인단다. 더불어 재밌는 구경거리이기도 하고!


신랑에게

"내가 더 재미있는 얘기 해줄까? 날에 따라, 이사하기 좋은 날이 있어서 이런 날은 미리미리 예약을 해야 해"라고 했더니, 갸우뚱이다.

"어떤 날이 더 좋은 날이야? 날씨가 좋은 날인가?"라고 해서,

"그건 아니고, 손이 없는 날"이라고 설명하려 했더니,

그런데 대체 "손이 없는 날"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지 싶어서 순간 당황했다. 많이 듣고, 많이 쓰지만, 정작 무슨 의미인지는 제대로 알지 못하고 쓴 셈!

인터넷을 찾아보니, '손(損)'은 날수에 따라 동서남북 4방위로 다니면서 사람의 활동을 방해하고 사람에게 해코지한다는 악귀 또는 악신을 뜻한다. 즉, 예부터 '손 없는 날'이란 악귀가 없는 날이란 뜻으로, 귀신이나 악귀가 돌아다니지 않아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길한 날을 의미한다고.

* [네이버 지식백과] 손 없는 날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신랑에게 설명해주었더니,

"아니, 한국은 세계에서 처음으로 5G를 실용화한 나라 아니야?! IT강국에서, 악귀가 없는 날에 이사를 한다고?!"

하면서 반쯤은 놀리는 듯 이야기한다.

나도 "손 없는 날"이라는 말이야 많이 들었지만, 그 뜻이 진짜로 무엇 일 까는 생각해본 적 없었는데, "귀신, 악귀"라니! 좀 놀랐다. 물론 모든 사람이 이에 따르는 것도 아니고,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도 많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꽤나 익숙한 용어이자 생활 문화임은 분명하다.


어느 문화권에서나 불필요한 수고나 악운을 피하려는 무의식적, 혹은 의식적인 관습은 자연스러운 일일 터. 애초의 연유가 무엇이든 간에, 최대한 악운을 멀리하려는 노력은 그 자체로 미신이다, 나쁘다라고 폄하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너무 일상적으로 많이 듣다 보니, 그게 뭔지도 잘 모르고 따라 하는 일은, 한 번쯤 다시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왠지 모르게 찝찝해!"라고 해서 피하는 것도 나쁘게 볼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단지, 내가 어떤 행동을 한다면, 최소한 그게 무슨 맥락과 의미로 하는 행동인지 한 번쯤은 생각해 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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