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조금씩 일하면 다들 즐거운 가족 모임

포르투갈 시골 일기 29 - 가족

by 마싸

알비토Alvito는 포르투갈 남동부 알란테주 지역에 있는 인구 2천 명의 작은 마을이다. 이 지역은 인구밀도가 낮고 농축산업과 와인 생산이 활발한 곳이다. 차로 달리다 보면, 인가 대신 소와 양들, 올리브 나무, 코르크나무가 끝도 없이 보인다. 수도인 리스본에서 차로 1시간 30분 정도 떨어져 있는, 작고 평화로운 포르투갈 시골 마을인 알비토는 신랑인 알베르토의 고향이다. 동티모르, 한국, 포르투갈을 오고 가는 우리 가족의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자, 충만하고 천천한 삶이 흐르는 곳!


2019. 7


오늘은 가족 점심을 하기로 한 날.

아침부터 신랑과 나, 둘 다 괜히 마음이 분주하다.

아직 집도 치우다 말았고, 요리 재료가 뭐가 빠졌는지도 좀 헷갈리고, 비가 올 것 같은데 사람들이 앉을 식탁과 의자를 어디에 놓아야 하나도 애매하고...

일단 확실한 건, 어제 와이너리서 사온 와인 2박스뿐.

(제일 중요한 것은 되었다고 신랑이 얘기함.

"... 그리고 다들 알아서 와인 더 사 올 거니깐. 일단 그거면 됐어"라고...)


점심 시각은 1시이니, 포르투갈 사람들 셈법으로, 그때부터 오기 시작해서 대충 2시 즈음에는 점심 먹기 시작할 것이라는 우리의 예상을 뒤엎고, 첫 번째 손님이 무려 12시에 도착!!

셋째 누노네 가족이 엄청 일찍 왔다.

보배에게 줄 선물인 리모컨으로 조정하는 오토바이와

(보배는 넋을 잃었지만, 막상 오토바이가 움직이기 시작하니깐 무섭다면서 침대 위로 도망갔다),

루이지냐에게 줄 선물인, 노래하고 말하는 곰인형을 들고

(루이지냐는 아직 뭐가 뭔지 모르는 아가니깐 감흥이 없고, 대신 보배가 이 곰인형을 무척 마음에 들어했다. 보배 장난감도 보배 것, 루이지냐 장난감도 보배 것! 아직까지는!)

일찍 도착했다. 하긴 누노가 아는 식당을 통해 새끼돼지 통구이Leitão을 주문한 것이니, 배달을 맡은 누노가 미리 좀 일찍 도착한 것 일터. 레이따웅은 동티모르에서 한 두 번 먹어봤는데, 원조 포르투갈식을 먹어보는 것은 처음이다. 꼬치에 끼인 돼지가 사실적으로 그려진 상자 2개가 주방 한 쪽을 꽉 채울 정도로 꽤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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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저기 돼지 아야야야야~~"

아무리 그림 속 돼지가 태연해 보일지언정 사실은 아프다는 것을 한눈에 꿰뚫어 본 보배의 짧은 코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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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넓적다리 염장햄Presunto 도 통째로 등장.

사시미칼 같은 얇은 칼로 바로 슬라이스 해서 먹는 프르준투는 짭조름하고 기름진 것이 딱 술을 부르는 맛이랄까. 와인과 햄, 치즈, 빵을 먹고 마시는 동안, 가족들이 속속들이 도착했다.

사촌 안나와 남편 카를로스, 안나의 부모님인 신랑의 이모님 부부가 역시나 보배와 루이지냐에게 줄 장난감과 옷을 잔뜩 들고 오시고, 또 다른 이모님이 오시고, 셋째 알렉산더 가족 4명에, 첫째 주아웅네 가족 4명+1명 (카롤리나의 남자 친구), 막내 루이스와 우리 시부모님까지 해서,

총 성인 22명 (조카들은 아직 13~18세까지이지만 먹는 것은 성인만큼 먹으니 성인으로...)에 아가 2명!

집이 완전 북적북적이다.

정신없고 자리도 좁지만, 그래도 다들 웃고 떠들고 난리가 났다.


3년 전에 처음 왔었을 때였으면, 정말 당황하고 안절부절 이었겠지만, 지금은 꽤 편하다 - 다들 얼굴 알고, 어차피 말은 잘 안 통해도 어떻게든 의사소통은 하니깐.

그리고 상당히 자유스럽다고 해야 하나, 하여간 편하다.

어쨌거나 우리가 초대한 것이니, 신랑과 내가 뭘 막 준비해야 한다 하는 그런 게 참 없다. 그런 걸 당연히 기대하지도 않고, 준비하지도 않는다.

첫해에는 이런 것이 왠지 안절부절이었는데,

("그래도 우리 집에 초대했는데, 너무 편하게만 있으면 안 되는 것 아닌가? 다 준비해서 대접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

지금은 그냥 그런가 보다 한다.

가스파초 냉수프는 루이스와 시부모님이 준비, 레이타웅과 햄은 셋째와 넷째가 잘라서 준비, 접시 나르고 테이블 세팅하는 건, 조카들이 알아서 해... 나는 루이지냐 우유 챙기는 것만 하면 된다.

해서 한참 잘 먹고, 와인 몇 잔 마신 후, 루이지냐 우유 먹을 시간이 되어선 우유를 주고, 우리 둘이서 낮잠을 늘어지게 잤다.

어차피 1시 즈음에 시작된 점심이 저녁 8시는 되어야 끝날 것을 아니, 편하게 완급조절을 하기로!



아니나 다를까, 루이지냐와 낮잠 자고 나오니, 새 해가 아주 쨍쨍하게 떠서, 집 앞에 테이블을 내놓았다. 다들 아직 먹고 수다 떨고 웃는 것이 한참이다!

디저트 먹고, 디저트 후에는 또다시 햄과 빵, 치즈 먹고, 와인은 계속! 나도 합류해서 같이 먹고 마시고.

루이지냐는 생각보다 방긋방긋 잘 웃고, 보배도 처음에는 낯설어하더니, 가족들과 완전 잘 어울린다. 제일 나이 어린 13살의 조카 알베르토는 특히 보배랑 잘 놀아준다. 보배는 나중엔 아무나 한 명씩 손을 잡고 이끌어 화단 앞 공터로 데려가더니, 뜬금없이 박수를 치며 방방 뛴다. 그게 너무 귀여워서 다들 웃고 박수를 치면서 호응해주었더니, 더 신이 났는지 계속 되풀이! 다들 2~3번은 보배 손에 이끌려 공터에 가서 서 있으면서, 다른 사람들의 박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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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 여유롭고 재미있는 점심-저녁은 밤 10시가 거의 다 되어 끝났다.

8시부터 슬슬 일어나기 시작해서 10시가 거의 다 되어서 마지막 손님이 돌아갔는데, 집도 무척 깨끗 - 설거지는 이모님들이 다 해주시고, 뒷정리는 시부모님께서 해 주시고, 청소는 셋째네랑 사촌 안나네가 많이 해주었다. 마지막 뒷정리 정도를 나랑 신랑이 했는데, 정말 별로 할 것이 없었다.


사람들이 많아서 시끌벅적하고, 아무래도 말을 잘 못 알아들으니 좀 답답한 부분은 많지만, 그래도 이런 편안한 가족모임 정말 좋다. - 다들 조금씩 요리, 설거지, 청소, 뒷정리를 알아서 한다. 모두 일을 하기에, 특정인에게 일이 몰리지 않는다. 누구 하나 일에 치이는 사람은 없다. 모두들 각자 편한 대로 음식과 술과 대화와 낮잠까지! 알아서 즐길 여유가 있다. 여유 있게 잘 즐기고 나니, 만나면 반갑고, 헤어질 때는 아쉽다. 그래서 다음번 가족모임이 또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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