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에서 생긴 일

생기 세계의 아이들 07

by 마싸

주로 아이들과 놀다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상상을 조금씩 이어 붙였습니다. 그러다 보면 희한하게, 주위 사람들에게 들은 소소한 이야깃거리나, 뉴스에서 보는 현실의 이야깃거리들도 같이 달라붙었습니다. 이야기들이 점점 더 머릿속에서 살아났습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소위 '저 세상' 존재들은 왜 우리 옆에 있으려고 하는 걸까?'와 같은 단순한 질문에서 가지치기를 한 머릿속 상상은 자꾸 커져서, 나름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두리뭉실 덩어리였는데, 자꾸 이런저런 모양새가 만들어지고, 그 모양새들끼리 이야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모험도 하다 보니, 머릿속에서 끄집어내어 한 번 써 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첫째가 8년 후쯤에는 읽을 수 있는 재미난 야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썼습니다. 꼬리표를 붙이자면 '아동 판타지 소설'이 되겠지만, 엄마인 어른의 입장에서 던져보고 싶은 현실의 문제들, 어른의 문제들도 같이 들어 있습니다.


그날 밤, 보비는 솔의 이야기에 대해서 다시 생각했다.

‘아마님이 해준 이야기랑 통하는 부분이 있어. 아마님도 그렇고, 솔의 할머니도 그렇고. 둘 다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무척 많이 생각하고 있었던 게 있었잖아. 아마님은 딸을 구해야 되겠다는 것, 할머니는 손녀를 봐야겠다는 것. 게다가 할머니는 이미 오실 계획까지 다 세워놓으셨으니깐, 얼마나 아쉬웠을까.

아마님이 그랬지, 아마님 같은 존재들은 무척 강력한 감정이나 의지나 생각들에서 생겨 났다고. 그 세계에 왔다는 것은,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무척 강한 감정이나 의지를 가졌다는 거라고... 그럼 솔의 할머니도 아마님처럼 이상한 할머니를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죽음 대신 아마님처럼 그 세계에서 살아가기로 한 것일까? 아니야... 정신을 잃고 일주일인가 계시다가 돌아가셨댔쟎아. 너무 짧은 시간인데... 그렇게 짧게도 그 세계에서 돌아다닐 수 있는 걸까? 그러고는 어떻게 되는 거지? 완전히 없어진 걸까?

그 이후에도 솔이나 솔의 어머니에게 더 나타나거나 했다면, 오늘 솔이 이야기해 준 것과 같은 일이 더 있었을 거야. 한 번 뿐이었다는 건... 솔의 할머니는 그냥 그때 한 번만 솔을 보러 오신 걸 거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작별 인사 같은 걸로 말이야. 그러고 나서 그냥 정말 돌아가신 거야. 음, 소멸한 거지. 없어진 거야. 그런데 아마님은 아직 살아있잖아. 아니, 그러니깐, 그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잖아. 그럼 아마님은 죽지 않았다는 얘기겠지? 그렇다면 여기선 어떻게 되는 거지? 아마님도 여기서 살았댔잖아. 피와 뼈를 가진 몸이라고 얘기했어, 나처럼, 다른 사람들처럼. 그럼 아마님의 몸은 여기 아직 있는 걸까? 아니면 그냥 죽은 걸까? 어쨌거나 아마님의 정신만 거기서 살아가고 있는 거야. 솔의 할머니는 몸과 영혼이 다 돌아가신 거고... 그렇게 되는 걸까? 아마님의 몸은 어디에 있을까? 그냥 죽어 없어진 걸까 아니면 어디 병원에라도 있는 걸까? 아마님은 알고 있겠지? 아마님도 솔의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처럼, 완전히 없어질 수 있을까? 어렵네, 이거..."

보비는 이런 생각을 계속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다음날은 시험 마지막 날이었고, 보비는 아침에 부모님께 도서관으로 바로 갈 거라고 미리 말씀드렸다. 시험을 마치자마자 보비는 그 집으로 뛰어갔다. ‘꽤 오랜만이네’라고 생각하며 보비는 익숙하게 울타리의 빈틈으로 향했다. 이제는 주저함 없이 덤불 틈으로 빠져나오니, 바로 집이 보였다.

‘어, 오늘은 자전거가 없네?'

보비는 내심 놀랐다. 반짝거리는 자전거가 당연히 거기서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공도 자전거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너무 오랜만에 와서 그런가. 한 일주일은 넘은 거 같은데... 하긴 뭐, 자전거가 매일 나만 기다리면서 여기 서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걸어가도 돼. 오늘은 시험이 일찍 끝난 날이어서, 돌아갈 때까지 시간이 아주 많으니깐. 그런데 내가 길을 잘 기억하고 있겠지? 저 언덕 쪽으로 죽 걸어가다가 넘으면 바로였지, 아마?'

라고 생각하며 보비는 걷기 시작했다. 3분 정도 지났을까, 얼마 걷지 않았는데 뒤에서 펑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유리가 깨지는 소리와 사람들의 비명 소리 같은 것이 들렸다. 보비는 깜짝 놀라 얼른 뒤를 돌아다보았다. 언제 그런 소리가 들렸나는 듯이 조용했다.

‘뭐지? 저 집에서 난 소리 같았는데. 저런 소리가 났으면 집이 부서지거나 유리창이 깨져야 되는 거 아니야? 너무 멀쩡해 보이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똑같아 보여. 그럼 저 집에서 난 소리가 아닌가?'

보비는 다시 온 길을 조금 되돌아가 집을 더 가까이에서 보려고 했다. 분명 꽤 큰 소리였는데,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펑 터지는 소리와 비명 소리로 미루어보아 어떤 소란이나 소동을 보게 되지 않을까 하고 자연스럽게 기대했는데, 너무 조용해서 보비는 안도감이 들면서도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잘못 들었나? 아니면 아주 멀리서 난 소리인데, 저 집에서 났다고 내가 생각한 건가. 분명히 이 정도 거리인 것 같았는데 말이야. 더 멀리서 난 소리 같진 않았어. 그런데 저 집은 아주 멀쩡해 보여. 유리가 깨지는 소리 같은 것도 크게 들렸는데, 창문은 다 멀쩡한걸?'

보비는 좀 더 서서 가만히 지켜보았지만, 어떤 특이한 점도 볼 수 없었다. 집은 여전히 아주 조용하고 깔끔해 보였다. 순간 2층의 끝 창문에서 빛이 번쩍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아주 순식간에 밝은 빛이 번쩍하고 순간 사그라졌다. 보비가 계속 서서 보고 있지 않았더라면 눈치채지 못할 짧은 순간이었다.

‘뭐지, 저건? 엄청 번쩍거렸는데. 꼭 번개가 치는 것 같았어. 물론 실내에서 번개가 칠 수는 없지만 말이야. 그런데 아주 조용하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고.'

보비는 좀 더 기다렸지만,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고, 더 이상 이상한 것도 보이지 않았다. 보비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다시 아마님네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계속 여기서 집을 지켜볼 수는 없어. 저 집에서 난 소리인지 아닌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아마님과 같이 이야기를 해 봐야지.'

라고 생각하며 보비가 걷고 있을 때, 뒤에서 쑥 하고 스치는 기척이 나더니 자전거가 지나갔다. 보비는 순간 놀랐지만, 자연스럽게 바로 소리를 쳤다.

“어! 야! 자전거야! 나야!"

자전거는 가던 길을 멈추지 않고 계속 달려갔다.

‘뭐야? 자전거가 나를 못 봤나? 내가 계속 봤던 그 자전거 맞는데. 그런데 나도 참... 자전거가 나를 아는 척할 거라고 생각했네. 아까 자전거가 보이지 않아서 좀 서운하기도 했고. 그런데 자전거가 엄청 빠르게 휙 지나갔네. 꼭 쫓겨서 도망가는 것처럼..'

불현듯 그런 생각을 한 보비는 얼른 뒤를 돌아보았다. 누가 쫓아올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지만, 막상 아무것도 없으니 기운이 살짝 빠졌다. 보비는 다시 앞을 보고 걷기 시작했다. 그때 앞에서 보비 쪽으로 달려오는 자전거가 보였다. 보비가 놀랄 틈도 없이, 자전거는 순식간에 보비 앞으로 달려와 멈춰 섰다.

“어... 안녕, 자전거야. 너인 줄 알았어. 너... 혹시 다시 온 거니, 나를 보려고?"

자전거는 통통통 하고 튀어 올랐다.

“그렇구나. 고마워. 나도 널 보고 싶었어."

보비는 자전거의 핸들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왠지 지난번과는 좀 달랐다. 보비는 잠시 손을 대고 있다가 떼고, 자전거를 훑어보았다.

“어... 너 지금 떨고 있는 거니?"

자전거는 가만히 있었다. 그러더니 다시 통통통 하고 튀어 올랐다.

“무슨 일 있었어? 너... 혹시 도망가고 있었던 거야?"

보비는 아까 자기를 지나쳐 내달리던 자전거의 뒷모습을 보면서 문득 떠올렸던 느낌을 기억했다. 자전거는 다시 통통통 거렸다.

“그랬구나..."

보비는 누구한테서, 왜 도망가는 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자전거가 대답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자전거가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을 한다는 것도 어려워 보였다. 잠시 가만있다가 보비는 말했다.

“나는 아마님네 가는 길이야."

자전거는 통통통 하고 튀어 올랐다. 보비는 자전거에 올라탔다. 자전거는 곧 평소처럼 부드럽게 달리기 시작해서, 순식간에 아마님에 집 앞에 멈춰 섰다. 보비는 자전거에서 내려 다시 자전거의 핸들을 어루만졌다. 보비의 느낌인지 모르겠지만, 자전거는 더 이상 떨지 않고 괜찮아진 것 같았다.

“고마워. 덕분에 편하게 왔어. 음... 그리고 여기 아마님네 마당에서 좀 쉬다가 가면 어때? 물론 여기가 우리 집은 아니지만, 내 생각에 아마님도 괜찮다고 생각하실 거 같아."

자전거는 다시 통통통 하더니,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로 가더니 가만히 멈춰 서 있었다. 보비는 씩 웃으며 아마님네 집 문을 두드렸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 보비는 다시 좀 더 세게 문을 두드렸다. 그때 보비 뒤쪽 어딘가에서 소리가 들렸다.

“보비구나. 보비야, 여기야!"

소리가 나는 쪽으로 돌아보니, 아마님이 모자를 쓴 채로 바구니를 들고 보비에게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보비도 웃으며 마주 손을 흔들었다. 아마님은 보비 쪽으로 걸어오다가 나무 아래 있는 자전거를 보았다.

“안녕, 너도 왔구나."

자전거는 가만히 있었다. 자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보비는 생각했다.

‘자전거가 잘 수 있다면 말이지.'

아마님은 보비에게 걸어와 다정하게 손을 잡고 흔들었다.

“보비야, 오랜만이로구나. 미술관에 다녀오던 길이란다."

“네, 잘 지내셨어요? 이번 주가 시험이에요. 그래서 지난주엔 못 왔어요. 오늘 시험이 끝났어요. 일찍 끝나서, 오늘은 좀 천천히 있다가 가도 돼요. 지난번처럼 도서관 문 닫는 시간에 아빠를 만나기로 했거든요."

“그렇구나. 들어오렴. 그래, 그동안 잘 지냈니? 시험은 잘 봤고?"

“뭐, 그럭저럭이요. 참, 저도 지난번에 미술관에 갔었어요. 그리고 제 친구들이랑 이야기했는데요..."


그때부터 보비는 미술관에 가서 마음에 드는 그림을 본 이야기, 아마님의 수업에서 한 것처럼 해 봤더니 비둘기 소리를 듣고, 꽃향기를 맡았단 이야기, 바미와 솔과 함께 에너지와 기에 대해서 이야기했던 것, 솔이 해준 할머니 이야기까지 제법 많은 이야기들을 아마님께 했다. 아마님은 부엌에서 분주하게 손을 움직이며 보비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었다.

보비가 미술관 이야기를 할 때는 크게 웃으며 무척 기뻐해 주셔서 보비는 신이 났고, 보비가 친구들 이야기를 할 때 역시 미소를 띠면서 들었다. “바미나 솔이나 아주 좋은 아이들 같구나. 바미는 좀 씩씩한 개구쟁이 같은데?”라면서 아마님이 눈을 찡긋하셔서 보비도 같이 웃었다. “맞아요”라고 하면서 보비는 바미와 솔과 함께 있었던 이야기를 재잘재잘했다. 바미 부모님 이야기를 하면서, 보비가 흉내를 낼 때는 아마님이 무척 크게 웃으셨다. 보비의 입양과 솔의 엄마에 대한 바미 부모님의 이야기엔, 아마님이 다시 진지한 얼굴이 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솔의 할머니 이야기를 들을 때는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이야기를 들었다.

“그랬구나. 솔의 할머니가 솔을 보러 오신 거구나."

“역시 그렇죠? 솔의 엄마가 착각한 거 아니죠?"

“착각은 항상 할 수 있단다."

아마님은 윙크를 하면서 보비에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사람은 항상 보고 듣고 싶은 것을 보고 듣고, 믿고 싶은 것을 믿으려고 하는 경우도 많아. 감각이 장난을 치는 경우도 많고. 뇌가 착각을 하는 거지."

“뇌가 착각을 한다고요?"

“응, 뇌는 시각과 청각을 통해 세상을 인식하거든. 그렇지만 우리가 인식하는 세상은 실제 세상과 다를 수 있단다."

“음... 어려워요... 그럼 아마님은 솔 엄마가 착각했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할머니가 왔다는 걸 믿고 싶어서, 할머니 냄새가 난다고 생각했다는 그런 건가요?"

“오, 아니야. 나는 솔 할머니가 진짜 오셨었다고 생각한단다. 다만, 보비 네가 솔 엄마가 착각한 거 아니죠라고 물어봤잖니. 거기에 대해서 착각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대답한 거야."

“음... 잘 모르겠어요. 그럼 솔 엄마가 거짓말을 한 건가요?"

“난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단다. 어떤 상황을 착각할 때, 사람들은 자기가 인식하고 생각한 것을 믿어. 그게 진짜 사실이나 현상인지 아닌지를 모르는 게 착각이지. 그런데 어떻게 거짓말을 할 수 있겠니?”

“... 점점 더 헷갈려요."

“하하하하하, 미안하다, 보비야. 내가 너무 어렵게 말하고 있는 거 같구나. 음... 그러니깐, 나는 그때 솔 할머니가 정말 솔을 보러 오셨다고 생각해. 이곳에 들어오지 않고, 바로 죽음의 세계로 사라지는 영혼들이 더 많은데, 영혼마다 좀 속도가 다르단다. 빨리 없어져 사라지는 영혼도 있고, 작별 인사를 천천히 한 후 사라지는 영혼도 있지. 솔의 할머니는 아마 작별 인사를 하고 가신 거라고 생각해. 내가 들은 것으로 미루어 판단할 때,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야. 그리고 난 실제로 그랬었다고 믿어. 솔의 할머니가 솔을 보러 오신 후, 죽음의 세계로 사라지셨다고. 그리고 그때 솔의 엄마가 할머니의 흔적을 느낀 것이라고. 하지만 그건 내 생각과 믿음인 거지, 정말 어떤 일이 일어났던 걸까는 확실히 알 수 없지. 나는 이러이러하게 생각하지만, 다른 쪽에도 가능성을 열어둘 수 있다는 거야."

"알듯 말 듯해요. 어쨌든 저도 솔의 엄마를 믿어요."

“나도 그렇단다."

아마님은 웃으며 말했다.

“자, 이제 다 되었다. 저기 테이블로 가자꾸나."

아마님은 보비와 이야기를 하는 내내 계속 준비하던 것을 접시에 담아내었다.

“샌드위치와 레모네이드야. 점심시간이니 든든하게 먹어야지. 파이는 아까 오븐에 넣었으니, 우리가 샌드위치 다 먹을 때쯤이면 준비될 거야."

“잘 먹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배가 고팠어요, 헤헤헤"

보비는 신나게 덥석 한 입을 베어 물었다.

“와아아아, 이거 뭐예요? 진짜 맛있어요. 하긴 아마님이 해 주시는 건 다 너무 맛있어요!"

보비는 아마님의 대답을 들을 새도 없이 또 한 입을 크게 베어 물었다.

“하하하하하, 고맙다, 보비야. 항상 맛있게 먹어줘서. 그냥 계란야채 오믈렛에 치즈를 넣은 샌드위치야.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재료가 신선하고 좋아서 맛있는 거란다. 살구 쨈과 마요네즈를 바르고 오믈렛을 얹고 치즈도 두껍게 썰어 넣었지. 오이와 사과도 중간중간에 썰어 넣었단다, 상큼한 향을 느낄 수 있으니깐. 참, 난 오이를 좋아하는데, 싫어하는 사람도 많지. 너는 어떨지 모르겠구나. 오이가 별로면 빼도 된단다."

“아니, 아니에요. 저도 오이 좋아해요. 아, 그러니깐 아주 많이 좋아하진 않지만, 그냥 잘 먹어요. 그리고 이 샌드위치는 정말 완벽하게 맛있어서, 아무것도 안 빼도 될 거 같아요."

“하하하하, 보비야. 고맙다.”

이제 보비에게 익숙해진 광경대로, 아마님은 조그만 유리병을 꺼내 액체를 음식에 떨어뜨린 후, 기다렸다가 훅 하고 음식의 향을 들이마셨다.

“치즈가 아주 신선하구나. 라니 씨네 거란다. 버터와 치즈는 라니 씨네 게 최고지. 참, 계란도. 마요네즈는 처음 만들어 본 거라면서 자신이 없다고 했는데, 라니 씨가 너무 겸손하구나. 이 정도면 대회에 나가도 될 정도인데. 라니 씨는 항상 정성과 시간을 들여 만들지. 살구 쨈도 향긋하니 나쁘지 않네. 살구 쨈은 내가 만든 거란다."

둘은 잠시 각자의 방식대로 음식을 음미하느라 침묵을 지켰다. 보비가 순식간에 샌드위치 하나를 해치우자, 아마님은 아무 말 없이 미소를 띠며 2개를 더 가져왔다.

“아까 만들 때 몇 개씩 만들었단다."

보비가 샌드위치를 싹 다 맛있게 먹은 후, 아마님은 오븐에서 파이를 꺼내왔다.

“살구 쨈과 사과를 넣은 파이란다."

한 입 먹은 보비는 역시 최고라고 생각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렸다. 한 조각을 순식간에 먹어 치운 후, 두 번째 조각을 먹으면서 보비는 다시 입을 열었다.


“참, 제가 여기로 올 때요, 저 집에서 펑하는 소리를 들었어요. 그런데 얼른 뒤돌아 보니깐 집이 너무 멀쩡해 보여서, 제가 착각한 건가 보다 했어요. 다른 데서 난 소리인데, 저 집에서 난 건가 하고요. 그런데 분명 그 정도 거리 같았거든요. 더 멀리서 난 소리 같진 않았는데..."

“그래? 펑하는 소리라고?"

아마님은 무척 놀란 얼굴을 하며 보비에게 되물었다. 아마님이 너무 놀란 얼굴을 하고 되물어서, 보비는 좀 놀랐다. 그러고 나서 최대한 자세하게 겪은 일을 설명했다. 펑하는 소리, 깨지는 소리, 여러 명의 비명소리 같은 것을 들었는데, 뒤돌아보니 너무 조용하고 평화로워서 저 집이 아닌가 보다 하고 생각했던 것, 잠시 지켜보았는데, 건물 끝 2층 창문에서 번개가 치듯이 번쩍하는 빛이 깜빡였는데 순간 사라졌다는 것, 좀 더 서서 지켜보았지만 더 이상 아무것도 보고 들리지 않아 그냥 자리를 떠나 아마님 집으로 걸어오다가 자전거를 만난 것까지 다 이야기했다.

“자전거가 꼭 쫓기는 것처럼 정신없이 달렸어요. 그러다가 저를 지나쳤단 것을 알아채고 다시 저한테 온 것 같아요. 도망가는 길이었냐고 물어봤는데, 그렇다고 했거든요. 그러니깐 통통통 하고 튀어 올랐는데, 제 생각엔 그게 자전거가 그렇다고 대답하는 거 같아요."

아마님은 이제 꽤 심각한 얼굴이었다.

“그렇구나... 펑하는 소리와 번쩍이는 빛, 깨지는 소리와 여러 명의 비명소리라... 보비야, 걱정되는구나. 한두 번은 우연이지만, 계속되면 그건 우연이 아니야."

“한두 번이 아니라고요? 또 그런 일이 있었나요? 저 집에서 일어나는 일이 맞는 거죠? 아마님도 똑같은 것을 보셨어요?"

“그래, 나도 한 번 봤지. 그리고 우리 이웃들도 몇 번 비슷한 일을 목격했단다."

“저 집엔 누가 사는데요?"

“아무도 살지 않아. 물론 옛날엔 사람들이 살았지. 아주 옛날에. 그러다가 어떤 이유로 아무도 살지 않는 집이 되었단다. 그 이유는 나도 잘 몰라. 그런 집들이 어딜 가나 꽤 있고, 우리는 그런 집들을 일종의 역 같은 것으로 쓴단다."

“역이오?"

“그래. 역. 기차역처럼 생각하면 될 거야. 서로 다른 두 세계를 연결하기도 하고, 또 다른 구역의 역들과 연결되기도 하지."

“두 세계 라면... 제가 사는 동네, 그러니깐 제가 사는 곳이랑 아마님이 사는 곳을 말하는 거죠?"

“그렇지. 몸을 가지고 숨을 쉬고 생기를 만들어내는 존재들이 사는 세계와 나와 같은 존재들, 기나 영혼들이 사는 세계를 연결하지. 전에 네가 통과한 문은 근거리에서만 쓸 수 있는 거야. 동네 정도에서만. 그보다 더 멀리 이동하려면 역에서 연결 편을 타야 해."

“다른 구역들이라면... 다른 데도 있다는 말씀인가요? 이런 곳이오?"

“그럼, 당연하지. 다른 도시나 다른 나라에도 다 있단다."

“와!"

하고 보비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놀라워요. 그러니깐... 뭐랄까, 저는 아마님 같은 어, 존재가 그렇게 많으리라고는 상상해본 적이 없거든요."

“하하하하. 그렇겠지? 나도 여기 들어오기 전엔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니깐. 그렇다곤 해도 우리의 수가 아주 많지는 않단다. 네가 사는 세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일단 죽음과 삶의 순간에 처했을 때 그냥 죽는 사람들이 훨씬 많아. 우리처럼 선택의 순간을 가진 사람은 그리 많지 않거든. 무언가 강렬한 감정을 가져야만 해. 그리고 그런 순간에 이곳으로 오겠다고 선택한 사람은 그보다 더 적지. 또 계속 여기 남아서 생활하는 수는 그보다 더 적겠지."

“아, 그러고 보니... 아마님과 여기 계신 분들은 나중엔 어떻게 되나요? 죽을 수도 있어요?"

“그럼, 보비야, 당연하지."

아마님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이었다.

“모든 존재는 다 결국엔 죽고 소멸한단다. 우리도 당연히 죽고 없어지지... 여기 있는 존재들 중엔 아직 저세상에 몸이 남아 있는 사람들도 있고, 몸이 죽은 사람도 있어. 우리가 이곳에서 죽어 없어질 때는, 모든 게 없어지는 거야. 몸이 남아 있는 사람들이었다면 몸과 영혼이 다 없어지겠지. 몸이 이미 죽은 사람이라면 영혼만 없어질 거야."

“어... 어떻게요? 그러니깐 아마님은 여기서 살기로 결정했다고 하셨잖아요. 신기한 할머니를 만나서요. 그 할머니네 집으로 다시 돌아가서, 이곳 말고 다른 곳으로 가는 문으로 나가는 건가요?"

“아니란다. 그곳으로는 다시는 갈 수 없어. 여기에 처음 오면, 누구나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내가 얘기했었지? 그때 이곳 생활에 대한 여러 가지를 배우고 듣지. 그때 배우는 것 중 하나가 ‘죽는 방법’이야. 하하하, 그렇게 놀라지 않아도 된단다. 총이나 목을 멘다거나 하는 자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야. 알다시피 우리는 이곳에 몸이 없기 때문에 그런 방법으로 자살을 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지. 우리는 몸이 살아있느냐 죽었느냐에 상관없이, 영혼이나 기로 존재를 이어나가겠다는 선택을 했어. 그 이유는 다 다르겠지만, 공통점이 있단다. 그건 어떤 강력한 미련, 소망, 사랑, 증오 아니면 집착 같은 거란다. 그 대상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어떤 일이 될 수도 있지. 나 같은 경우는... 알겠지만, 내 딸이야...

아무튼 이유는 다들 조금씩 다르지만, 그 이유가 더 이상 없어진다면... 더 이상 여기에 있고 싶지 않다, 아니면 있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할 수 있지. 물론 그런 사람도 많고, 한편으론 여기서 생활하다 보니 나름 정이 들어서 더 있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많아. 하여간 이곳에 더 있고 싶지 않을 경우, 소멸을 택할 수 있지. 별로 어렵진 않단다. 우리는 생기를 먹으며 존재를 이어나가니, 그 생기를 더 먹지 않으면 돼. 그러면 기운이 없어지면서 희미해지다가 어느 순간 사라지게 된단다. 없어지고 싶으면, 자기 집에서 조용히 있으며, 그냥 생기를 먹지 않고 있다가 사라지는 거야. 그런 사람들도 있고, ‘하얀 건물’에 들어가는 사람들도 많아. ‘하얀 건물’은 없어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들어가는 곳이란다. 거긴 특이한 장소야. 우리는 몸이 없으니 어디든 자유롭게 갈 수 있는데, 그곳에 들어가서 문을 닫으면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가 없단다. 누가 어떻게 만들었는지는 몰라. 아마 이 세계가 생겼을 때부터 있던 장소일 거라고들 생각한단다. 그래야 우리도 죽을 수 있으니깐."

보비는 아마님의 딸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었지만, 쉽게 꺼낼 수 없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딸이 어떻게 되었는지, 딸이 잘 살고 있는 것을 확인하게 되면 아마님도 그 하얀 건물에 들어가서 죽을 것인지를 물어보고 싶었지만, 왠지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둘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아마님은 곧 웃으며 보비에게 말했다.

“보비야,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쉽지 않아. 그렇지? 죽는 것은 가벼운 일이 아니니깐 그래. 하긴 산다는 것도 그렇지."

아마님은 다시 심각한 얼굴이 되어 무슨 이야기를 할 듯하다가, 곧 다시 쾌활하게 웃으며 말했다.

“보비야, 그런데 너 정말 많이 먹었구나. 샌드위치에 파이까지! 하하하하, 아니야, 놀리려고 한 말이 아니야. 네가 맛있게 잘 먹어 주어서 진심으로 기쁘단다. 네가 이제 배부르게 많이 먹은 것 같아서 하는 말이야. 나와 같이 잠시 산책 가지 않겠냐고 물어보려고 했던 거란다."

“좋아요, 저도 정말 가고 싶어요. 그러니깐, 구경하고 싶어요."

“그래, 배부르게 먹었으니 가볍게 산책을 하면 좋겠지. 더 이상 몸이 없다곤 해도, 생기를 흡수한 이후엔 여전히 산책을 즐기고 싶단다. 그리고 올리 씨에게 파이를 가져다주기로 했거든. 또 내가 주문한 생기가 오늘 오전에 도착했다고 했으니, 그것도 가지러 가야 하고. 자, 같이 가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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