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정우 May 03. 2016

오월의  경주, 고도의 향취

경주2. 시내유적과 박물관

 


 벚꽃이 지고나니 어느새 푸른 오월이다. 상춘객들이 지나간 경주는 싱그러움으로 가득하다.  은은히 조명이 켜진 봄밤의 릉원이나 계림 숲을 걷다보면, 풀과 잎이 내뿜는 신생의 기운과 오랜 고도의 향취가 어우러져, 이시대인지 그시대인지 시간을 가늠할 수 없다.

오월은 경주여행의 최적기다. 



 계림 앞에서 바라본 인왕동 고분군. 경주의 산 능선과 절묘하게 어우러져있다.


 경주는 천년 신라의 중심이 되었던 도시이다. 한 나라가 천년을 존재한다는 것이 쉽지 않듯 한 도시가 천년동안 수도의 역할을 한다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수도는 한 나라의 흥망성쇠가 함축된 곳이다. 국가의 공통된 정서, 유행, 생활문화가 머물던 곳. 그렇게 다져진 세월이 천년이니 다시 천년이 지난 이시간까지 향이 깊은 것은 당연지사이리라. 짧은 여정이라면 경주를 제대로 돌아보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남산만 하더라도 600여점이 넘는 문화유산들이 곳곳에 산재해있으며 국립경주박물관만 돌아보는데도 반나절은 족히 걸린다. 어딜가든 유적이요 어딜가든 채이는 것이 유산이니 별준비없이 이곳에 도착했다면 어떻게해야 경주를 알차게 볼 수 있을지 혼돈스럽다. 경주를 돌아보는 일정은 크게 세가지로 요약해볼 수 있다. 경주의 동쪽 끝 감포바다로부터 토함산 자락의 일정, 경주시내의 유적과 박물관을 돌아보는 일정, 경주남산 트레킹과 그 일대를 돌아보는 일이다.





경주 시내유적 답사 - 대릉원, 첨성대, 반월성, 계림


 김알지의 탄생설화가 간직된 계림 



 서기65년(탈해왕9년) 어느 봄밤, 왕은 궁궐 서편의 숲에서 울리는 닭울음 소리를 들었다. 늦은 밤 닭이 우는 까닭이 궁금했으나 밤이 깊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왕은 신하를 시켜 숲으로 가보게 했다. 금빛 궤짝이 나뭇가지에 걸려있는데, 흰 닭 한마리가 그 밑에 앉아 울고 있었다. 궤짝을 열어보니 놀랍게도 그 안에 아이가 하나 있었다. 범상치 않은 일임을 직감한 왕은 아이를 거두었고, 알지(閼智)라 이름을 붙였다. 금궤짝에서 태어났다하여 김(金)씨 성을 붙였으니, 경주 김씨의 시조이다. 김알지는 태자에 책봉되었으나 왕이 되지는 않았고, 그의 육대손이 신라의 13대 미추왕이 되었다. 이후 이 숲을 신성히 여겼고, 닭계 자를 붙여 계림(鷄林)이라 불렀다.


 경주시내유적의 중심은 첨성대를 중심으로 반월성, 계림, 인왕동고분군, 대릉원으로 이어진다. 조금더 범위를 넓히면, 안압지와 국립경주박물관까지 쉬엄쉬엄 걸어서 돌아볼 수 있다. 경주의 풍경 중 독특하고 인상적인 것이 왕릉이다. 거대한 고분들이 옹기종기 모여 고분군을 이루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대릉원과 인왕동 고분군이다. 대릉원은 23기가 모여 릉원을 이루는 곳으로 황남대총과 미추왕릉, 천마총 등이 자리하고 있다. 유일하게 내부가 공개된 천마총에서 신라왕릉의 구조를 엿볼 수 있다. 인왕동고분군은 계림 서편 너른 공간에 자리하고 있다. 현재는 내물왕릉을 비롯해 5기의 고분이 있지만, 일제시대때 까지만해도 13기 가량이 남아있던 것으로 전해진다. 첨성대와 계림사이의 공간에서 바라보면 멀리 선도산 자락과 어우러져 묘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산과 릉이 마치 한무리처럼 보인다. 반달처럼 생겨서 반월성이라고 불렀던 월성은 신라의 궁궐이 자리했던 곳이다. 서기101년(파사왕 22년)에 축성되어 신라가 망한 935년까지 신라의 정궁으로 사용되었다. 돌과 흙을 쌓아 만든 토석성으로 길이가 1,841m, 둘레는 2,400m에 이른다.


대릉원의 천마총과 천마도, 고즈넉함이 느껴지는 월성 앞 산책로 




황룡사지와 분황사


 경주시내 동쪽에 자리한 황룡사지는 총 면적이 2만 여평에 달하는 동양최대의 사찰이었다. 진흥왕 14년(553)에 창건되어 선덕여왕 12년(643)에 완공되었으니 공사기간만 무려 90여 년이 걸린 국가의 명운을 건 대공사였다. 애석하게도 1,238년 몽고의 침략때 전각들은 모두 불타없어졌지만, 주춧돌과 초석 등이 남아 절의 규모와 전각의 자리를 유추해볼 수 있다. 황룡사의 가람배치는 중앙의 금당과 목탑 중심으로 좌우에 강당, 남쪽으로 중문과 남문을 두었고, 외곽으로 회랑을 둘러 비가 와도 비를 맞지않고 경내를 거닐 수 있게 했다. 황룡사에는 지금시대로 말하자면 경주의 랜드마크가 있었다. 높이가 무려 80m에 달했다는 황룡사 구층목탑이다. 경주박물관이나 경주타워에 가보면 옛 경주의 모습을 재현해놓은 디오라마를 볼 수 있는데, 황룡사 구층목탑의 위용을 간접적으로나마 실감해볼 수 있다. 신라의 영광과 번성처럼 황룡사는 사라졌지만, 너른 절터에 설때마다 쓸쓸함 대신 아늑함이 느껴진다. 고도 경주의 향취 때문일 것이다.


 황룡사터 초입에는 분황사가 있다. 선덕여왕3년(634)에 창건된 분황사는 황룡사지에 비하면 아담한 규모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신라 중심의 평지에 자리잡은 유서깊은 사찰이다. 당나라에서 귀국한 원효대사와 자장율사가 이곳을 거쳐갔고, 독특한 양식의 분황사 석탑이 남겨져 있다. 분황사 석탑은 보기드문 모전석탑인데, 모전석탑은 중국의 전탑을 모방하여 돌을 벽돌처럼 깎아 쌓은 탑을 말한다. 지금은 3층까지만 남아있으나, 원래는 9층탑이었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황룡사지와 분황사석탑(국보30호)





국립경주박물관



 천년고도 경주의 명성에 걸맞게 경주국립박물관은 중앙국립박물관에 이어 최고의 규모와 전시품을 자랑한다. 모두 3개의 전시관에 2,500여점이 전시되어있으며 80,000여점의 유물들이 보관되어있다. 선사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는 그야말로 신라의 모든 문화가 압축되어있다.  잘 정돈된 전시실 내부를 돌아보면 마치 고급스런 미술책을 한쪽 한쪽 넘겨보는 듯한 착각이 든다. 전시실의 외부에는 경주 인근에서 옮겨온 국보38호 고선사지 석탑을 비롯 석조유물들이 경내 곳곳에 가득하며 국보29호 성덕대왕 신종도 이 곳에 보관되어있다. 시주로 바쳐진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에밀레 에밀레하고 들린다하여 에밀레 종이라는 별칭이 붙어 있는 이 종은 경덕왕 시절 부왕인 성덕왕의 명복을 빌기위해 만든 것으로 그 모습만으로도 유려하며 장중함이 느껴진다. 화려한 비천상과 연꽃 등의 조각이 섬세하다. 예전에는 매해 1월1일 직접타종하는 종소리를 들을 수 있었지만 균열을 방지하기 위해 이제는 녹음된 소리만 들을 수 있다.




경주박물관에 전시된 신라의 유물들


애닯은 이야기와 함께  에밀레 종이라고 불리는 성덕대왕신종(국보29호). 비천상의 조각이 유려하다.

 




경주의 야경


안압지(사적18호) 야경
첨성대(국보31호)와 계림(사적19호)의 야경





경주 시내 여행 Tip


경주시내 답사일정 

대릉원 - 첨성대- 계림- 반월성- 국립경주박물관 - 황룡사지- 분황사- 안압지- 계림일대 야경


- 자전거와 스쿠터로 경주시내를 돌아볼 수 있다. 경주고속터미널 근처에 자전거와 스쿠터 대여점이 있다.

  자전거는 보통 일일 7,000원 정도, 스쿠터는 50cc기준으로 2시간 20,000원부터 24시간 55,000원 정도.


- 경주시내에서 동해안권, 양동마을까지 권역별로 돌아보는 경주시티투어 

http://www.cmtour.co.kr/tour/


- 경주의 고택에서 숙박

http://www.gjgotaek.kr/main/index.html


- 경주의 먹거리

  경주 시내 쪽에서 많이 찾는 것이 쌈밥으로 대릉원과 첨성대 인근에 쌈밥집이 즐비하다. 보통 일인당 10,000원 정도로 푸짐하고 먹을만 하다. 팔우정 사거리의 국밥골목의 해장국, 보문호 가는 길 북군동의 맷돌순두부도 많이 찾는 경주 먹거리다. 



매거진의 이전글 감포, 잠들지 않는 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