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던 시절, 발렌시아와 쿨피스

by 나는난

지금이야 쿨피스가 매운 떡볶이랑 같이 먹는 일반음식이지만 내게 쿨피스에 관한 특별한 기억이 있다. '마그넷' 현재는 '롯데마트'일 거다. 2000년대 초 내가 살던 청주에 터미널이 옮겨온 새 동네 가경동이 생기고 대단지 아파트가 생기고 대형마트 마그넷이 문을 열었다. 내가 살던 아파트는 ㅈ아파트. 35평이 넘었으니 생애 첫 '부자' 아파트였지만 전세금은 수도권에 비하면 반에 반 가격이었다. 실제로 바로 다음 이사한 인천의 32평 아파트는 4배가 넘는 가격을 주고도 어렵게 구했다.

다시 아파트로 돌아가서 7층은 내가 살고 바로 위층은 같은 과 친구 박사남편-미술학원장 출신 은마아파트 살았던 서울내기 아내 R이 두 딸과 막둥이 아들과 살고 그 앞집은 부설고 교사 남편-중학교교사 아내가 딸 하나 아들 하나랑 살고 있었다. 우리 세 식구들은 문도 안 잠그고 왕래하던 호시절이었다.

그때 마트가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아줌마 셋이서 R의 티코에 함께 타고 쇼핑을 갔었다. 그렇게 크고 많고 넓고 깨끗한 신식의 마트는 난생처음이었다. 이것저것 신나서 고르다가 내가 480원짜리 쿨피스를 자두냐 복숭아냐 하며 고르다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옆 냉장칸 앞에 있던 R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5700원짜리 파스퇴르 발렌시아 오렌지 주스를 집어올리고 있었다. 우리 둘의 대사가 정확히 기억난다. "그거 먹어요?" 같은 말을 동시에 했다. 핵심은 다음 대사이다. "애들 줄 거라...." 찌찌뽕!

그래 우리 집은 애들은 쿨피스 먹이고 손님 오면 2800원짜리 하이씨나 좀 더 비싼 델몬트를 사서 대접했다. 그 집은 자기 애들 줄 건 발렌시아고 손님들에겐 페트병 주스를 산단다. 크하~~~~~

이 일은 뒤끝이 있다. 6개월 후에 이 일화를 꺼냈다가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그날 둘이서 쿨피스와 발렌시아를 들고 와서는 그에 대해서는 더 이상 서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었는데 각자 생각이 많았던 거다. 나는 우리 애들이 불쌍하고 왜 이러고 사나 싶었고 꽤나 속상했고 우리도 비싼 거 먹여보자 이런 식으로 가끔 발렌시아를 샀다. 반면 그 집은 우리 이렇게 안 아껴도 되나 하면서 가끔 몇 줄 천 원짜리 요구르트도 사고 쿨피스도 샀단다.

( 더 써야지.....

150원짜리 자판기 커피도 아껴 아껴 마시고 이동이 많았던 우리 가족이 들른 휴게소나 슈퍼에서 딸 둘에게 1인당 1개 과자를 사줘 본 기억이 없는 이야기

미국서 살았던 1년 동안 스타벅스 3불짜리 커피 한 번도 안 사 먹은 이야기

나 혼자 마시려고 카페 간 적은 단 한 번도 없는 이야기

마흔 이전에 3~4시간 이상 밤잠을 잔 기억이 없는 것보다 1번도 혼자 자발적으로 택시를 타본 적이 없는 이야기

매일 4-5천짜리 커피를 마시는 학생들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가 엄마의 이해를 아무도 바라지 않아라는 딸의 말을 들은 이야기

빤쓰 꿰매 입고 양말 꿰매신고 고무줄 갈아 끼워 입고 아끼고 또 아끼던 시절 이야기

keyword
작가의 이전글처음 써봤던 한줄짜리 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