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도 더 전에 처음 써본 유서 단 한줄
금요일 출근하기 정말 싫었는데 게다가 비까지 오는데 논문 인준지 도장 찍으러 나왔다. 싫(었)다.
부부
중년(내겐 40대~50 초반) 때 남이랑 노년이자 노후 이야기할 때 반농담처럼 ‘친해야 한다, 너무 오래 같이 살아야 하기 때문에...’라고 했다. 근데 생각보다는 그리 오래 같이 살 것 같지는 않다. 나는 도시를 좋아하고 남편은 시골을 좋아하기 때문일 거라고 예상했는데 느낌도 그렇고 건강도 그렇고 유전적인 것도 그렇고 내가 좀 더 아니 훨씬 빨리 갈 것 같다.
마지막 장면을 생각하면 내가 ‘온전한’ 정신으로 ‘고마웠다, 미안했다, 수고했다, 잘 있어라, 다시 한번 고마웠다’라고 말해주고 싶은데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니지, 역시 글을 쓰니 생각이 정리되는군, 하면 되지. 지금 하면 되지, 또 하면 되지, 나중에 할 자신이 있든 없든 말이다. 난 마지막 인사하고 간 거다를 주지시키고. ㅋ 오늘 인생의 아주 큰 문제 한 껀 해결!!!
유서.
20여 년 전 종신보험이라는 게 알려져 첫 유행할 때 ㅍ외국계 생명보험직원이 연구실로 왔다. 요란한 보험아줌마들만 오래 보다가 수년 전 젊은 총각들로 그야말로 고객에게 대시하던 ㄷ생명보험사 때문에 알았지만 여긴 차원이 또 달랐다. 교양, 매너 등등의 (당시는 난 그 정도 외모와 말솜씨에도 그런 서울 냄새에 빠진 듯하다) 젊은 아저씨 매니저는 뭐라 그랬더라 라이프플래너라 그랬던가? 여하튼 설득당하기를 자초해서 종신보험을 들었다. 근데 각종 계약서와 내 사후 보험금 수령자를 적는 칸이 있는 복잡한 서류와는 별도로 그(들)에게 남기는 말을 쓰라며 백지를 주었다. 헉 처음이었다. 며칠 고민하고 썼지만 간단했다.
“OO(큰 딸)아, **이(작은 딸)를 잘 부탁한다. 잘 지내라, 안녕!”
20년쯤 지나 최근에 큰 놈에게 얘기했더니 너무했단다.
20년 동안 다시 썼어도 같을 것 같은데 아이의 원망 섞인 답을 듣고 나니 좀 너무했네 싶다.
2023년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