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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하나 Oct 04. 2020

길고양이들은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흰둥이가 작은 나무들 사이로 길고양이들의 쉼터를 발견했다. 흰둥이 덕분에 발견한 공간은 소박함 그 자체였다. 길고양이들은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평수를 따지지 않고, 아파트와 빌라를 나누지 않는다. 누구의 흔적도 없는 공간을 찾아다니다가 마음에 드는 곳을 발견하면 얼마 동안 머물 뿐이다. 그들은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길고양이들은 우리의 보금자리를 탐내지 않지만 우리는 그들에게 가혹하다. 그들이 거처로 삼기 이전부터 있었던 그 공간에 눈길을 준 이는 몇이나 될까. 그런데 고양이가 보이는 순간 최선을 다해서 그 공간을 지켜내려고 한다. 돌아다니는 길고양이 모습이 싫다고, 울음소리가 듣기 싫다고, 그들을 없애려 하기도 쫓아내기도 한다. 이런 우리는 아이에게 실제로 동물을 보여주겠다고 실내 동물원에 가고,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기 위해서 산과 들을 찾아다닌다. 자연의 구성원인 길고양이의 존재는 거북해하면서.


얼마 전 아파트 현관에 길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안내문이 붙었다. 'TNR로 관리되고 있으니 먹이를 주지 말아 달라'라는 말도 안 되는 내용보다 씁쓸했던 것은 안내문 자체였다. 4년 넘게 살면서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는데 변화가 생겼다. 누군가에게는 지속적으로 민원을 넣을 만큼 길고양이가 스트레스였나 보다.


그래서 그들이 사라진다면, 그래서 우리만 남게 된다면 그 세상은 과연 조화로울까. 날 세운 시선들은 길고양이 다음으로 쫓아낼 누군가를 찾으려고 하지는 않을까. 거슬리는 존재가 하나씩 사라지고 완전무결한 '순수'가 남게 되었을 때, 우리는 그것을 반가워할 수 있을까. 


길고양이들은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그저 위태로운 도시 생활에서 잠시나마 머물만한 공간을 찾아다닐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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