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말이었을까
공감으로 포장한 일방적인 말
흰둥이와 산책하는 길에 종종 만나는 아주머니가 있다. 흰둥이를 보면 귀여워라 하시는데, 매번 새롭게 이름을 물어보시지만, 애정을 표현하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아유 너 참 예쁘다. 이름이 뭐니? 나도 누가 전봇대에 묶어놓고 간 애를 데려다가 오래 키우고 몇 년 전에 보냈어."
그러더니 나를 향해 말씀하신다.
"이제 절대 강아지 안 키울 거예요." 그 모습이 서글퍼 보였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아픈 이별을 두 번은 겪어낼 자신이 없다고. 그래서 절대로 개를 키우지 않을 거라고.
그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다. "최선을 다하셨잖아요. 선생님하고 함께해서 행복했을 거예요. 언젠가 그 사랑을 다른 친구에게도 나눠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주제넘은 말이었다. 그럴듯하게 공감으로 포장했지만, 상대의 입장을 헤아리지 않은 일방적인 말이었음을 이번에 흰둥이가 아팠을 때 비로소 이해했다.
흰둥이는 허약한 개다. 1년에 한 번씩 병원에 입원할 만큼 병치레가 잦다. 익숙해질 법도 한데 흰둥이가 아픈 상황은 늘 새로운 고통으로 다가온다. 최근에 폐렴 때문에 입원했을 때에는 우리 곁에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만남이 당연히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 사람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영역의 문제다. 그런 상황에 놓이면 나 역시 더 이상 개를 키울 수 없다.
"정말 힘드셨을 것 같아요."
다시는 개를 키우지 않을 거라고 다짐하는 이들에게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