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했던 말을 하고 또 할 때마다 저는 좌절했어요. 충분히 듣고 위로했던 것 같은데 왜 계속 말하는 거지? 내 공감 능력이 부족했던 걸까? 스스로를 탓했어요. 그러다가 이 글귀를 발견했어요.
'반복되는 이야기는 오랜 고통의 표현일 수 있습니다' (p.178)
박재연 <말이 통해야 일이 통한다>
그만큼 힘들었다는 걸까? 저는 그가 어떤 상태였는지 생각해 보게 됐어요.
이런 생각이 뒤따랐어요. 듣기가 버거웠던 이유는 욕심 때문이었구나. 상대에게 영향을 끼치고 싶었던 거야.
저는 그가 힘들었다고 절규하는 순간에도 제 말의 존재감을 확인하려고 애쓰고 있었어요. 그러니 어떤 말도 도움이 되지 못하고, 의미도 없는 그의 상황에서 무력감을 느꼈던 거예요. 그는 저에게 말을 하면서 어떤 것도 기대하지 않았을 수 있어요. 어쩌면 제 존재도 의식하지 못했을 수 있어요.
지난 어느 순간을 당당하게 마주할 때까지 그는 계속 표현하겠죠.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의 곁에서 자리를 지키는 것이겠고요. 고통을 견디고 해소해 나가는 건 본인만 할 수 있는 거니까요.
저는 타자로서 말의 한계를 인정하고 나서야 말로 어떻게 해보려는 그런 욕심을 내려놓게 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