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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하나 Oct 16. 2023

끝이 안 보이는 애도를 시작하다

#1

9월 13일 마지막으로 브런치에 글을 썼던 날이다.

벌써 한 달이 지났다.


브런치가 독려 알림을 부지런히 보내줬지만 나는 글을 쓸 수 없었다.

쓰지 않았던 게 아니라 쓸 수 없었음을 강조하고 싶다.






첫 번째 심리상담을 다녀왔다.

그날은 산과에서 첫 진료가 예정된 날이었다.


나는 병원 대신 상담센터에 갔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다.



내 얘기를 들은 선생님이 말했다.


- 내담자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어요. 그중에 하나가 '벌 받는 것 같다'라는 거예요.

유산을 하고 나서 답을 갈구했던 질문이 떠올랐다.


'흔히 겪는 일이야?'


만약 그렇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나와 같은 마음인 걸까. 죄책감을 짊어지고 숨죽인 채 살아가는 걸까.



상담을 하고 나면 개운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생각이 많아졌고, 마음이 복잡했다.


이유가 있었다. 괜찮아지려고 외면하고 있었으니까.


지난 한 달 나는 현실을 마주하는 대신 차분히 치우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충분히 애도를 하고 나면 어떤 모습이 되는 거냐고 선생님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그 기억을 잊어버리는 게 아니고, 털어내는 게 아니고, 갖고 갈 수 있게 될 거라고 대답했다.


- 그건 너무 슬프잖아요. 왜 갖고 가야 해요? 갖고 갈 필요가 없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감정이 북받쳤다.


한편으로 애도란 기억을 갖고 갈 수 있도록 마주하는 과정임을 이해했다.


그렇다면 나는 아직 애도할 준비가 안 됐다.




- 몸이 아픈 건 아무것도 아니었어. 마음이 아픈 게 진짜야.

- 그러니까 그 고통을 감수하고 아기를 낳는 건가 봐. 낳고 나서 경험하는 기쁨 때문에.

- 그러게. 나는 어쩌냐? 고통은 고통대로 느끼고, 상처만 남았는데

우리는 아주 오래전 일을 회상하듯 담담하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나는 몰랐다.

진통은 양수가 터지고 태아가 나오면 말끔히 사라질 아픔이라는 것을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건 따로 있었다.


태아가 빠져나간 후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는 현실과 이로 인해 비통에 빠져 상실감, 절망감, 죄책감에 몸부림칠 나를 감당하는 일이다.


진통처럼 주기가 있는 이 고통은 네버엔딩인지, 끝이 있는지 지금으로서는 모른다. 견딜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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