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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하나 Oct 31. 2023

난임우울증상담센터를 찾았다

#3


- 꼭 마주해야 돼?

남편은 이해가 잘 안 된다는 듯 물었다.


- 나는 앞으로를 살아가야 하는데 마주하지 않으면 나아갈 수 없어. 내가 겪은 일이고, 여전히 겪어내고 있는 일이라서



'마주하지 않으면 나아갈 수 없다.'

괴로운 기억을 기어이 떠올리고 기록하며 공유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의미를 잃었다. 방향을 잃었다. 활력을 잃었다.

시간이 멈춘 것도 모자라 지난 시간이 송두리째 부정당한 느낌이었다.


표정이 사라지고, 말수가 적어지고, 행동이 느려졌다.

무의식적으로 한숨을 내뱉다가 멍한 자신을 발견하는 날도 있었다.

열심히 문장을 따라가 보지만 머리에 글자가 들어오지 않아서 한동안 책을 손에서 놓았다.


슬픔에 '집중 기간'이 있다면 그마저 끝났다고 생각했다.

괜찮지 않은 날에도 나는 상대를 살피느라 내 마음을 외면하고 괜찮은 척할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보는 사람들은 내가 머지않아 괜찮아질 거라고 기대할 테고,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내가 여러 조각으로 나뉠 것 같았다.



상담이 필요한 시기였다.



- 밥은 잘 드세요?

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 밥은 잘 먹어요. 웃기지도 않아요. 밥이 넘어간다는 게.. 먹고 싶어서 먹는 건 아니에요. 먹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먹는 거예요

나는 왜 밥을 열심히 챙겨 먹던 내가 싫었던 걸까. 왜 변명하려 했던 걸까.


- 잠은 좀 주무세요?

솔직하게 털어놓고 싶었다.


- 자고 일어나면 머리가 지끈거려요. 자면서도 머리가 아팠던 것 같아요. 잠에 집중하지를 못 하겠어요.

나는 작은 소리에도 쉽게 깼고, 잠을 제대로 못 자서 두통에 시달렸다.



- 13주를 목전에 두고 서요

질문은 기억나지 않지만 '13주'라는 단어를 내뱉으면서 울음이 터졌다.


그때 우울증 평가도구 (PHQ-9)에서 16점이 나왔다.






20대 초 절벽 끝을 따라 걷는 듯 위태로웠을 때 글을 쓰면서 마음을 다독인 기억이 있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글쓰기가 떠올랐던 것 같다.


그렇지만 써지지 않았다.

써 내려가야 할 것만 같은데 주저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최소한 에너지와 용기가 있어야 글도 쓴다는 걸 깨달았다.


다행히 지금은 집중해서 글을 쓸 수 있다.



이 글을 마무리할 때면 나는 어떤 모습일까?

마음을 차곡차곡 정리했을까?

부디 그러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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