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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하나 Apr 12. 2024

말하기 두려워졌다

역지사지에 대한 생각


 재작년 겨울이었다. 스피츠 흰둥이가 아파서 울며 보낸 날들이 있었다. 환견환묘 카페에 들락날락하다가 어떤 글을 발견했다. 글쓴이는 반려동물을 떠나보내고 살아갈 이유가 없어졌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우리는 이유가 있어서 살아가는 게 아니라 태어났으니까 살아가는 거라고, 마음 단단히 먹으라고 댓글을 남겼다.


 그때는 몰랐다. 얼마나 겉도는 위로였는지. 사람은 이유가 사라지면 살아갈 원동력을 잃을 수도 있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돌아보면 그때 나는 무언가를 잃어본 적이 없었다.





 유산을 겪고 상담을 하면서 이해되는 마음이 있었다. 난임부부의 마음, 세상을 등진 누군가의 마음이다.


 중기유산을 하고 시험관을 시작했을 때 쫓기는 조급함을 경험했다. 나 자신이 컨트롤하기 어려운 감정을 경험했다. 난임의 여정을 힘들어하는 이들을 보며 마음을 내려놓지 안타까워했던 과거의 내가 부끄러웠다.


 자살한 사람을 두고 사람들은 '평소와 다름없었다'는 말들을 한다. 전날까지 가족과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며 믿을 수 없이 충격적이라고도 한다. 언젠가 내가 고속도로에서 비슷한 충동을 경험했을 때 갑자기 나를 찾아오면 떨치지 못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우리는 대체로 경험한 만큼 생각하고 말한다.





- 제 지인은 아이는 안 낳고 개만 키워요. 그러면 안 돼요.


 아는 사장님은 말했다. 우리는 모른다. 그들이 아이를 원했지만 갖지 않기로 결심했는지, 생기지 않아 지금에 이르렀는지, 애초에 아이를 원하지 않았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결과에는 맥락이 빠져 있다.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말'이 두렵게 와닿았다.




 가장 최근 일이다. 독서모임에서 <내가 안개마을에 있을 때>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위안부 생활을 했던 자신의 경험을 동요 없이 차분하게 들려주는 전전의 모습이 논제로 나왔다.


만약 전전이 자신의 내력을 이야기할 때 지금처럼 덤덤하고 평온하게, 심지어 마치 남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말하지 않고 한바탕 통곡이라도 쏟아내서 그걸 들어주고 있었다면, 그래서 듣는 이도 그녀와 함께 울었다면, 틀림없이 훨씬 견디기 쉬웠을 것이다.   p.29


 우는 것도 힘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경험에서 비롯된 배움이다. 함께 모여 아파해주던 사람들이 돌아간 후에도 그 삶을 짊어지고 가는 사람은 그곳에 남아 있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 전전의 모습에 대해 어떤 말도 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P.S. 살아가는 의미를 잃어버렸다던 당신께


 제가 매정한 말을 했던 걸 사과드려요. 사람이 살아가려면 의미가 중요하다는 걸 배웠어요. 겪어보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고통도 있음을 그때에는 몰랐습니다. 지금은 아픔에서 회복하셨기를 바랍니다.




사진: UnsplashPatrick Hend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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