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을 마무리할 때쯤 선생님에게 물었다. 언제든 다시 찾아올 수 있다는 대답을 듣고, 약간의 두려움을 갖고 지냈다.
화요일에는 스피치에 대한 정보성 글을 나누고, 금요일에는 유산 후 마음 회복에 대한 경험과 생각을 나누는 브런치 루틴을 갖고 있다. 하지만 지난주 '금요일의 글쓰기'를 건너뛰었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졌기 때문이다. 주말 내내 추스르지 못했다.
그날 아침부터 흰둥이가 예민했다. 돌아보면 예민한 건 나였다. 예민한 상태로 흰둥이를 바라봤다. 흰둥이 백내장을 예방하겠다고 주문했던 강아지 모자를 받자마자 씌우고 나가서 잃어버렸다. 오후에는 병원을 2곳이나 다녀와서 넋이 나가기 직전이었다. 저녁에는 PT도 잡혀 있었는데운동할 컨디션이 아니어서 양해를 구하고 당일 취소를 했다.
모자를 잃어버린 사건은 트리거였다. 계속상황을 반추하고 있으니까 남편이 말했다.
- 파인이 사건 이후로 흰둥이에게 과해진 것 같아.
그는흰둥이랑 반려견 놀이터에 가자고 제안했다. 내 기분 전환을 위해서였지만, 정작 나는 운동장에서도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뭐 때문이지? 우울감을 유발한 원인을 찾으려고 했다.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걸 찾으면가벼워질 것만 같았다.
그날 밤 평소보다 일찍 침대에 누워서 우울증에 대한 글을 찾아 읽었다.유산을 하고 나서 중기유산에 대한 글을 찾아 읽을 때랑 꼭 같았다.위로를 찾고 싶었나 보다.
'우울증은 나를 돌보지 않은 자가 겪게 되는 아픔이다. 의식적으로 나를 우선에 두는 연습이 필요하다.' 브런치 '방랑전문 상담사 덕규언니'님의 글에서 발견했다. 나를 돌보지 않아서 겪는 아픔이라니. 마음아파하면서 방전된 채로 잠이 들었다.
다음날 일어나자마자 유튜브를 봤다. 페이커가 연습하는 영상, snl 코리아, 이효리 레드카펫.. 웃고 느끼면서 나를 위해 뭘 할 수 있는지에 집중했다.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운동을 하러 갔다. 남편이 함께해서 마음을 먹고 집을 나섰다.14분짜리 천국의 계단 코스를 끝냈을 때 개운함을 기억했다. 샷 추가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 들고 돌아왔다. 물샤워를 하고 글을 끄적이다가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남편이 나를 데려가고 싶어 했던 식당으로 갔다.
모든 선택에는 '나를 위한' 기준이 있었다. 이 기준을 실천할 수 있었던 것은 그날 아침 올라왔던 윤홍균 선생님의 글 덕분이다. '지금은 3월에 시작된 새로운 생활이 지쳐가는 시기이다. 회복하며 이 시기를 지나는 사람과 자기 비난을 하는 사람 사이에 간극이 벌어진다. 자연스러운 피로감을 나약함이나 불길한 징조로 여기지 말고 회복의 시간을 갖자.'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에 어찌할 줄 몰랐고, 이를 떨쳐내지 못할까 봐 내심 두려웠다. 스스로 해결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아서 피하고 싶었는데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받아들이면서 정신을 차렸던 것 같다.수월한 여정은 아니지만, 나는 나를 위해 분명히 노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