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다과회

by 노준성

디카시가 먼저 잔을 들었다

“나는 짧아서 부끄럽소

그대들의 깊이를 닮고 싶소”


하이컷이 미소 지었다

“짧음 속에 찡한 순간을 담는 그대야말로

시의 번개이지요”


서사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 긴 이야기도

그대 한 컷만큼의 진심을 배우고 싶소”


서정시는 조용히 말했.

“나는 감정만 아는 바보인데

그대들은 세상과 사람을 함께 노래하네.”


풍류시는 웃으며 술을 채웠다

“결국 시는 다 다른 길로 걷는 도(道)지

짧아도, 길어도, 멋도, 눈물도

모두 한 잔의 시(詩)일 뿐이죠”


그때 바람이 스며들며

창밖의 낙엽이 소리 없이 떨어졌다

“참 곱다.”

모두가 동시에 말했다


그 말 한마디가

오늘의 가장 완벽한 시였다

작가의 이전글그 시절의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