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장탕 한 그릇

by 노준성

겉보기에 뚝배기는 그저 말끔한 사기그릇
김 모락모락 피어오를 땐 속내를 알 길 없네
숟가락 깊이 넣어 한 번 크게 휘저으니
꼭꼭 숨겨둔 세상만사 비로소 고개를 드네
잘게 썰린 벌집양은 촘촘한 세상 그물망 같고
질긴 곱창 마디마디는 비틀린 인연의 매듭이라
선지 한 덩이 툭 불거져 핏빛 정의를 외치는데
식탁 위 사람들은 깍두기 씹으며 웃음만 파네
어디 내장 없는 인간이 이 자리에 있겠냐만
다들 비단 옷소매 아래 구린 속은 감춰두고
국밥 속 꼬불거리는 남의 내장만 타박하며
기름 엉기는 뚝배기 밑바닥처럼
식어버린 양심들도 그릇 가에 덕지덕지
들깻가루 듬뿍 뿌려 잡내 한 번 가려보고
고추기름 뻘겋게 풀어 부끄러운 낯빛 가리네
다 비우고 일어서는 이들의 뒷모습은 배부르고
식당 문 밖 나설 때면 다시 배 속이 뒤틀리니
오늘도 우리는 뜨거운 국물 한 사발에
제 속은 못 보고 남의 속만 씹어 삼키는구나

월, 화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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