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서기

by 노준성

내 사랑이 그대의 정박이 아니라

자꾸만 수면 아래로 끌어당기는

무거운 닻이었음을 알아차렸을 때

나는 진심이라는 이름의 문장을

한 줄씩 한 줄씩 고이 접어

서랍 깊숙이 넣기 시작했습니다


그대의 계절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장애물 없이 흘러가야 하는데

'나' 라는 그늘에 발목이 걸려

빛의 속도를 잃어가는 것 같아

미안함은 사과로 끝나지 못하고

몸 안에서 오래 남아

저린 통증으로 자라났습니다


나의 모자람이 이 순간에도

그대의 시간을 갉아먹지 않기를

나의 서툰 체온이 이 공간에도

그대의 날개에 금을 내지 않기를

그래서 나는 불안한 시간에

머물던 자리를 비워 둡니다


사랑이 떠난 자리가 아니라

숨 쉴 수 있는 여백으로

나보다 더 넓은 품이 들어와

그대의 눈물에 먼저 손을 대고

웃음이 스스로 찾아오게 하기를

그대의 삶이 나로 인해 멈추지 않고

더 찬란해지기를 바라 봅니다


나는 다만 먼발치에서

그 빛이 낭비되지 않는 것을 바라보며

가장 슬픈 행복을 빌겠습니다

사랑해서 떠난다는 문장 뒤에

끝내 말하지 못한 나의 전부를

한 줄씩 한 줄씩 고이 접어

서랍 깊숙이 넣어 둡니다

월, 화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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