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지붕들 끝에서
낙숫물이 세월의 시간을 물들였다
늘 같은 자리를 적시며
흙 위에 둥근 우물을 파던 물의 문장
짚 냄새 밴 툇마루는
해 질 녘이면 낮의 등을 내려놓는 자리였고
어머니는 젖은 고무신을 뒤집어
하루의 물기를 털어냈다
마당 끝 감나무에 시선을 걸어두고
붉게 익어가는 침묵을 기다렸다
저녁이면 굴뚝 연기 하나
가늘게 하늘에 사다리를 놓아
마을의 안부를 구름에게 건넸다
개 짖는 소리, 두레박의 물빛 울림,
맨발이 흙을 차며 남긴 정겨운 체온에
그 소리들이 모여
우리는 하나의 저녁이 되었다
가난은 얇은 이불 같았으나
저녁이 내려앉는 법을 우리는 알고 있었다
세월이 흙길을 밀어 주름을 세우고
우물은 그 아래 화석처럼 잠들었다
이제 창마다 별들이 켜지지만
그 별들은 서로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빛은 부서져 눈 속에 가두었고
어둠을 함께 나누는 법은 사라졌다
바람은 더 높은 층을 배회하고
흙냄새 섞인 소식은 공중에서 흩어진다
오십 고개 육십 고개를 넘어
머리 위로 서리 한 철 내려앉은 날
아파트 베란다 난간에 기대면
툇마루 끝에서 발 구르던
작은 발뒤꿈치 하나가
시간을 건너 나를 부른다
개벽이라는 이름의 속도 속에서
세상은 천둥 번개처럼 요란한데
한 번 하늘로 오른 저녁연기는
끝내 땅으로 귀환하지 았았다
나는 추억을 무릎에 앉히고
사라진 기억을 다시 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