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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Oct 10. 2020

[DAY10] 머나먼 타국에서 한국인 찾기

지수 일상 in Croatia


크로아티아로 오기 전 나는 다양한 통로로 이곳의 정보를 얻고자 노력했다. 영국이나 스페인, 프랑스와 같은 서유럽권은 많은 사람들이 교환학생 아니더라도 여행으로 많이 다녀간다. 하지만 동유럽권에 속한 크로아티아는 최근에서야 관광지로 한국인들에게 각광받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일까. 맛집과 카페는 고사하더라도 교환학생에 대한 정보를 정말 얻기 힘들었다. 내가 속한 한국의 대학교도 크로아티아로 교환학생을 보낸 지 아직 1회 차였고 내가 두 번째였다. 따라서 초록 포털사이트의 여행 카페뿐만 아니라 교환학생 카페를 뒤적이며 이곳의 생활, 대학교 수업 정보, 부동산 정보 등을 얻어야 했다. 발품을 판 덕분일까. 자그레브 대학교를 다니는 학생은 아니어도 자그레브에 위치한 다른 대학으로 교환학생 오는 사람들과 연락이 닿았다. 오늘은 그중 후배 지원이가 알게 된 지인의 건너, 건너의 사람(완전 남남)들과 만나기로 했다. 왜인지 첫 등교날과 같이 깔끔하게 입어야 할 것 같은 쓸데없는 기분.



날씨는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낯선 땅에서 한국인들을 만난다는 생각에 괜히 소개팅을 하는 것처럼 설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주책이지만 약속시간인 5시까지 제일 나이 많은 내가 제일 빨리 나와서 기다렸다. 마치 강남역에서 소개팅 남을 기다리는 것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그래도 서양인들이 가득한 이곳에서 한국인은 손쉽게 찾을 수 있겠지만.



Ozujsko 맥주는 크로아티아의 기본 맥주이다. 보통맛 맥주부터 자몽, 포도, 레몬 맛이 있지만 한국처럼 향만 입히는 게 아닌 정말 묵직한 과일 맛이 난다. 오늘은 레몬 맛을 처음 먹어봤는데 인생 맥주가 되었다. 라들러 종류인데 술보다는 주스 같아서 술술 넘어갔다. 배가 금방 차는 것만 아니었다면 두병은 거뜬했을 것 같다. 이날은 다행히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다 비웠다.

 


주문하면서 작지 않을까 했는데 예상과는 다르게 많이 남겼다. 양도 많았지만 너무나도 짰기 때문이다. 특히 가장 많은 기대를 했던 고기와 소시지가 가특한 플레이트는 염전인 줄 알았다. 유럽 사람들이 대부분 짜게 먹지만 지금껏 먹었던 음식은 생각보다 짜지 않고 맥주와 먹으면 적당히 먹을만했다. 하지만 Less salty의 법칙을 깜빡하고 이곳 생활에 적응했다는 오만함의 결과가 하필 오늘, 첫 만남에 들뜬 우리에게 다가왔다. 결국 다 먹지 못하고 남긴 것을 너무나도 아쉬워하며 우리는 맥주를 들이부었다. 그래서 내가 맥주 한 병을 그렇게 빠르게 비웠을까?


오늘 만난 친구들은 자그레브대학교가 아닌 ZSEM에 다니는 친구들로 주로 부산에서 살고 있는 친구들이었다. 나와 동갑인 친구 한 명과 지원이와 동갑인 후배 두 명. 다들 성격이 너무 좋고 시원시원해서 처음 만났는데도 불구하고 서로 할 말이 많아서 떠들기 바빴다. 사뭇 외로울 수 있는 교환학생 생활에 새로운 활력이 될 것 같아 너무 기분 좋았다. 자그레브가 아니더라도 한국에서도 가끔 연락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으면 좋겠다며 Z세대의 연락처 교환 법인 인스타그램 계정으로 맞팔로우 했다. 대판 싸우지 않는 한 평생 팔로우하겠지?

 


식사 후 술을 잘 못하는 동갑내기 친구는 2차로 술을 마시러 가자는 친구들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녀를 혼자 내기에는 미안하기도 하고 자그레브에서 룸메이트 다음으로 만난 동갑내기 친구와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 조금은 아쉬웠지만 나도 그녀를 따라 길을 나섰다. 배가 불러 산책을 하다가 조금은 쌀쌀한 날씨지만 디저트로 젤라토를 먹자는 제안에 빈첵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갑자기 낯선 음악 소리가 들렸다. 일반적인 멜로디가 붙여진 버스킹이 아닌 아시아풍의 특이한 복장에 장구 같은 작은북을 두드리며 전통음악을 부르는 사람들이었다. 이해해보려고 노력했지만 도무지 알 수 없는 장르에 한참을 구경하다가 자리를 떴다. 도대체 무슨 노래를 하는 사람들이었을까?



빈첵에 도착해 드디어 혜진의 픽이었던 피스타치오를 먹었다. 역시 JMTGR(엄청 맛있다는 거친 뜻). 하지만 웬걸. 빈첵의 한 종업원이 친구의 말투를 조롱하는 듯한 뉘앙스로 주문을 받았다. 외국에 살면서 가장 최약체인 동양인 여자인 나는 평소와 달리 길거리를 돌아다니거나 집 주변의 가장 일상적인 공간에서는 인종차별을 안 당할 거라는 생각을 했나 보다. 무방비상태에서 친구가 당하는 것을 보고 있자니 피가 거꾸로 솟는 피꺼솟을 경험했지만 그것 또한 이미 가게를 나와서 친구에게 들은 사실. 매우 분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오직 아무도 모르게 혼자만의 불매운동을 할 뿐. 화가 나지만 맛은 있었던 젤라토를 먹으며 산책을 이어갔는데 참나. 갑자기 비도 쏟아져서 엄청 추웠다. 얼른 집에 가라는 신호인가 보다.



추운 몸을 녹이기 위해 샤워를 하고 방 정리를 하면서 밖을 문득 보았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바로 건너편 건물 1층(유럽은 한국의 1층이 0층에 해당됨)에서 눈대중으로 30명은 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

기억으로는 아마 8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해가 지면 집 또는 술집 밖에 모르는 듯한 자그레브 사람들인 줄 알았는데 그건 또 아닌가 보다. 무슨 일로 다들 모인 건지 궁금해하며 커튼 틈으로 구경하다 보니 쉽사리 끝날 것 같지 않은 모임인 것 같아 내일 확인해보는 걸로 하고 자리에 누워 하루를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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