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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Oct 11. 2020

[DAY11] 첫 여행지, Zadar로 떠나기

지수 일상 in Croatia


이른 아침부터 부랴부랴 준비해서 길을 나섰다. 기분 좋게 길을 나서서일까. 나이 든 할아버지와 그를 잘 따르는 강아지를 사진으로 담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할아버지에게 사진을 전해주지 못한 게 아쉽다. 조금은 맑지 않은 날씨에 건물도 조금 차가워 보이지만 너무나도 포근한 둘 사이를 포착한 것 같아 뿌듯하다. 오랫동안 건강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매일 산책을 다녔으면 하는 바람이다. (참고로 자그레브 와서 놀란 것은 이곳에는 유기견, 유기묘를 잘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 한국에서 고양이를 키우는 집사로서 이 부분은 배워야겠다는 생각과 동시에 이러한 환경이 부러웠다. 동물들이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서 버려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버스 터미널로 가기 위해서는 집에서 3분 정도 골목길을 걸어 한 정류장으로 가야 한다. 이 곳에서 트램을 기다리는데 약간 흐리긴 하지만 춥지 않은 게 어딘가. 날씨가 내 마음에 쏙 들고 기분도 들떠서 발을 동동 굴렀다. 자그레브로 온 후 처음 여행을 가는 거라 매우 기대되었다. 국경을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주말에 근교로 놀러 갈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운인가. 심지어 바닷가인 자다르라니. Flix버스를 탈 예정이라 미리 온라인으로 예약을 했지만 처음 가보는 버스 터미널이라 전날부터 로드뷰로 가는 길을 알아보고 누웠다. 심지어 가면서 먹을 간식까지 샀다지. 누가 보면 수학여행이라도 가는 줄 알겠다. 참고로 말하지만 오늘은 당일치기로 떠나는 여행이다. 코에 바람 쐬러 가는 정도.

 


동유럽에서 주로 타는 독일 회사의 Flix버스. 앱으로 예약했지만 막상 도착해보니 자그레브 버스 터미널에 있는 플랫폼 번호는 나와있지 않았다. 주말 아침이라 그런지 안내 데스크도 닫혀있고 타 회사 데스크에는 사람들이 많아서 물어볼 데가 마땅치 않았다. 어쩌지 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더니 터미널 한 구석에 있는 가게 주인 할아버지가 나오셨다. 슬쩍 나를 쳐다보시고는 영어를 잘 못하니 티켓만 보여달라고 말하셨다. X 못 싼 것 마냥 쩔쩔매는 표정은 만국 공통인가 보다. 자다르?라고 한번 물으시고는 "투 제로포"를 말과 동시에 손가락으로도 가리키며 알려주셨다. 땡큐 땡큐를 외치며 알려주신 곳으로 찾아갔고 제시간에 맞춰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역시 두 가지를 몸소 배웠다. 첫째로 여행길은 무조건 일찍 나서자는 것, 둘째는 어디서든 착한 사람은 있다는 것. 겁내지 말고 모를 때는 주변에 물어보자. 그게 제일 빨리 가는 길이라는 건 확실하다. 

 


우여곡절에 제시간, 지정된 플랫폼으로 갔는데 웬걸. 와야 할 버스는 오지 않고 다른 회사 버스가 플랫폼에서 승객들을 받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기사에게 가서 물어보니 다른 곳으로 가는 버스이고 내가 탈 버스는 아마 조금 늦는 것 같다고 이야기해주었다. 나와 룸메이트를 포함해서 거의 20명이 넘는 사람들이 플랫폼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말뚝 박아놓은 것처럼 서서 기다려야 했다. 잠시 후 젊은 한 여자가 지쳐가는 우리에게 다가오더니 Flix버스 회사에서 나왔고 미안하다면 초콜릿을 하나 주었다. 이렇게 쉽게 기분이 풀어질 일인가. 화이트 초콜릿을 입에 물고 15분 정도 기다렸더니 드디어 우리의 자다르행 버스가 도착했다. 그리곤 버스에 타기 위해 승차권이 있는 스마트 폰을 꺼내 QR코드를 찍으니 금방 버스에 앉을 수 있었다. 기사양반, 얼른 출발해 봅시다!



자그레브에서 자다르까지 가는 길은 별로 멀지 않다. 약 2시간 정도? 하늘은 맑고 구름은 몽글몽글하니 괜히 소풍 가는 느낌이 들었다. 가는 중간에 휴게소도 들러주고 룸메이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바깥 풍경을 바라보니 진짜로 가는구나 하는 마음에 속으로 꺄 하며 소리를 질렀다. 엄마, 딸내미 유럽 땅에서 친구랑 둘이서 여행 간다! 진짜 어른이 된 것 같다. 참고로 유럽의 휴게소는 대개 한국의 휴게소와 달리 정말 화장실과 간단한 먹거리를 살 수 있는 편의점이 다다. 한국처럼 대형 커피 프랜차이즈도 없고 갓 구워주는 통감자나 떡볶이, 핫바 이런 거는 상상할 수 없다. 중상 정도라면 커피나 음료를 마실 수 있는 미니 카페 정도? 아니면 편의점 햄버거나 샌드위치 스타일을 가게 아주머니가 대충 만들어주는 정도? 하여튼 기대하지 않고 오는 게 좋다. 그리고 화장실도 대부분 유료인 점 잊지 말자.



소풍은 아니더라도 먼 길 떠나는데 입이 심심하면 쓸까. 전날 장 보면서 구매한 간식을 주섬주섬 까먹었다. 처음 보는 과자 브랜드였지만 포테이토 칩은 다 기본은 한다는 생각에 클래식으로다가 하나 집어왔다. 역시 기본은 실패하지 않는다. 



드디어 자다르 도착! 햇살은 따뜻했지만 바람이 미친 듯이 불어서 추웠다. 자그레브보다는 자다르 건물들이 조금 낮았지만 크로아티아 특유의 건물 색은 어딜 가나 똑같은 것 같다. 조금 탁한 색? 가지는 앙상했지만 잎이 돋으면 바람에 따라 흔들릴 것을 생각하니 여름에도 다시 한번 와보고 싶었다. 



자다르 버스터미널에서 조금 걷다 보니 마주한 항구.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보트가 줄에 매어져 있었는데 풍경을 보자마자 입을 떡 하고 벌렸다. 일렁이는 바닷물에 투명한 물 색깔, 그리고 각양각색의 보트까지. 20살 때 갔던 이탈리아 베니스보다 더 좋았다. 아무래도 가기 전에 바닷가에 대한 기대를 전혀 하지 않아서 더욱 크게 다가오는 것 같다. 이런 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매일 아침 이런 풍경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한 달쯤 이 곳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오기 전 전날 만났던 후배는 이곳이 너무나도 지루했다고 했는데 아직까지는 너무 좋다. 개인 취향인 거니까?)



함께 관광을 온 것 같은 강아지도 기분이 좋은 것처럼 보였다. 그냥 내가 너무 기분이 좋아서 그런 것 같기도? 바닷가를 따라 걷다 보니 느낀 점은 이 거리가 만들어진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다는 느낌? 깔끔하게 정돈되었지만 공사에 쓰였을 법한 장비와 바닥의 타일 사이를 매우기 위해 쓰인 듯한 흰모래가 있었다는 것. 단순히 나의 추리였지만 앞으로 다가 올여름을 위해 자다르에서 단장을 잘해놓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역시 여름에 한철 먹고사는 나라다웠다. (실제로도 크로아티아가 벌어들이는 수입 중 대부분이 관광인데 1년 중 여름에서 거의 80퍼센트 이상이다.) 



타일이나 아스팔트 바닥인 방금과 달리 구시가지 대부분은 대부분 바닥이 대리석으로 되어 있었다. 여행책에서만 보던 곳을 내가 오다니. 정말 관광지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물씬 들었다.



도착하자마자 점심을 먹으러 자다르로 오는 내내 알아본 레스토랑으로 왔다. Downtown_Gastro&Bar.

개업한 지 얼마 안 된 곳이었지만 발 빠른 맛집 킬러 한국인들의 입맛은 언제나 옳기에 고민하지 않고 이곳으로 곧장 왔다. 유럽에서는 날씨 좋으면 그냥 아무 생각하지 않고 밖에 앉는다는 것을 배웠다. 실제로도 살고 있는 자그레브의 시내에는 음식점 또는 카페에서 길가에서 테이블을 운영 중인데 햇빛만 뜨면 아침이고 밤 할 것 없이 모두 밖으로 나와 앉아 있는다. 이 점은 한국에도 많았으면 하는 부분이다. 이곳은 새로 오픈해서 그런지 깔끔하고 점원도 친절했다. 



안 그래도 배가 금방 부르는 나는 음료랑 같이 먹으면 그냥 식사는 거의 못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래서 아쉽지만 오늘은 맥주 패스! 사실 조금 뺏어 먹기는 했다^^ (이 맥주가 ozujsko 레몬 다음으로 맛있다. 라들러라고 적혀있다면 무조건 주문해서 맛보자. 나를 믿고 그냥 시켜보다)



점원에게 추천을 받아 Fried calamari와 seafood pasta를 주문했다. 바닷가라 짤까 걱정했지만 less salty를 외치지 않아도 먹을만했다. 이야. 한국에서 먹는 오징어 튀김이랑은 또 다른 매력이다. 살짝 짭조름했지만 맛이 딱 과자 새우깡 맛이라 술술 넘어갔다. 그리고 파스타는 토마토소스 베이스에 새우와 홍합 등 다양한 해산물이 들어가서 호불호 없이 맛있게 먹었다. 역시 한국인의 맛집 탐방 실력은 세계적으로 알아 줄만 한 것 같다. 



소화시킬 겸 근처를 돌아다니다 보니 수많은 사람들이 이미 식사를 끝내고 햇빛을 쬐면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로만 포룸'과 '성 도나트 성당' 곳곳이 무너져서 무엇인가 존재했다는 흔적만을 보여주는 게 많았지만 그래도 과거의 흔적과 현대의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공존'의 방법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신기하게 다가왔다. 한국이었다면 도심과 위치한 이런 유적지를 발견한 후 개발을 하기 위해 다시 묻거나 발굴 후 땅 주인에 의해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는 것이 보통의 경우이기 때문이다. 경주는 패스. (경주는 한국의 특수한 케이스)



자다르는 정말 평화로운 해양 도시인 것 같다. 물 색깔이 너무 맑아서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찰랑찰랑 돌바닥을 치는 소리와 재잘재잘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소리. 그게 전부였다.



룸메이트와 하염없이 걸었다. 햇살도 따뜻하고 바람도 적당히 불고. 배도 부른데 따스한 햇살까지 쏟아지다니. 말 그대로 휴양지에 온 느낌이라 행복했다. 3시가 넘어가는 이 시간 너무나도 여유로웠다.



'바다 오르간'으로 유명한 자다르에는 길 바닷가 근처를 거닐다 보면 바닥에 구멍이 뚫어져 있는 걸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동시에 특이한 소리가 들렸다. 오르간이라고 불릴 만큼 바닷물이 파도를 치면서 신기한 소리를 내는데 수많은 구멍에서 가지각색의 소리가 모여 마치 연주를 하는 듯한 음이 만들어졌다. 걸으며 계속해서 봤는데도 신기해서 각각의 구멍에 귀를 기울였다.






수많은 유물과 유적지 사이로 공놀이 하는 아이들. 누구 하나 말리지 않고 공을 차는 아이들이 신기했다. 한국이었으면 벌써 동영상 찍어 "@@년된 역사 유적지에서 무식하게 공차는 아이들, 부모는 어디에?"라는 식으로 SNS에서 화제가 되었을 거다. 이런 걸 보고 문화 차이라고 해야 하나. 하여튼 이 광경이 눈길이 갔다.



카페에서 앉아 있을 수도 있었지만 자다르에 다시 언제 오겠냐는 생각에 계속해서 걸었다. 골목골목 조용했지만 다양한 가게와 집이 모여있어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다만 운동화를 신었음에도 대리석 때문에 너무 미끄러웠다. 비 오는 날 자다르는 그냥 이곳 주민들은 슬라이딩해야 하나 싶었다. 



이곳저곳을 걷다가 다리가 아파 잠깐 벤치에 앉았다. 그런데 강아지가 우리 주변을 계속 서성였다. 내가 계속 강아지의 관심을 끌어보려고 아는 척해서인 걸까. 주인이 내 주위로 공을 던져줬다. 고마워 주인님. 목줄을 하지 않아 한국이었으면 주인에게 눈빛 찌릿이었겠지만 로마에 오면 로마 법을 따라야겠지. 자유롭게 공놀이를 하는 강아지를 보니 한국의 개들이 조금은 불쌍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한국에서는 목줄 필수!

 


노을이 눈 부시게 아름답다. 한국에 사는 평소의 나라면 하늘을 잘 보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이곳에 오니 한참 하늘을 쳐다보고 노을 햇살을 온몸 맞으며 그 시간을 온전히 느끼고 있었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한국에서는 노을이 사람을 참 힘 빠지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마치 해가 나 같아서 밤이 되기 전 마지막까지 안간힘을 쓰는 것처럼? 그래서일까. 괜히 쳐다보면 울컥하기도 하고 생각이 많아졌다. 그런데 이곳은 좀 다르게 다가왔다. 잘 왔다고, 그냥 너 자신에게 집중하라고. 그래서일까 부정적인 생각보다는 그냥 편안했다. 간질거리는 바람도 좋았고 산책하는 사람들이 각자의 파트너에게 집중하며 이야기하며 걸으며 나는 소리도 좋았다. 비록 바람이 조금 심하게 불어 내 머리카락은 정리가 안될 정도로 산발이 되었지만?



당일치기 여행이라 버스 터미널로 돌아가야 했다. 자리를 털고 걸어온 길을 되돌아 가는 길에 다시 선착장을 발견했다. 이렇게 많은 보트와 요트 중 내 것 하나 없다는 사실에 쓰린 마음을 부여잡으며.

잘 있어 자다르, 또 올게! 

짧은 여행이었지만 교환학생으로 비행기 타고 온 크로아티아에서 내 힘으로 처음 떠난 여행이라 정말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다음 주에는 개강 후 본격적으로 강의를 듣는 일상이라 많이 걱정도 되고 긴장도 되는데 잘... 해낼 거라 믿는다.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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