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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Oct 12. 2020

[DAY12,13] 날씨 어플 끼고 사는 하루

지수 일상 in Croatia


이제 어느 정도 짐 정리가 마무리되고 사람 사는 방처럼 보인다. 이불 커버나 방 인테리어가 마음에 쏙 드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 집에서 가장 큰 방이기도 하고 배드 버그가 안 나오는 거에 만족한다. 배드 버그 하나라도 발견되었으면... 상상도 하기 싫다. 나는 아마 이 집에서 살지 못하고 난리법석을 떨었겠지. 이케아 느낌 낭랑한 화이트 책상 위에는 유학생으로서 꼭 필요한 것들만 구성해서 나름대로 인테리어를 꾸몄다. 가족 없는 곳에서 몸이라도 아프면 다 나만 손해라는 생각에 꾸준히 챙겨 먹는 프로폴리스 알약, 화장실을 편하게 가기 위한 유산균, 최소한의 화장품과 자취생의 필수품 물티슈까지. 몇 없는 책과 프린트물까지.



정말 필요한 것들만 가지고 왔는데 30kg 캐리어가 꽉 찼다. 무겁게 이고 지고 왔는데 막상 옷장에 걸어서 정리해보니 애걔? 하는 반응만이 나왔다. 그리고 이날은 드디어 집주인 Vedran이 집에 찾아왔다. 첫날 만난 사람은 중개회사, 즉 부동산 직원을 만나 인사한 것이고 내가 살고 있는 집주인은 코빼기도 안보였다. 아니 보지 못했다. 휴가를 가거나 바쁘다는 핑계로 계속 미뤄오다가 2주 만에 만난 것이다. 도착하고 나서 발견한 옷장이 안 열리는 문제는 2주 동안 해결하지 못했고 덕분에 복도에 놓은 캐리어로 왔다 갔다 거리며 생고생을 했다.



집안일은 하면 티가 안 나지만 안 하면 티가 그렇게 난다는 말이 맞나 보다. 매일매일 부지런히 했는데 불구하고 왜 시간이 지나면 금세 치우고 빨아야 하는 것들이 생기는 걸까. 한국에서는 평범한 귀차니즘에 속한 편이었는데 이곳에서 살다 보니 의도치 않게도 꽤나 깔끔 떠는 성격이 되어버렸다. 괜히 룸메이트를 눈치 보게 만든 건 아닌지 시간이 꽤 지난 지금 문득 미안한 감정이 떠오른다.


이날은 후배 지원이를 만나 헝가리 여행 계획을 세웠다. 물론 혼자 여행하는 것도 도전의 일부분이고 한번쯤 해볼 만 하지만 함께 여행할 친구가 있는데 굳이 해야 하나 싶다. 말만 하다가 이 날 만나서 교통편, 숙소까지 일사천리로 모두 해결했다. 역시 일은 몰아서 해야 한다는 것을 또 한 번 확인했다. 나와 성향이 얼추 비슷한 동생이어서 그런지 서로에게 스트레스보다는 함께 시간을 보내고 즐길 수 있어서 알게 모르게 든든함까지 느껴졌다.



다음날,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에 각각 한 과목씩 수업이 있는데 그중 월요일 수업... 만만하게 봤는데 심상치 않다. 뒷목을 잡으며 수업을 나왔을 만큼 힘들어서 그런지 장을 보기 위해 콘줌에 들르자마자 알코올 섹션으로 발걸음이 향했다. 술 마셔야 살 것 같다ㅠ



결국 룸메이트도 답답한 일정을 끝내기 위해 술이 필요했고 하루를 행복하게 마무리하기 위해 목살과 맥주를 사서  맛있게 먹었다. 쌈 채소가 없는 건 조금 아쉽지만 우리에겐 혜진이가 준 쌈장이 있지 않은가. 그거면 한국 고깃집 생각나게 만드는 80퍼센트는 채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힘이 난 나는 결국 월요일 수업을 드롭했다. 지금 생각해도 잘한 부분, 첫날부터 두 시간 수업과 미니 조별과제를 시킬 때 알아봤어야 했다.



한결 속이 시원해진 나는 여행자의 필수코스, 여행지의 날씨를 습관적으로 알아보기 위해 날씨 위젯을 확인했다. 장난하는 건가? 다음 주에는 덴마크 코펜하겐에 가는데 날씨가 온통 비구름으로 가득하다. 내가 얼마나 기대하고 손꼽아 기다린 여행인데... 그래도 내 사랑 북유럽에 가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하트) 신이 있다면 불쌍한 내 사연을 듣고 날씨 요정을 보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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