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수 Oct 13. 2020

[DAY14,15] 천국과 지옥을 오고 가는 교환학생

지수 일상 in Croatia


아침 7시 반부터 경찰서 가는 길이라고 하면 믿겠는가? 크로아티아에서 공부하는 교환학생이라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일, 바로 집주인과 함께 경찰서에 가서 임시 거주증 신청하는 것. 일처리가 느린 유럽은 본인이 몸을 일찍 서두르지 않으면 하루 종일 경찰서에서 죽치고 앉아 있거나 아예 다음 날에 와야 한다. 한국처럼 세상 편하게 인터넷으로 신청할 수 없다. 경찰서가 여는 8시 전에 일찍 도착해 번호표를 뽑고 기다린 덕분에 집주인 Vedran과 만나서 30분 만에 임시거주증을 발급받을 수 있었다.



9시에 첫 수업이 있어서 Vedran과 후다닥 Bye 하고 정신없이 학교로 향했는데, 이럴 수가... 월세 주기로 한걸 나도 깜빡하고 Vedran도 까먹었다. 솔직히 급한 게 아니라 나중에 줘도 상관은 없다. 하지만 나중에 안 받았다는 둥 딴 소리를 할까봐 주고 싶다는 의도를 내뿜는 문자를 남겼다. 역시 무슨 일이든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한국이었으면 계좌이체를 위해 은행 앱도 안 깔고 바로 카카오 뱅크로  보냈을 일이다. 결국 Vedran은 월세와 보증금을 다음날 받으러 왔다. 언제 어딜 가나 돈 받는 거는 좋은 거니까^^



이제는 학교에 들렀다가 집으로 곧장 오는 일이 없는 것 같다. 새가 방앗간 가듯이 들른 콘줌에서 오늘은 처음으로 바질 페스토로 파스타를 해 먹었다. 양파도 적양파, 붉은 소시지, 흰 양송이버섯에 노란 파프리카까지 들어가서 그런지 색이 알록달록했다. 하지만 현실은 냉장고 파먹기인 부분. 엄마가 평생 매 끼니마다 뭘 먹어야 할지 고민하는 걸 봐 왔는데 이제 그 마음을 나도 알 것 같다.(귀찮)



아침부터 경찰서와 학교를 다녀오느라 하루 종일 하늘 볼 일이 없었다. 자그레브에 와서 그 흔한 하늘인데 커튼 치다가 문득 본 노을 지는 하늘이 미세먼지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깨끗해서 너무 기분 좋았다. 사실 바깥 풍경을 보기 위해 창문과 커튼을 열어야 하는데 건너편 건물도 매번 창문이 열린 채로 커튼만 쳐져 있어서 혹시나 마주칠까 봐 괜히 노심초사하며 슬그머니 창 밖을 내다본다. 마주쳐도 상관은 없는데 굳이,,,?



지지리도 궁상맞지. 시간표 때문에 여기저기 교수님과 교수님과 메일로 연락을 하다가 시간이 꼬여서 수업을 못 듣게 되었다. 수업을 드롭해야 할 것 같다고 사과하니 교수님이 스위트 하게 답장을 주셨다. 항상 한쪽이 좋은 분 또는 긍정적인 상황이면 다른 한쪽의 문제가 꼬이는 것 같다. 딱 지금의 내 상황이 그랬다. 교환학생을 떠나기 전 고려하지 못한 상황이 나에게 닥쳤다. 한국에서 전공 학점 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과목이 받아들여지지 않게 되었다. 동시에 낙동강 오리알 된 상태가 되었다. 일단 융합전공 교수님께 연락드리니 한국에서 얼굴 보고 해결하자는 답을 받을 수 있었다. 친구는 교수님의 반응이 친절하다고 했지만 나에게는 꽤나 소름 돋았다. 안 될 가능성도 있다는 거니 플랜 B를 생각해야 할 수도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인생은 한 번에 일이 풀리는 경우는 없나 보다.



나에게는 융합전공을 공부하며 알게 된 현주, 신혜 언니가 있다. 어쩌다 보니 내가 교환학생을 위해 유럽으로 넘어온 시기와 그들이 유럽에서 인턴을 하는 시기가 우연히 겹치게 되었다. 그리고 한번 만나서 여행 같이하자는 이야기를 계속한 덕분에 돌아오는 이스터 연휴에 프라하에서 모이게 되었다. 미루고 미루다가 이날 저녁, 드디어 자그레브에서 프라하로 가는 버스와 돌아오는 비행기를 예매했다. 해외 결제라 아직 승인까지 시간이 걸리는데도 불구하고 예약했다는 사실에 벌써부터 설레기 시작했다. 얼른 그들을 보고 싶다. (사실 한참 남아서 이스터 때 되면 까먹을지도)



융합전공 학점으로 인정되느냐, 안되느냐의 기로에 선 Tourism Principles 과목. 나의 주전공은 경영학부이다. 관광과 관련된 경영학 과목도 있는 줄 알았는데, 출국 전 이 부분을 확인하지 못한 내 잘못이 크다. 그래서 벌 받는 거겠지. 오리엔테이션 때부터 아침 수업인 만큼 절대 늦으면 안 된다, 만약 늦는다면 강의실 문을 잠글 예정이니 각오해라 등 온갖 당부를 하더니 수업시간에는 교수님이 오시 않고 조교가 왔다. 빨간 머리를 한 조교님, 아마 대학원 생이겠지? 해리포터에 나오는 엄브릿지 교수처럼 양복을 딱 갖춰 입고 원칙을 준수하는 교수님 아래에서 공부하는 그녀가 조금 불쌍하게 느껴졌다.



교실이 어두컴컴해서 조교가 불을 켰는데,,, 원자력 발전소 뺨치는 느낌의 버튼을 눌렀다. 살짝 분위기 판문점이고요.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린 수강정정 날! 한국에서 임시적으로 제출한 수강신청 서류를 드디어 정정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만 해결하면 학교와 관련된 서류 처리는 어느 정도 끝나는 편이라 기다리고 기다렸는데 생각보다 너무 싱겁게 끝나버렸다. 한국이었으면 인터넷 속도가 빠른 피시방에서 광클릭하면서 정정했을 텐데 여기는 느림의 유럽이다. 한 교실에 모여서 여권처럼 생긴 수첩에 수기로 적어서 직원에게 가져가면 정정 끝! 정원이 중요하지 않은 건지 신기한 정정 법이 오히려 긴장했던 것보다 쉽게 끝나서 다행이었다. 내 월화수를 잘 부탁해!



이곳 크로아티아에서는 한 과목을 들을 때 대부분 강의와 세미나가 묶인 형태로 되어있다. 강의는 한국에서 이루어지는 것과 동일하게 진행되는데 세미나는 조금 특별하다. 한국에서 조별과제, 또는 미니 과제 시간? 복습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이날은 처음으로 세미나를 했는데 크로아티아 인과 팀이 되어 자신의  출신 국가에 대한 관광 수치에 대한 조사를 했다. 항목이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한국인의 빨리빨리 덕분에 구글링을 기가 막히게 해서 빨리 제출할 수 있었다. 낯가리는 우리에게 먼저 다가와준 친구야, 내가 누나인 것 같은데 말 걸어줘서 고마워. 점수 MAX 2점인데 2점을 획득하고 룰루랄라 집에 갈 수 있었다.



냉장고 파먹기의 달인 수준이 되었다. 오늘은 헝가리로 떠나기 전 냉장고에 남아있던 돼지 목살과 미니 양배추, 양파를 구워 먹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비빔면을 같이 못 먹은 게 조금 아쉬운데 이날은 룸메이트가 외식을 하고 들어와서 나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그래도 맛있게 먹었다.



그동안 감성 넘치는 사진들만 올리다가 카카오톡 대화 사진을 올려서 살짝 멈칫했지만 너무 웃겨서 공유하고자 한다. 헝가리의 유명한 온천에 가기 전 돼지고기 구워서 실컷 먹었다고 후배에게 후회 섞인 어조로 문자를 남겼더니 얘는 더한 걸 먹었다. 크로아티아에 와서 제일 많이 외식한 음식이 뭐냐고 하면 이 친구는 아마 한식당에서 먹은걸 꼽을 것 같다. 나는 수영복 입어야 하는데 전날까지 고기 구워 먹고 후배는 비빔밥에 갈비탕까지. 최후의 2인 답다.



고등학교 동창 중 한 명인 친구가 교환학생으로 프랑스에서 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유럽에 같은 시기에 있는 것도 신기하고 보고 싶어서 우리는 덴마크에서 만나기로 했다. 서로 그동안 가보고 싶었던 곳이기도 했고, 학기 중 시간이 맞기도 해서 주저하지 않고 함께 여행하기로 했다. 코펜하겐의 숙소를 알아보기 위해 비싼 물가를 고려해 에어비앤비를 위주로 알아보았는데 웬걸. 최저가를 위주로 알아봤는데 저런 고물 차가 숙박 시설로 올라온 게 아닌가. 더 어이없는 부분은 3박 4일에 8만 원 넘는 가격이었다. 추운 3월에 저곳에서 자다가는 입 돌아갈 뿐만 아니라 소리란 세상 모든 소리를 모두 받아들이는 소음 흡수기 아닌가. 가기도 전에 흠칫하게 만든 경험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DAY12,13] 날씨 어플 끼고 사는 하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