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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Oct 14. 2020

[DAY16] 부다페스트에서 만난 자본의 맛

지수 일상 in Hungary


드디어 처음으로 크로아티아를 벗어나 헝가리로 갔다. 이른 아침 버스라 새벽 6시부터 일어나 정신없이 씻고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교환학생을 위해 30kg+6kg짜리 캐리어를 샀는데 드디어 끌고 여행하러 간다. 날씨는 조금 흐리지만 외투를 따로 입지 않아도 될 정도로 많이 따뜻해진 날씨 때문에 몸도 가볍고 마음도 가볍게 길을 나선다.



이번에도 주머니 사정이 궁한 교환학생은 Flix버스를 타고 여행을 갑니다. 어젯밤이 사귄 지 1일째가 아닌가 의심될 정도로 서로를 너무 좋아하는 게 티 나는 커플이 앞자리에 앉았다. 당시 솔로로서 보기에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만 후배 지원이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그들을 지켜보며 계속해서 버스는 굴러갔다. 휴. 여행 시작부터 벌써 고비다. 시간이 조금 지나니 국경 넘는 곳까지 도착했다. 유럽은 국경을 맞닿은 곳이 많다. 국가 간 이동을 위해 공항에서 하는 것처럼 여권 검사를 하는데 처음 해봐서 그런지 잘못한 것도 없는데 한참 동안 두근거렸다.



무사히 국경을 넘은 후, 우리가 탄 버스는 헝가리 휴게소에서 잠시 정차했다. 화장실이 가고 싶었지만 당장 헝가리  잔돈이 없었다. 화장실 가려면 150 포린트(600원)가 필요한데 카드를 받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참아보기로 하며 휴게소 구경을 했다. 목이 조금 말랐지만 화장실을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에 맛있어 보이던 오렌지 주스도 못 마셨다. 여행하면서 요강을 가지고 다닐 수도 없고. 분하다.



드디어 부다페스트 도착! 4시간 걸려서 도착했더니 온 몸이 찌뿌둥하긴 했지만 크로아티아와는 다른 풍경에 피로보다는 설렘만이 가득이다. 버스 터미널에서 시내로 가기 위해서는 지하철을 타야 한다. 버스터미널 주변 공사 때문에 길을 헤매어서 조금 힘들었지만 그래도 뚜벅이는 씩씩하게 잘 찾아갔다. 세련된 듯 아닌 듯한 부다페스트의 지하철. 오기 전 네이버 블로그를 찾아보니 검표가 심하다고 했는데 생각보다는 별로?



글 쓰는 지금도 생각해보면 아찔하다. 한국 사람이 성격 급하다는 것은 두 유 노 클럽만큼 유명하다. 하지만 부다페스트에 와서 이 나라 사람들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았다. 지상으로 올라가기 위해 에스컬레이터를 탔는데 세상에 세상에. 한국의 일반적인 에스컬레이터 속도의 두배 정도였다. 너무나도 빠른 속도에 손잡이까지 잡으며 한참을 올라갔도 살기 위해 박자까지 타면서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려와야 했다.



Bistro Fine. 자그레브에서 부다페스트로 오는 길에 알아본 맛집. 화장실을 들리지 못한 나는 오는 길 내내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하고 왔다가 이곳에서 처음으로 오아시스를 만났다. 클래식 레모네이드를 시켰는데 너무 맛있어서 눈이 번쩍 뜨였다. 헝가리의 육개장이라고 불리는 굴라쉬와 감자수프인지 디핑소스인지 아직도 의문인 것과 곁들여 먹는 슈니첼까지. 부다페스트에서 먹은 첫끼는 먹으면서 웃음 지어질 만큼 맛있었지만 시킨 건 별로 없는데 가격은 후덜덜할 만큼 비쌌다.



너무나도 저렴한 우리의 에어비앤비 숙소. 무려 3층(유럽은 0층부터 세기 때문에 결국 4층인 셈)에 위치해서 짐을 낑낑대며 끌고 와야 한다는 점은 매우 아쉽지만 가격이 너무 착해서 모두 용서되었다. 무인 체크인으로 이루어진 숙소였기에 세이프 박스에 숙소 열쇠가 있다는 안내를 받고 세이프 박스를 찾았다. 문 앞의 번호 자물쇠형 네모 상자만 있고 세이프 박스는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뒤적거리다가 설마설마하며 번호 자물쇠형 상자에 비밀번호를 맞춰보니 세상에. 그 상자가 세이프 박스였다. 그냥 언뜻 보면 딱 보안용 기계장치였는데 열쇠가 든 세이프 박스라니. 호스트는 제대로 설명 안해준 죄로 딱밤을 맞아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로 하소연하며 숙소로 들어왔지만 막상 마주한 숙소가 너무 좋아서 대 만족했다. 오랜 버스 탑승을 고려해 화장도 안 하고 와서 시내로 나가기 전 화장도 간단하게 후다닥 끝냈다.



시내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덕분에 많이 걷지 않아도 사람들은 북적북적했다. 골목에서 나와 조금 걷다 보니 그 유명한 성이슈트반 대성당도 만나고, 오픈 토스트 때깔이 장난 아닌 것처럼 보이는 가게도 만났다. 이곳을 다시 지나게 된다면 한 번쯤 먹어보고 싶다.(말이 좋아서 오픈 토스트이지 빵 뚜껑 없는 토스트라 쓸데없이 고상하게 먹어야 한다.)



드디어! 보자마자 환호성을 질렀다. 스타벅스 간판을 보자마자 거짓말 하나도 안 하고 둘 다 흥분해서 오두방정을 떨었다. 지원이가 말하길 지금껏 본 나의 모습 중에 가장 밝아 보였다며.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나는 커피를 너무 좋아한다. 한국에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하루 한잔의 커피는 꼭 마셔야 살 정도이다. 점점 커피 가격이 비싸지는 요즘 개인 카페의 생태계에서 적립도 해주고 통신사 할인 등 나름 합리적인 가격으로 제공되는 스타벅스를 좋아한다. 그런 나에게 스타벅스 없는 크로아티아는 조금 잔인했다.



떨리는 가슴을 조금 진정시키고 우리는 급한 일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헝가리에 오기 전부터 대략적인 계획만 세운 우리는 수많은 관광지 중 정말 가고 싶은 곳만 여유롭게 가기로 했다. 그중 하나가 헝가리의 유명한 온천인 세체니 온천! 한국과 달리 수영복을 입어야 하는 규칙 때문에 우리는 계획에도 없던 수영복을 사야 했다. 그래서 급한 대로 수영복 몇 가지를 집어 피팅을 했고 나는 유럽에서 처음으로 의류 쇼핑을 했다. 식료품 이외에 쇼핑을 잘하지 않은 나는 큰 지출에 조금 손이 떨렸지만 오랜만의 쇼핑다운 쇼핑에 기쁜 마음이 더욱 컸다.



구름이 많다고 한 일기예보와 달리 오후가 될수록 하늘은  점차 맑아졌다. 날씨마저 우리를 도와주는구나 생각하니 오늘은 뭐든지 다 풀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쇼핑하며 한참을 돌아다닌 우리는 드디어 스타벅스로 향했다. 아이스커피 사랑해. 맛은 사실 한국이 더 좋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4천 원도 안 하는 헝가리 아이스 카페라테를 먹고 있으니 가성비에 흠뻑 젖어 이미 행복감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분홍색으로 물 들어가는 하늘빛



시간 가는지도 모르게 여유를 부리며 앉아있다 보니 노을이 지고 있었다. 우리는 노을 지는 풍경과 야경이 멋지다는 ‘어부의 요새’로 가기 위해 서둘러서 움직였다. 관광객과 퇴근하는 헝가리인들이 섞여 만원 버스를 탔더니 많이 힘들었지만 매일같이 이 상황을 겪는 헝가리 직장인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에 힘든 것은 싹 사라졌다.



미친 듯이 계단을 오르니 엄청난 규모의 ‘마차슈 성당’이 크나큰 위엄을 내뿜으며 존재했다.



노을은 금방 해가 지는 바람에 보지 못 했지만 너무나도 아름다운 부다페스트 야경을 볼 수 있었다. 대박!!!!! 좋은 건 확대해서 남는 거라고 해서 한참 사진 찍으며 구경했다.



가이드와 함께 여행 온 한국인 무리가 모여있는 쪽으로 가보니 시끌벅적했다. 왜 인가했더니 그들만의 포토스폿에서 가장 사진이 예쁘게 찍힌다는 국룰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진은 역시 한국인들에게 맡기면 모든 것이 만사 오케이!



노란빛 조명을 맞으니 더욱 아름다운 성당의 자태가 우리들의 발목을 잡는 듯하다.



세체니 다리 바로 앞 "사자 상을 조각한 조각가가 굉장한 자부심이 있었다. 습관처럼 자신의 조각에 오점이 있다면 죽겠다고 했는데 어느 날 어린아이가 사자상을 보고 왜 사자의 혀가 없냐고 물었다. 조각가는 그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아 바로 물로 뛰어들어 자살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섬뜻한 전설을 듣기도 하고 산책하며 다리를 오고 가니 속이 뻥 뚫린 것 같았다.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는 생각에 사진도 서로 찍어주고 구경하며 걷다 보니 헝가리에 있다는 사실에 문득 벅차오르며 가족들이 생각났다. 이 좋은 경험을 나 혼자 하다니. 당장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나중에 꼭 한번 가족들과 오고 싶다.



내일은 꼭 야간 페리를 타고 불빛으로 가득한 국회의사당을 코앞에서 보리라! 정말 야경으로 한방 먹은 부다페스트만의 특별한 밤, 이곳에서 보내게 될 남은 날들이 기대된다.



한국인 관광객들 사이에서 유명한 Menza 레스토랑. 저녁으로는 헝가리에 오기 전부터 연락이 닿은 유랑 동행과 함께 했다. 이곳에 일 때문에 오게 되었다는 그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맛있는 밥을 먹으니 정말 여행지에 온 느낌이 물씬 들었다. 사실 이런 곳까지 와서 왜 한국인을 만나나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낯선 곳에서 하루 종일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 속에서 여행을 하고 나면 하루를 마무리하는 잠시 동안은 한국인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몰려오기 따름이다. 여행으로 들른 헝가리에서 잠시 동안이라도 터전을 잡고 살아가는 그들의 이야기를 안주삼아 오늘 하루를 마무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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