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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Oct 15. 2020

[DAY17] 물에 몸 담그고 페리타고 노는 베짱이

지수 일상 in Hungary


드디어 왔다. 이곳은 부다페스트 중심가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세체니 온천”. 온천이라는 이름이 붙은 곳이지만 수영징처럼 수영복을 입고 입장해서 물에 들어갈 수 있는 곳으로 남녀 혼탕이다. 여기에 오기 위해 자그레브에서도 살만한 수영복 찾는다고 난리부르스였는데 오길 잘한 것 같다. 아침 일찍 오면 조금 더 저렴하고 물이 깨끗하다는 한국인들의 후기를 보고 우리도 새벽 댓바람부터 준비를 했다. 피곤하기 때문에 세수와 양치만 하고 화장은 대충 하고 6시가 조금 넘는 시간에 집을 나섰다. 이왕 왔는데 인증샷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에 지원이와 사진을 몇 장 찍고 추워서 금방 물속으로 들어왔다. 온천은 생각보다 뜨겁지 않았지만 오랜만에 탕에 들어와서 매우 기분 좋았다. 그리고 워터 파크처럼 중간중간에 워터풀 기능도 있어서 알뜰살뜰 잘 놀다가 왔다.



집에 먼저 갈까, 밥을 먼저 먹을까 하다가 너무 배고파서 전날 찜해둔 ANNACAFE로 갔다. 물에 몸을 담가서 그런지 많이 피곤했지만 날씨도 좋고 몸도 가벼워져서 그런지 밖에 잠시 앉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참새가 맛있는 냄새를 맡았는지 너무 많이 몰려들어서 실내로 들어와야 했다.



어딜 가든 오믈렛과 샌드위치는 항상 옳은 것 같다. 진심 맛있어서 하나도 안 남기고 다 먹고 왔다. 아침이라서 조금은 차분하지만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커피와 브런치를 먹으며 힘을 얻는 듯한 활기참까지. 크로아티아와는 조금 다른 아침 풍경에 입으로는 샌드위치를 씹으면서도 눈을 이리저리 굴려가며 주변을 구경했다. 관광 온 나이 든 부부, 아이 셋과 부부까지 아침을 먹으러 온 가족, 출근 전 테크 아웃으로 커피를 사기 위해 들은 직장인 등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이곳에 모여있었다. 그중에 제일 눈에 띄는 건 사실 동양인 여자 둘인 우리.



아침도 든든히 먹었겠다 깨끗하게 씻고 나니 너무나도 잠이 왔다. 아침 일찍 일어나 물놀이를 다녀왔으니 그럴 만도 했다. 결국 지원이와 난 다시 침대에 누워 잠시 눈을 붙이자고 했고 무려 3시간이 지난 후 정신을 차렸다. 나는 많이 피곤했는지 유튜브를 보다가 영상은 계속 플레이되는데도 핸드폰만 손에 쥐고 잠에 들어버렸다. 그런 나를 구경하다가 지원이도 잠에 들고 둘 다 깊은 잠에 빠져버렸다.  하루를 그냥 보내기에는 너무 아쉬워서 늦었지만 단장하고 나갈 준비를 했다.


길을 나서기 전 부다페스트를 초록창에 검색해보니 이곳의 맥도널드가 유명한지 연관 검색어에 떠있었다. 알고 보니 이 곳은 세상에서 아름다운 맥도널드 중 손에 꼽을 만큼 유명해서 한 번쯤 와볼 만한 기차역 앞 맥도널드라는 것! 아이스커피도 한잔 마시며 이 곳에서 우리처럼 구경온 사람들을 구경했다.


그리고는 갑분(갑자기 분위기) 점심 겸 저녁을 먹으러 맛집을 찾아갔다. 하지만 예약한 페리 시간이 얼마 없어서 근처에 검색해서 급하게 한 햄버거 가게로 들어갔다. 기대 없이 들어간 곳인데 주문한 모든 것이 맛있었다. 뿐만 아니라 직원도 친절하고 특히 '어니언 링'이 너무너무 맛있었다. 기존에 먹던 어니언 링은 불량식품 수준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짜증 나게도 반밖에 못 먹고 나와서 너무나 아쉬웠다. 미련하게 다 먹지 못 하다니. 말도 안 된다.


그리고 도착한 이곳. 한국인들에게 유명한 '10번 선착장'은 벌써부터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식사까지 후다닥 정리하고 도착한 덕분에 노을을 보기 딱 좋은 시간 5시에 페리를 탔다!



국제 학생증을 한국에서 만들고 한 번도 안 썼던 것 같은데 드디어 그 역할을 사용했다. 2100 포린트에 1박 2일 동안 무제한으로 탈 수 있는 티켓을 구매한 것. 너무나도 알뜰살뜰할 만큼 알찬 구성이다.



너무 평화로워서 좋았다. 강가라서 그런가 바람이 많이 불어서 머리카락이 정신없었지만 구름 많던 하늘이 덕분에 점차 맑아졌다. 다리 아래로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과 손 흔들며 인사도 하고, 조금은 비 일상적인 상황들이 이어지며 비일상 속에서 마치 일상인 것 마냥 행동했다.






부다페스트 국회의사당. 보자마자 건물이 너무나도 아름답고 풍경이 최고로 아름다운 곳에 위치해서 국회의원들이 일 하겠나 싶었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노을.



금방 하늘에 떠 있던 해는 지고 밤이 되었다. 안 되겠다 우리 다시 페리 타자. 티켓을 사면 이틀 동안 무제한으로 페리를 탈 수 있는 덕분에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을 하게 되었다. 역시 부다페스트는 야경이 최고다.



내가 생각하는 이 날의 베스트 컷



강바람이 너무나도 추워 살이 에이는 듯했지만 그래도 페리를 두 번 탄 건 후회 없는 잘한 선택이었다. 나중에 또 보고 싶다. 다시 와서 볼 수 있겠지?



어제 만났던 동행과 다시 한번 더 만나서 맥주 마시기 위해 뭉쳤다. 수많은 푸드트럭이 모여있던 장소라서 여러 가지 음식도 시키고 장소를 옮겨 2차로 술 한잔씩 더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일찍 헤어졌다. 사실 생각해보면 한국이었다면 절대로 만날 일 없는 사람들인데 낯선 유럽 땅에서 두 번이나 만나 시간을 보내다니.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랬을까 싶기도 한데 그때는 오랜만에 또래 친구와 오랜만에 만나 신났던 거 같다.

하지만 집 돌아가는 길에 인종차별을 당했... 던 것 같다. 인종차별이 아닌 단순히 운 나쁘게 양아치들에게 시비 털렸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주차된 차들이 즐비한 골목에서 갑자기 괴성이 들렸다. 알고 보니 주차된 차들 중 한 차량 안에서 창문을 내린 채 소리를 빽- 지른 무리가 우리를 바라보며 실실 쪼개고 있었다. 뭐가 재밌는지 계속 소리를 질러대던 그 무리에게 나는 무슨 정신인지 욕 하고 튀었다. (사실 fuxx you와 한국 욕 대부분이라 그들에게는 욕 같지도 않았을 것이다.) 조금은 정신없이 보낸 저녁을 마무리하고 숙소에 도착해 지원이와 나는 서로 얼굴을 보자마자 푸핫 하고 웃었다. 미친 게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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