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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Oct 16. 2020

[DAY18] 집에 갈 수 있을까 우리?

지수 일상 in Hungary


전날 물놀이도 하고 저녁 늦게 들어와 정신없이 씻고 잔다고 난방을 약하게 틀고 잤나 보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목이 살짝 까끌까끌하게 느껴졌다. 자그레브로 떠나는 날이라 짐을 싸면서 동시에 아침을 든든하게 먹을 곳을 찾았다.  숙소 근처 오픈한 지 얼마 안 된 신상 브런치 카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우리는 다른 선택지 없이 그곳으로 향했다. 도착하니 헝가리인이 아닌 관광객은 우리뿐인 것 같았고 동시에 동양인도 우리뿐이었다. 괜히 머쓱했지만 그래도 뭐 문제 될 건 없지 않나. 그리고 지금 당장은 따뜻한 음식과 커피를 마시는 것이 제일 급한 일이기에 아무렇지 않게 카페로 들어갔다. 우선 정신도 깨울 따뜻한 커피를 주문했다. 

 


역시 커피를 마셔줘야 머리가 돌아가는 나이가 온 것인가. 따뜻한 커피가 몸에 들어가니 온도도 높아지는 것 같고 머리도 슬슬 돌아갈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메뉴판을 구경하며 우리는 아침으로 어떤 것을 먹을까 고민했다. 역시 여행을 와야 아침 메뉴를 고민하게 되는 것 같다. 그 무엇보다 일상에서 아침 메뉴를 고민하는 시간을 가장 아깝게 생각하는 나는 평소 루틴처럼  요거트와 과일, 뮤즐리를 아침 주식으로 먹는다. 제일 속 편하고 루틴으로 삼기에 적당한 금액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은 여행 마지막 날이 아닌가. 남이 해주는 오믈렛을 먹기로 했다.

 


오믈렛과 함께 나온 팬케이크를 보고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니이게 실화인가. 가격이 5800원이라 저렴하긴 하지만 양이 누구 코에 붙이라는 걸까. 너무 작아서 창렬 당한 줄 알았다. 오믈렛은 너무 맛있었고 든든하기까지 했지만 팬케이크는 맛만 봤는데 벌써 끝나버렸다. 결국 우리는 파니니를 하나 더 주문했다. 하지만 시간차 공격 때문일까. 1차로 식사를 마치고 파니니를 기다리는 15분 동안 우리는 배가 불러왔고 결국 파니니를 다 먹지 못하고 남기게 되었다. 아깝. 쓸데없이 배가 작은 나를 탓하지 누구를 탓하랴. 그래도 맛이나 서비스면에서 만족한 식사였다.

 


배 불러서 더 이상 못 먹겠다며 손사래를 쳐 놓고 우리는 디저트를 먹으러 출발했다. 가는 길에 만난 인어공주 떼.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너도나도 퍼레이드를 하듯이 알록달록한 가발과 파란색이 포인트 될 수 있도록 액세서리나 의상을 갖춰 입고 세그웨이를 타고 있었다. 무슨 행사인지 여전히 모르지만 이들을 보는 잠시 동안 웃을 수 있어서 좋았다.



젤라또 로사. 가게에 가까워져 가니 수많은 사람들이 젤라또를 맛보기 위해 가게 밖까지 나와서 줄을 서있는 모습이 보였다. 거기에 우리는 이곳이 맛집임을 확신했다. 나는 웬만하면 아무리 맛집이라고 해도 웨이팅까지 하면서 먹는 사람은 아니다. 굳이?라는 마법의 단어로 기다리면서 먹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정말 먹고 싶은 음식이 있다면 예약을 하거나 일찍 도착해 줄을 서지 않으려는 노력을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번은 조금 달랐다. 여행하면서 한 번쯤 먹고 싶었던 디저트이기도 했고 이 가게가 젤라또를 독특한 장미모양으로 제공되기에 오늘은 줄 서서 기다려 보았다. 이곳에서는 라즈베리와 바질 레몬은 먹었는데 둘 다 맛있었다. 분명 배가 불러 아무것도 먹지 못할 것 같았는데 콘까지 다 먹었다. 디저트 배는 따로 있다는 사실이 진짜인가 보다. 스펀지였는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밥을 잔뜩 먹고 디저트를 먹기 위해 위가 자리를 마련하는 장면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역시 정당화의 고수답다)



버스터미널 가는 길에 발견한 기념품 샵. 이곳에서 나는 엽서 두 장을 샀다. 사실 엽서를 산 것은 이전에 정한 혼자만의 룰이다. 나는 평소 여행을 자주 하는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니라 이번에 교환학생을 떠나며 한 가지 다짐한 게 있다. 바로 기념품을 많이 사지 말자는 것. 한국에서 가져온 캐리어가 30kg+6kg으로 제한되어 있기도 했고 근본적으로 나는 살면서 짐이 늘어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에 해당한다. 물론 나도 한때 맥시멀 리스트였다. 최대한 많은 물건을 가지고 싶어 했고 소비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시간이 점차 흘러 물건과 나의 관계가 뒤집어져 내가 사는 공간이 아닌 물건이 사는 공간이 되어버린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이후부터 정말 필요한 소비만 하고 굳이 필요 없는 물건을 사지 말자는 혼자만의 룰을 세웠다. 그리고 교환학생으로서 여행 온 유럽에서 소량의 엽서만을 사는 "엽서로 떠나는 세계여행"이라는 콘셉트충이 되었다.

 


와.  엽서를 산 후 버스 터미널까지 낯선 길을 떠나야 하기에 시내에서 일찍 출발했다. 약 한 시간 전에 출발해서 구글 지도가 가라는 데로 후배와 나는 움직였다. 분명 버스 터미널로 찍고 갔는데 웬걸. 길이 시시각각 변하고 분명 내 눈 앞에는 버스 터미널이 아닌 아파트가 보이는데 거의 다 왔다고 구글 지도 혼자 떠들어 댔다. 한참을 헤매다가 결국 택시를 탔고 택시 아저씨는 버스 터미널이 완전 다른 쪽에 있다며 엑셀을 최대로 밟아 주셨다. 예약한 버스를 놓치면 우리는 길에서 노숙을 해야 한다며 초조히 핸드폰 속 시간과 지도를 번갈아 보며 세상의 모든 행운이 우리에게 와주기를 바랐다. 다행히 출발 3분 전에 탑승했다. 하지만 긴장했던 시간 때문인지 지원이는 결국 아침에 먹은 것들 때문에 급체를 했고 나는 정신을 놓고 난리였다. 이 와중에 노을은 또 예뻐서 더 눈물 날 뻔했다. 엉엉 얼른 자그레브에 있는 집으로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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